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용 칼럼] 수필은 허구가 아니다 2

수필의 허구 ‘수용’과 ‘부분 수용’의 공통적 오류

수필은 논리성에 무게를 둔다. 소설은 사건의 인과 법칙과 개연성에 무게를 둔다. 수필은 이야기(story)를 중시한다. 소설은 플롯(plot)을 중시한다. 

 

수필의 사건은 소설의 사건과 다르다. 수필의 사건 성립은 대체로 우연성이다. 소설의 사건 성립은 대체로 인과 법칙성이다. 수필의 사건은 사실 그대로 왜곡 없이 우연성에 무게를 두고 재현하는 것(사실)이고, 소설의 사건은 개연성에 무게를 두고 창조하는 것(허구)이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수필에 허구를 수용하자는 주장이 있다. 허구 ‘수용론자’와 ‘부분적 수용론자’들이 주장한 글을 제법 읽었지만, 전부는 읽지는 못한 듯하다. 지금까지 읽어 본 글만을 분석해 보면, 공통적 오류를 도출해 낼 수 있다. 

 

첫 번째, 문학의 속성이 허구이므로 수필도 문학이라서 허구를 수용해야 한다는 점. 두 번째, ‘허구’와 ‘상상’을 동일시하고 있다는 점. 세 번째, 상상력을 세분화하지 않고 통칭의 개념만을 언급하고 있다는 점이다. 

 

첫 번째의 경우, 문학의 속성이 허구성이므로 허구를 수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 주장에 충분한 일리가 있다. 그 주장을 수용하려면 현재 수필의 개념과 정의를 바꿔야 한다. 대다수 수필가와 독자가 ‘허구 수용 불가론자’임을 고려해 볼 때, 철옹성 같은 벽을 허물기엔 역부족인 것 같다. 이미 보편성의 개념으로 굳어 버렸다. 특히 독자들은 수필을 읽을 때마다 현실과 사실을 바탕으로 쓴 체험의 글이라고 생각한다. 눈곱만큼도 허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두 번째의 경우, ‘상상’과 ‘허구’를 동일한 개념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만일 ‘상상’이라는 용어의 비슷한 말, 혹은 대체어로 ‘허구’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이라면 크나큰 오류이다. ‘허구’란 ‘상상력’을 통해서 꾸며진다. 그렇다고 해서 동일시할 용어는 아니다. 엄격하게 분리해서 다루어야 할 용어이다. 수필가는 적확한 어휘를 선택해야 한다. 수필의 ‘상상력’은 ‘허구적 상상력’이 아니라 ‘현실성의 상상력’ 혹은 ‘사실성의 상상력’인 ‘경험적 상상력’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세 번째의 경우, 상상력이란 우주처럼 광대무변한 것이라서 세분화하여 다루어야 한다. 대표적인 예를 들면, 칸트는 ‘재생적 상상력’과 ‘창조적(산출적) 상상력’을 구분하였고, 가스통 바슐라르도 상상력을 ‘재생적(재현적) 상상력’과 ‘창조적 상상력’으로 구분하였다. 이를 세분화하지 않고 통칭의 개념으로 다루다 보니, ‘상상력’을 강조한 ‘수용 불가론자’의 글마저도 용어 사용의 오류로 인해 허구를 수용하고 있는 경우가 있다. 가령 “수필은 ‘창조적 상상력’으로 창작해야 한다.”와 “‘수필적 상상력’은 ‘창조적 상상력’이어야 한다.”라며 작가의 의도와는 달리 오히려 허구 수용을 부추기는 오류를 범한 문장도 제법 있다.

 

‘허구적 상상력’이라고 하면, ‘재생적 상상력’에 머물지 않고, 한 단계 발전해 나간 개념인 ‘창조적 상상력’을 말한다. 가공의 인물과 가공의 장소와 때를 묘사하고, 가공의 이야기를 창조하는 상상력이다. 이런 ‘창조적 상상력’을 발휘한 수필이 있다면, 그 작품은 장편소설(掌篇小說)이지 수필이 아니다. 허구이다.

 

소설과 시는 소설가나 시인의 상상력이 창조해낸 허구 문학이다. 자유로운 ‘창조적 상상력’의 소산이다. 현실성과 사실성의 이야기들에 대한 ‘재생적 상상력’만으로 빚은 소설과 시는 전기적이라서 가치가 훼손될 수 있다. 가치 있는 소설과 시는 ‘창조적 상상력’이 빚은 허구일 수밖에 없다. ‘허구의 진실’이 소설과 시 속에도 존재한다. 하지만 소설과 시와는 달리, 수필을 ‘창조적 상상력’으로 창작한다면 거짓의 글로 전락하고 만다. 

 

독자는 수필 작품 그 자체를 진실이라고 받아들인다. 만일 ‘허구 수필’을 읽었다 하더라도 진실이라고 받아들인다. 진실과 거짓을 가려낼 수가 없다. 그렇다고 독자를 위해 수필 작품마다 ‘허구를 수용하지 않은 수필’이나 ‘허구를 수용한 수필’이라고 꼬리표를 명기할 수도 없는 문제이다.

 

 

[신기용]

문학 박사.

도서출판 이바구, 계간 『문예창작』 발행인. 

대구과학대학교 겸임조교수, 가야대학교 강사.

저서 : 평론집 7권, 이론서 2권, 연구서 2권, 시집 5권,

동시집 2권, 산문집 2권, 동화책 1권, 시조집 1권 등

이메일 shin1004a@hanmail.net

 

작성 2025.02.12 10:03 수정 2025.02.12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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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