
영국의 시인 겸 화가 윌리엄 블레이크(1757-1827)는 그의 ‘지옥의 잠언’이란 글에서 “감옥은 법률이란 돌로 지었고 유곽은 종교라는 벽돌로 만들었다”고 했다. 만약 “사람들의 생각과 말은 다르지만, 지각 있고 양식 있는 사람들이라면 다 같은 한 가지 종교를 신봉할 것이다”라고 영국의 외과 전문의 앤토니 애쉴리 쿠퍼(1768-1841)란 사람이 했다는 말처럼 모든 사람이 다 같이 신봉할 수 있는 종교가 있다면 그 한 본보기로 바하이교를 들 수 있을 것 같다.
이들은 그 어떤 독선적인 교리로 무장, 빈말을 갖고 그 어떤 신앙을 강요하거나 강매하지 않는다. 수백만의 바하이교 신도들이 세계 각국에 흩어져 살지만, 모하메드가 신의 마지막 예언자였다는 이슬람교의 주장을 무시하고 그는 여러 선지자 중 한 사람이었을 뿐이라고 이론을 폄으로써 이슬람교도들의 분노를 사서 이들은 심한 박해를 받아 왔다. 이들은 남녀평등을 주장, 남녀 유별하지 않고 여자들이 베일로 얼굴을 가리지 않으며 여자도 바하이교 지도자가 될 수 있다.
‘밥(1819-50)이라 불린 알리 무하마드가 바하이교를 세운 지 10년 안에 신도 2만여 명이 순교했고 그 후로도 많은 박해를 받아왔지만, 최근에 와서는 그 박해가 극도에 달했다는 보도였다. 바하이교 신도는 직장도 박탈당하고 신도 간의 결혼은 반백 년 해로한 부부라도 이들의 결혼이 인정되지 않아 부인은 매음죄로 사형된 후 자식들은 사생아로 취급된다.
보도에 따르면 바하이교 신도들이 직면한 박해는 독일에서 1935년 히틀러의 반유태인 뉴렘버그 법률이 제정된 이후 독일에 사는 유태인들이 받은 박해 못지않다는 것이다. 독재자 샤의 부패정권을 몰아내고 들어선 이란의 이슬람 혁명정부가 제정한 새 헌법에서는 이란의 국교인 이슬람교 외에 3개의 군소 종교들, 다시 말해 이슬람교가 생기기 전 페르시아 (지금의 이란)의 종교 조로아스터교와 기독교 및 유대교는 인정하면서도 바하이교만은 허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란 국민이라면 국가가 인정하는 이상의 4개 종교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고 바하이교 신도들은 바하이교를 버리고 개종하지 않으면 살 수 없게 되었다.
교육열이 높은 바하이교 신도들은 다른 이란 사람들보다 유식하고 생각이 진보적이며 혁신적이기 때문에 이상적인 세계정부가 생길 때까지 전 인류의 통합을 위해 노력할 뿐, 국내 정치에는 초연해 왔다. 그 까닭에 다른 이란 사람들로부터 ‘반혁명적 반도’로 몰리게 되었나 보다. 바하이교 지도자들이 몽땅 잡혀가 종무소식이고 이란 전국에 걸쳐 바하이교 교도들은 이슬람 사원에 끌려가 이슬람교로 개종을 강요당하고 만일 거부하면 죽임을 당한다. 몸에다 기름을 부어 태워 죽인다.
이슬람교의 성직자들인 물라들은 사원 강단이나 정치 집회 연단에서 ‘바하이교 교도들은 불결하고 부도덕한 이단자로 외국 세력의 앞잡이며 진짜 종교인 이슬람교의 적’이라고 이들에 대한 증오심을 불러일으킨다. 새로 임명된 이란의 검찰총장은 코란경이 인정하는 신자 말고는 다 이교도요, 이교도는 다 없애버려야 한다고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자 평소에 각 지방에서 신임과 존경을 받던 사람들까지 살해당하기 시작했다.
그 한 예로 이란의 수도 테헤란 남쪽 교외 카산이란 마을에 사는 의사 솔레이만 베르지스는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의 벗이었는데 어느 날 밤 위독한 환자가 있다는 전갈을 받고 급히 달려가자 여덟 명이 그를 에워쌌다. 환자가 어디 있느냐고 그가 묻자 그들이 대답하기를 “환자는 바로 너다. 네가 환자다. 네 병은 네 종교다”라고 하면서 그에게 덤벼들었다. 뿌리치고 발코니에서 밑으로 뛰어내렸으나 발이 부러져 그는 더 이상 도망갈 수조차 없었다. 그러자 여덟 명이 좇아 내려와 그를 칼로 여든한 번이나 찔러 죽였다. 한 명이 열 번씩 찌르고 그중 우두머리가 마지막으로 한번 더 찌른 것이다.
또 셈난이란 곳에서는 바하이교 신도들인 세 간호사가 나뭇가지 자르는 큰 가위로 썰려 죽자 사람들이 신의 축복을 받겠다고 살인자의 손을 잡고 그 피 묻은 손에 입맞춤했다. 한편 겁에 질려 바하이교를 버리고 이슬람교로 개종하면 선물에다 환영파티까지 열어주고 이들이 ‘깨끗해졌다’고 물라가 선고한다.
그렇지만 개종했다가 옛 신앙으로 되돌아가는 기미가 보이면 즉시 사정없이 처형한다. 이러한 보도에 우리가 아직도 중세 ‘암흑시대’에 살고 있지 않나 하는 착각을 하게 된다. 저 유명한 ‘걸리버 여행기’를 쓴 아일랜드의 작가 죠나탄 스위프트(1667-1745)가 그의 ‘여러 가지에 대한 생각들’이란 글에서 통탄했듯이 “우리는 서로 미워할 만큼의 종교만 갖고 있을 뿐, 서로 사랑할 만큼의 종교를 갖고 있지 못하다.”
[이태상]
서울대학교 졸업
코리아타임즈 기자
합동통신사 해외부 기자
미국출판사 Prentice-Hall 한국/영국 대표
오랫동안 철학에 몰두하면서
신인류 ‘코스미안’사상 창시
이메일 :1230ts@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