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서 칼럼] 지금, 우리는 왜 이순신을 불러오고자 하는가

이순신전략연구소 최초 삼도수군통제영 논란 관련 성명에 즈음하여

부산여해재단을 설립한 김종대 전 헌법재판관은 자신의 책 『이순신, 하나가 되어 죽을 힘을 다해 싸웠습니다』에서 1592년 임진왜란 발발당시 왜에 맞서 싸웠던 이순신이 어떻게 역사에 재등장하게 되었는지 그 과정과 경로를 비교적 소상하게 밝히고 있다. 이순신은 순국 이후에도 이 땅에 위기 상황이 올 때마다 최우선으로 불려 나와 한민족을 구원하는 구국의 영웅으로 고통받는 민중들과 함께했다. 

 

필자가 이순신 생애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두고 있는 부분은 이순신이 임진왜란 방어의 최전선에서 거둔 승리보다 당시 전쟁을 함께 치렀던 다른 장수나 지도자와의 차별적 지점이다. 조선은 국왕을 정점으로 사대부가 공조하는 왕정 체제의 나라였고 엄격한 신분제 사회였다. 

 

공무를 맡은 자로서의 소임을 다하면서도 백성들의 처지에 대해 깊은 긍휼의 마음과 기꺼이 그들과 하나되어 싸우고자 했던 그의 정신세계가 승리의 원동력이었음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이순신은 당쟁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지배체제의 최하층에 위치한 노비와 양민, 그리고 휘하의 부하 장수들까지 하나의 대오로 묶어내는 놀라운 리더십을 발휘했다. 반상의 구별이 엄연했던 조선에서 이순신의 이런 행보는 매우 특별했으며 지금의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서울대 국사학과에서 수학한 역사학자 전우용은 우리가 인민이라고 부르는, 한국사회에서는 여전히 불온한 개념으로 간주되고 있는 이 단어에서의 인人과 민民을 분명하게 구분짓는다. 엄밀하게는 다른 이들을 지칭한다는 것이다. 민족의 형성과정 역시 이 개념들을 도구로 삼아 설명한다. 

 

우리가 하나의 민족이라는 관념은 최소한 구성원 사이의 차별적 지위가 형식적으로라도 해소되어야 가능한 개념이기에 근대 이후 피지배계급인 민民이 더 이상 차별적 위치에 놓이지 않을 때에만 가능하다. 그들이 인人의 범주로 통합되었을 때 민족의식 역시 완성된다는 논리이다. 그렇기에 민족이나 민족의식은 근대 이후의 산물일 수밖에 없다. 

 

이순신은 해전을 치르고 난 후 선조에게 보내는 장계에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전쟁에서의 공을 객관적으로 서술했다. 신분이 미천한 노비일지라도 전쟁에서의 공과에 대해서는 한 치의 차별도 두지 않았다. 근왕주의 시대를 살았던 이순신이 당대의 통치 이념 속에서 어떻게 이러한 사유가 가능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떻게 민民의 통합을 이뤄낼 수 있었는지는 이순신 리더십의 핵심이다. 만약 지금의 국가주의적 사고방식이나 민족주의의 차원에서만 이순신을 설명하려 든다면 필연적으로 역사 왜곡의 수렁으로 빠질 위험에 봉착한다.

 

최근 임진왜란 삼도수군통제영의 최초 소재지를 두고 두 지자체가 벌이는 논쟁은 우려스럽다 못해 통탄을 자아낸다. 여수와 통영의 시의회 정치인들이 서로를 역사 왜곡의 가해자로 비난하면서 공방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자신들의 지역이, 이순신이 삼도수군통제사로 머물던 최초의 장소라고 우기는 이 우스꽝스런 장면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일종의 흔해빠진 원조 싸움이라도 벌일 참인가. 비상계엄이라는 엄중한 시간을 불안한 마음으로 건너고 있는 국민들의 처지는 안중에도 없는 이들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작금의 상황에서, 430여 년 전의 장소를 두고 벌이는 이 행각이 어떻게 이순신을 추모하고자 하는 이들이 취할 수 있는 행위인지 국민들에게 분명히 설명되어야 할 것이다. 자신들의 지역 이해에만 매몰되는 상황은 어떤 이유로도 합리화될 수 없다. 치열한 국난 극복 과정에서 민民을 지키고 나라를 보존하고자 했던 공직자 이순신을 더 깊이 이해하고 들여다보는 계기로 삼길 바란다. 

 

정치인들의 입에서, 이순신이 이런 방식으로 거론되는 것을 국민들은 더 이상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이진서]

고석규비평문학관 관장

제6회 코스미안상 수상

lsblyb@naver.com

 

작성 2025.02.17 10:46 수정 2025.02.17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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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