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이 태어나서 늙지 않고 병들지 않고 죽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인간은 누구나 생로병사의 단계를 거쳐 언젠가는 세상을 떠날 수밖에 없다. 다만 고달픈 삶을 어떻게 달래가며 잘 살다가 생을 마감하는 일이다.
우리나라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시행하고 있는 노인장기요양보험은 전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한 돌봄 서비스이다. 한국의 뛰어난 IT기술을 밑바탕으로 급여 제공 시작 시간과 종료 시간이 전산으로 철저히 관리되고 있다.
어느 할머니는 15년 전 65세의 나이에 편마비 뇌졸중으로 쓰러지셨다. 2남 2녀 자식들을 모두 출가시키고 살 만하다고 여겨질 때 쯤 병석에 눕게 되었으니 공무원 출신의 남편은 앞으로 살아갈 일이 막막했다. 하지만 자신의 아내를 간병해야 한다는 생각까지 놓을 수는 없었다. 남편은 2009년 국가에서 실시하는 교육을 이수하고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하여 건강보험공단이 제공하는 노인장기요양보험의 가족요양 수혜자가 되었다.
천사 같은 마음을 가진 어느 요양보호사의 얘기도 넉넉하다. 중증 치매 수급자를 돌본다는 것은 악마와 싸우는 일만큼이나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다. 한 달에 한 번씩 방문하는 사회복지사가 수급자댁을 방문했을 때 오물이 묻은 속옷을 빨고 있었다. 짐작하면서 뭐냐고 물어보는 말에 이렇게 대답한다.
“어르신이 내가 심심할까 봐서 일거리를 만들어주네요. 고맙지요”
아무나 할 수 있는 말은 아니다. 방안을 들어서자 매캐한 냄새가 조금 나고 있었다.
“지난밤에 어르신이 실례를 하고 벽에 그림을 조금 그리셨네예. 오늘 출근해서 모두 닦았는데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향기로운 냄새가 조금 나지요”
“이런 것을 더럽다고 하면 이런 일 못합니다. 앞으로 어찌 될지 알 수 없는 것이 우리 인생이고 나 자신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그는 말끝을 흐린다. 나는 한 움큼의 감동 섞인 눈물을 쏟아 내지 않을 수 없었다. 요양보호사 선생님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그래도 노인장기요양보험이 있으니 이런 수급자들이 혜택을 본다고. 수급자 어르신들의 연세를 보면 대부분 80세를 넘기고 있다. 이분들의 공통점은 젊은 시절에는 자식들 키우고 공부시키느라 노후대책은 먼 나라의 얘기였다.
하지만 평균수명은 늘어났고 노령기에는 경제적으로 어려울 수밖에 없다. 복지 사각지대가 될 뻔했던 어르신을 돌보는 천사도 있다. 낡은 집에 세 들어 사는 어느 할머니는 늘 외로움에 쫓기며 살고 계셨다. 그 요양보호사는 어느 날 그 할머니를 만나 사정을 물어보니 아들이 한 명이 있긴 한데 사업에 실패하여 신용불량자가 되었고 연락이 끊겼다는 것이다. 먼저 주민센터를 연결하여 기초수급자 혜택을 받았고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등급신청을 하여 등급을 받았다.
자신이 방문요양보호사가 되어 어르신을 돌보고 있는데 이웃에서 말하길 그분은 요양보호사가 아니고 어르신의 딸 같다고 말한다. 공단이 정해 준 급여시간 후에도 그 집에 밑반찬을 갖다 드리는 것은 물론이고 식사도 함께 하는 경우도 간혹 있다는 말에 머리가 숙여졌다.
어느 일요일에는 요양보호사의 식구들과 함께 봄나들이도 함께 다녀왔다고 하니 예사스러운 일은 아니다. 고맙다는 나의 말에‘친정 엄마가 2년 전에 세상을 떠났어요. 내 어머니와 수급자 연세가 비슷해서 오히려 나에게 고마운 분이다’라고 했다.
노인들은 나이가 많아지면 육체적으로도 약해지지만 견디기 힘든 일은 정신적인 소외감을 느끼는 외로움이라고 한다. 요양보호사의 역할은 단순히 가정을 방문하여 청소 잠시 해주고 시간 보내고 오는 것이 아니다.
복지 사각지대에 처해 있는 어르신들에게 법률이 정한 범위에서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연결해 주는 것도 아주 중요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이 요양보호사는 찾아가는 복지업무를 증명해 주기도 했다.
매월 1일이면 전월에 요양보호사 선생님이 가정을 방문하여 베풀며 심어 두었던 씨앗이 틔운 싹을 돌보고 거둬들이는 날이다. 비용을 청구한 날로부터 14일이 지나면 요양보호사 선생님들의 노고가 금전으로 바뀌는 마법이 생긴다.
그 돈은 센터가 주는 것이 아니라 공단에서 요양보호사들에게 지급하는 돈을 잠시 보관하고 있다가 전달해 주는 돈이다. 요양보호사 선생님들에게 급여를 입금시키는 날이면 마음이 깃털처럼 가벼워진다. 내 것도 아닌 것을 쥐고 있다가 내려놓으니 얼마나 가벼워지겠는가.
[김태식]
미국해운회사 일본지사장(전)
온마음재가센터 사회복지사(현)
울산신문 등대문학상 단편소설 당선 등단
해양문학상 논픽션 소설 당선
사실문학 시 당선 등단
제4회 코스미안상 수상
이메일 : wavekt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