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연강 칼럼] 풍경, 오늘을 담다

신연강

봄이 올 듯도 하지만 겨울은 쉽게 자리를 내주지 않는다. 입춘이 지나고 우수가 지났지만 계절은 여전히 인간의 마음을 따라오지 못하고 얄궂기만 하다. 인간에게 야박한  자연의 심성을 대하는 듯하다.

 

아직은 겨울의 풍경. 모니터에 떠오르는 키워드(key words)는 “계엄, 탄핵, 대선” 같은 단어들로서 “트럼프, 관세, 딥시크”와 함께 대부분을 차지한다. 다양성, 문화, 행복, 일상 등의 편안한 단어는 어느새 저만치 달아나 있고, 우리는 늘 뭔가에 쫓기듯 강렬하고 자극적이며 가슴을 파고드는 단어에 익숙해져간다.

 

많은 일들이 일어났고, 또 진행 중이다. 현실에 발을 딛고 있기에 이처럼 묵직하고 날카로운 말들을 떨쳐낼 수 없음은 당연하겠지만, 봄눈 녹고 들판에 슬며시 풀 돋듯 사회적, 국가적 일들이 순리에 따라 해결되기를 바라게 된다.

 

혼란스런 세속에 거리를 두고 싶은 마음에서 TV를 경원시 하는 요즘, 모니터를 켠 순간 눈을 뗄 수 없는 장면이 나와서 내쳐 보고야 말았다. 2월 14일에 방영된 ‘KBS 추적 60분’ 은 미처 몰랐던 사실을 알려주면서도 시대의 당황스런 현실을 전해주었다. 주된 내용은 영. 유아까지도 사교육으로 몰아가는 한국의 현실을 고발하는 것이었다.

 

초, 중, 고 사교육비(2023년) 27조원 시대. 방송은 3세, 4세, 7세, 초3 학생의 학원 수강실태를 낱낱이 파헤쳤다. 내용 중에는 이제 걸음을 뗀 3세 아이들이 힘들게 영어 단어를 말하는 장면이 클로즈 업 되었다. 그 어린 나이에 벌써 영어단어를 읽는다는 것이 신기하고 기특하기도 하지만, 꼭 그렇게 까지 해야 하는가라는 자조가 드는 장면이었다. 이런 맥락에서 조사해보니, 한국에 유아대상(4세이지만 실제로는 2~3세로 추정) 영어학원이 전국적으로 847개소에 이른다고 한다. 그리고 한 달 학원비는 200만원에 이른다고 하니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또 다른 주목할 점은, 서울 강남 학원가의 대표적 동네인 대치동 등에서는 ‘선행학습’이 매우 성행한다는 내용이었다. 영어와 더불어 주된 과목인 수학 부분에서는 초등 3학년이 고1 학생들의 문제를 선행학습하고, 이런 선행학습으로 대입시를 유도한다는 것이다. 전국적인 체인망을 가진 한 유명 수학 학원의 입학시험에는 9천 5백 명이 줄서서 시험을 치렀다고 한다. 

 

모두 부모의 손에 이끌려나온 어린 학생들로서, 어림잡아 이들 초등학생들이 하루 학원에서 보내는 시간은 하루 5시간 5분이라고 하니 말문이 막힐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부모들이 아직 판단력이 없는 어린 애들을 학원으로 내모는 이유는, 결국 학원들이 대입시에 대한 ‘불안감’을 조성해서 입시 문제를 해당 학원에서 해결해준다는 환상을 제공해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관련 방송 프로그램에서 이들 초등 3학년이 푸는 수학문제를 서울대 재학생에게 풀어보게 하였는데, 재학생조차도 쩔쩔매며 풀기 쉽지 않은 문제라는 반응을 보였다. 또 다른 취재는 ‘초등 의대반’에 관한 것이었다. 미래에 안전한 직업을 확보하기 위해 의대진학을 일찍부터 준비하는 모양이었다. 학원에 모인 초등학생들은 강남 명문고의 실제 문제지를 활용하여 선행학습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으로 인해 학원가에서는 ‘7세 고시’라는 말이 유행한다고 한다. 부모의 손을 잡고 나온 어린 학생들이 입시를 치르기 위해 학원 앞에 구불구불 줄을 서있는 장면은 무척 안쓰럽게 보였고, 그 자체로 오늘날의 그릇된 교육 광풍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었다. 한 교육 전문가는 이토록 어린 학생들에게 모진 선행학습을 시키고, 그릇된 외국어 교육을 강요함으로 인해서 ‘현실 부적응’ ‘언어장애’ 등의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경고했다.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또한 이러한 과도한 교육으로 인해 아이들은 불안, 우울증, 정서불안과 장애를 안게 된다고 질타했다.

 

도대체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사고가 멀쩡한 부모로 하여금 이토록 가혹한 학습과 진학 열풍을 조장하는 것일까? 방송은 아마도 IMF 시대를 지나온 부모들이 “최소한의 경제적 안정을 주기 위한 현실적 불안감 때문에 사교육을 시키는 것 같다”라고 진단했다. 사교육비 27조원 시대! 오늘의 한국에서, 정말로 유명한 학원에 입학해서 종국에 유수의 대학을 졸업하고 번듯한 직장을 구해서 인생을 구가해야만 행복해지는 건가, 라는 물음을 던져본다.

 

요즘 들어 그나마 우리 귀에 익숙한 매우 긍정적인 단어가 있다. 바로 ‘K-컬쳐’라는 단어이다. 문화라는 것이 한, 두 가지 획일적인 것이 있을 수 없듯이, 다양성이 존재하는 한 문화는 지속가능할 것이고 살아있는 생명력을 가질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인간의 삶 또한 획일적이고 절대적 기준에 따라 움직인다면 생명력을 잃은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시대적 흐름이 빠른 요즘은 옛것으로 치부할지 몰라도, 나로서는 어린 시절 자연 속에서 나뒹굴고 뛰어놀았던 시절이 무척 행복하게만 느껴진다. 그리고 그 시간은 무척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자연은 누가 뭐래도 유구하며 스스로의 순리를 따른다. 시선을 넓혀서, 아무리 현대사회가 복잡하고 다기화 한다 해도, 좋은 정치란 자꾸만 규정과 법조항을 추가하고 세분화하는 것이 아니라, 곁에 있어도 없는 것같이 느껴지며- 물 흐르듯 발밑에서 받쳐주고 적셔주는 것, 보이지 않게 갈증을 풀어주는 것, 큰 얽힘과 매듭을 유연히 풀어주는 것- 바로 그것이 정치(政治)가 되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게 된다.
 

혼란의 시대이자 광풍의 시대 속에- 어릴 적 추억과 소중한 기억을 글로, 책으로 엮어보는 시간을 갖는다. 자연 속에서의 시간은 풍요로움이었고, 정겹고 그리운 기억이었으며, 시대를 넘어 미래로 나아가게 동인이었다. 다음에 책을 내면, <풍경, 행복을 향해 달린다>는 제목을 붙여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지금 우리가 달려가는 시간은 바야흐로 ‘광풍의 시대’임이 틀림없다. 정치와 사회를 차치하고, 한국의 교육 현장을 바라보면서 프랑스의 ‘르몽드’지는 “한국의 학생들은 어쩌면 전 세계에서 가장 불행한 아이들일지 모른다”는 평을 내놓았다. 내일의 풍경은 ‘행복을 향해 달리는 것’이면 좋겠다. “좋아하면서 잘 하는 일을 하며 사는 것 - 행복하게 사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일까?

 

 

[신연강]

인문학 작가

문학 박사

이메일 :imilton@naver.com

 

작성 2025.02.22 10:13 수정 2025.02.22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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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