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의 모든 생명은 다 귀하다. 특히 새끼들의 생명은 더 귀하다 못해 아름답다. 개의 새끼는 말할 나위도 없고 호랑이 새끼도 귀하고 귀엽기까지 하다. 뱀의 새끼도 귀하긴 마찬가지다. 곰의 새끼도 예외는 아니다. 새끼에게는 누구도 분별하지 않는다. 지구에서 가장 아름다운 곰의 새끼에 관한 영화가 사람들을 울렸다, 그 영화가 바로 ‘베어’다. 프랑스의 장 자크 아노 감독이 1988년에 만든 영화 ‘베어’는 온전하게 새끼곰이 주인공이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기곰이 영화 내내 인간의 감정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간다.
아기곰 듀스는 인간인 우리를 쥐락펴락하면서 저 밑바닥에 가라앉아 버린 인류애를 끌어올렸다. 우릴 구원하는 건 자연인지 모르겠다. 아니 궁극적으로는 자연이 우릴 구원해 줄 것이다. 자연이 없으면 인간인 우리도 살 수 없는 까닭이다. 그래서 자연은 말 없는 경전이라고 하지 않던가. 8여 년을 공들여 만들었다는 ‘베어’는 실제 길들인 곰으로 촬영했다. 자연 속에서 천진스럽게 뛰어노는 아기곰은 자연 친화적인 영화를 만드는 데 지대한 공을 세운 동물이다. 아기곰은 유난히 겁도 많고 개구리를 잡는 호기심도 있고 거북이와 놀기도 하며 잠이 오면 세상 모르게 늘어져 잠을 자기도 하는 인간 아기와 다를 바 없다.
평화롭고 아름다운 로키산맥의 봄, 아기곰이 엄마곰과 함께 꿀을 따 먹는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엄마곰은 더 많은 꿀을 따기 위해 절벽의 바위 속을 계속 판다. 그러다가 바위가 무너지고 엄마곰은 바위에 깔려 죽고 만다. 갑자기 고아가 된 아기곰은 당황하며 엄마를 깨워보지만, 엄마는 살아나지 못한다. 죽은 엄마 품에서 하룻밤을 보낸 아기곰은 죽은 엄마를 두고 먹이를 구하기 위해 세상으로 나간다. 생존은 쉽지 않았다. 자연의 모든 것들이 신기하지만 또한 위험한 존재로 다가왔다. 그러다가 사냥꾼의 총에 맞아 쫓기는 수곰을 만나게 된다. 수곰은 아기곰이 거추장스러웠지만 총에 맞은 상처를 핥아주는 아기곰과 친하게 된다.
수곰을 놓친 사냥꾼은 이번에는 반드시 잡고야 말겠다고 다짐하면서 개들을 데리고 추격한다. 수곰은 사냥꾼의 작전을 눈치채고 아기곰을 동굴에 숨겨 놓고 개들을 유인해 높은 곳으로 도망간다. 개들이 수곰을 추격해 혈투를 벌이고 도망간 수곰은 사냥꾼과 마주치게 된다. 죽을뻔한 사냥꾼은 내려오면서 아기곰을 발견해 데리고 베이스캠프로 와서 묶어 놓는다. 사냥꾼에게 붙잡힌 아기곰은 개가 무서워 나무 위로 올라가기도 하고 사냥꾼이 주는 스프를 맛있게 먹기도 하며 재롱을 부리기도 하며 사냥꾼들을 웃게 한다.
모두가 잠든 밤 아기곰은 엄마의 냄새를 발견하고 가죽으로 남아 있던 엄마를 미친 듯이 비벼댄다. 수곰이 멀리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침이 되자 엄마 옆에서 잠들은 아기곰이 안쓰러운 사냥꾼들은 아기곰과 놀아주지만, 수곰을 그 모습을 보고 더 분노한다. 다시 곰을 잡으러 간 사냥꾼이 떨어진 물을 찾아 폭포로 올라간다. 그것에서 잠시 방심한 사이 수곰이 나타나 사냥꾼은 수곰에게 잡아먹힐 절체절명의 순간 수곰은 무슨 이유인지 사냥꾼을 그냥 두고 산으로 도망간다.
사냥꾼은 정신을 차리고 곧바로 총을 들고 수곰을 따라가 총을 쏘려는 순간 자신을 공격하지 않고 살려준 수곰에 대한 연민이 일어나 생각을 바꾸게 된다. 그리고 빨리 도망치라고 소리치고는 허공에 총을 쏜다. 다른 사냥꾼이 달려와 곰이 어디 있냐고 묻자, 저 절벽 밑으로 떨어졌다고 거짓말을 한다. 그러나 아버지는 곧 수곰을 발견하고 총을 겨누지만, 사냥꾼은 그런 아버지의 총구를 막아선다.
그들은 결국 사냥을 접고 철수하기로 한다. 그리고 정들었던 아기곰을 풀어준 뒤 작별하고 산을 내려온다, 자유의 몸이 된 아기곰은 결국 또 혼자가 된다. 외로울 틈도 없이 아기곰은 퓨마의 표적이 되어 쫓기면서 위기에 처한다. 궁지에 몰린 아기곰이 퓨마에게 대항해 보지만 역부족이었다. 곧 잡아먹히게 된 순간 수곰이 나타나 아기곰을 구해준다. 아기곰이 수곰의 상처를 핥아주었던 것처럼 이번에는 수곰이 아기곰의 상처를 정성스럽게 핥아준다. 어느덧 눈이 내리고 수곰과 아기곰은 동굴에서 긴 겨울잠에 든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가슴에서 올라오는 뭉클함을 숨길 수 없었다. 온전한 대사 한마디 없이도 이토록 마음을 흔들 수 있는 영화가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개 짖는 소리, 흘러가는 물소리, 숲을 휘돌아 나가는 바람 소리, 크으응거리며 표호하는 곰 소리 등 자연 그 자체의 소리를 듣는 것이 힐링이 되는 영화다. 동물이건 인간이건 세상에서 가장 큰 사랑은 엄마의 사랑이다. CG없이 만들어진 자연스러운 동물들을 보며 인간들이 늘 자연과 동물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는 생각을 하자 괜히 미안하고 안타까웠다.
‘베어’는 미국 작가 제임스 올리버 커우드의 원작소설 ‘그리즐리 킹’을 각색한 영화다. 소설가 커우드의 경험이 담긴 소설이라고 하는데 커우드는 원래 사냥을 즐기던 사람이었다. 그러다가 동물 애호가로 변신한 인물이다.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은 다 소중하고 고귀한 존재다. 자연에는 선도 없고 악도 없다. 그저 우리가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악이 될 수 없다는 걸 깨우쳐준다. 그래서 사랑이 필요한 것인가 보다. 욕심을 내려놓으면 동물도 인간도 다 같이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공염불 같지만 정말 그럴 수는 없을까.
우리가 자연에게 은혜를 입으면 우리도 자연에게 은혜를 갚아야 한다.
[최민]
까칠하지만 따뜻한 휴머니스트로
영화를 통해 청춘을 위로받으면서
칼럼니스트와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대학에서는 경제학을 공부하고
플로리스트로 꽃의 경제를 실현하다가
밥벌이로 말단 공무원이 되었다.
이메일 : minchoe293@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