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차영의 아랑가] 천하장사(씨름의 노래)

​조운파 작사 / 길옥윤 작곡 / 김연자

<천하장사> 노래의 원래 제목은 <씨름의 노래>였다. 이 노래는 내일은 미스트롯 준결승전 제2라운드, 1:1 한 곡 대결에서 정미애와 두리가 열창한 노래다.

 

​정매애와 두리의 대결 결과, 남진은, ‘가요쇼에서도 보기 드문 멋진 열창’이라고 말했다. 신지는 ‘서로 경쟁자임에도 신나게 즐겨서 좋았다. 정미애는 편하게 잘하겠구나 싶었다. 두리가 약할 수 있지만 잘 뚫고 나왔다. 정미애 목소리에 가려지지 않았다’고 전했다.

 

​원곡 가수 김연자는, ‘저는 한 마디로 부럽다. 제 노래가 아니라 두 분 노래 같다. 흥겹고 퍼펙트했다’고 칭찬했다.

 

씨름판이 열린다 징소리가 울린다 / 동서남북 방방곡곡 팔도장사 다 모인다 / 처녀총각 어린아이 할아버지 할머니 / 웅성웅성 와글와글 신바람 났네 / 청룡만세 백호만세 천하장사 만만세~

 

뚱보장사 나오신다 키다리장사 나오신다 / 거머쥐고 얼싸안고 씨근 벌떡 일어섰다 / 배지기 들어간다 호미걸이 받아라 / 으라차차 으라샤샤 땅이 울린다 / 청룡만세 백호만세 천하장사 만만세~

 

​뚝심이냐 뱃심이냐 너는 뭐고 나는 뭐냐 / 삼판양승 오판삼승 모래판에 걸은 인생 /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사나이 승부의 길 / 웃어도 보고 울어도 봤다 갈림길에서 / 청룡만세 백호만세 천하장사 만만세~

 

<씨름의 노래>라는, 제목으로 음반에 실렸던 곡조. 1986년 지구레코드 음반, A면에는 <아침의 나라에서>, <당신은>(송창식), <잠실 야구장>, <신 강강수월래> 등을 실었고, B면에 <씨름의 노래>(천하장사), <정주고 내가 우네>를 걸쳤다. ​우리나라 전통 토속스포츠 씨름이 유행가로 탄생한 시발곡(始發曲)으로 해도 되리라.

 

​1959년 전라도 광주 출생, 수피아여고를 졸업한 154㎝의 단구(短軀)의 가수장사 (歌手壯士)가~ 천하 · 한라 · 백두 · 금강장사를 유행가로 들어 올렸다. <씨름노래>를 부를 당시 김연자는 28세였다.

 

씨름은, 우리나라 국가무형문화재 제131호다. 우리 고유의 운동, 두 사람이 샅바나 바지 허리춤을 잡고 겨루어 상대방을 넘어뜨리는 경기이다. 씨름에 관한 모습은 고구려 벽화에서 볼 수 있다. 일본 스모도, 고구려 기원설이 있고, 터키 · 몽골 등에도 씨름 비슷한 것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현대판 씨름은, 1912년 단성사에서 최초로 열렸고, 1980년대에는 전성기를 맞는다. 단성사(團成社)는, 1907년 서울, 종로구 묘동에 세워진 우리나라 최초의~ 본격적인 상설 영화관이다.

 

​씨름 경기장 지름은 8m, 모래판 높이는 30~70cm 이상이다. 보조모래판 넓이는 2m 이상 모래 깊이는 20~10cm 이내다. ​씨름은 상고시대부터 시작된 운동 경기, 각저(角抵) · 각희(角戱) · 상박(相撲)으로 불렸다. 15세기 이후로 실훔에서~ 실홈을 거쳐~ 씨름으로 불렸다.

 

씨름에 관한 기록은, 조선 4대 임금 세종(1397~1450) 때 제작된 책 『고려사』다. 『일본서기』에는 백제 사신이 왜국에 갔을 때, 왜왕(倭王)이 연회를 열었고~ 백제 사신 앞에서 왜인 무술인 둘을 상박(스모, 相撲)하게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1419년 6월 15일에는 태종과 세종이 각력희(角力嬉)를 강변에서 보았다고 했는데, 이 강변이 어디인지는 불명확하다. 1419년은, 세종 2년 차이고, 6월 19일 이종무 장군이 한산섬과 거제도 일원~ 남해안에서 대마도 정벌을 위하여, 출발한 날이다. 6월 15일이면, 군사들이 한산도 추원방포에 집결하여, 대마도 공격 준비 전략을 논하고 있을 때, 임금은 씨름 구경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도 씨름을 하거나 구경했다는 기록이 있다. 갑오년, 1594년 9월 21일 일기다.

 

​‘맑았다. 아침에 사정(射亭)에 나가 앉아 서류를 처결(處決)하고 늦게 활을 쏘았다. 장흥(황세득) · 순천수사 · 충청수사와 종일 이야기를 하였다. 저물어서 여러 장수들이 뛰어넘기를 하고, 또 군사들에게는 씨름을 서로 겨루게 했다. 밤이 깊어서야 끝났다.’

 

​조선시대 단원 김홍도(1745~1806)가 그린 씨름도가 당시의 스포츠 풍습을 담고 있다. 격렬하게 씨름을 하는 두 남자와 구경꾼이 둘러싼 그림이다. 우리나라 아마추어 씨름은, 1927년 창립된 조선씨름협회(현, 대한씨름협회)가 그해 전조선씨름대회를 열었고, 1936년 전조선씨름선수권대회를 개최했다.

 

해방광복 2년 차이던 1947년 조선씨름협회는 대한씨름협회로 명칭을 변경하고, 1942년부터 중단되었던 전조선씨름선수권대회를 재개했다. ​프로씨름은, 1981년 11월 30일 프로씨름대회 개최를 위해 창립된 한국민속씨름협회(현, 한국씨름연맹)가~ 1983년 4월 14일, 한국방송공사(KBS)와 공동 주최로 제1회 천하장사씨름대회를 개최하면서 시작되었다. 제5공화국, 3S(섹스, 스포츠, 스크린)시대의 산물이다.

 

백두 · 한라 · 금강 · 태백장사 체급명칭은, 한국씨름연맹이 프로씨름대회의 출범을 앞둔, 1983년 광고를 통해 체급 명칭을 공모하여 선정하였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 거주, 오제하 씨가 응모한 명칭이고, 당선상금은 100만 원이었다.

 

​2018년, 우리 씨름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공식명칭은 씨름, 코리아의 전통 레슬링이다.

 

 

[유차영]

한국아랑가연구원장

유행가스토리텔러 

글로벌사이버대학교 특임교수

경기대학교 서비스경영전문대학원 산학교수

이메일 : 519444@hanmail.net

 

작성 2025.02.03 10:42 수정 2025.02.03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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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