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의 영화에 취하다] 올 이즈 로스트

최민

가장 두려운 순간은 고립이다. 고립은 보이지 않는 벽에 가로막혀 나가지 못하는 상태다. 아무도 없는 곳에 홀로 남은 고립은 인간의 본성을 고스란히 드러내게 마련이다. 그러나 인간은 고립 너머를 생각하며 두려움을 극복하기도 한다. 자발적 고립을 선택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것이 죽기보다 싫은 사람들은 스스로 고립되어 홀로 살아가기도 한다. 좁은 방안에서 고립하는 은둔형 외톨이도 있지만, 자연의 품에 안겨 고립이 주는 즐거움을 만끽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타의에 의해 고립된 사람들의 치명적인 본성은 고스란히 드러나게 마련이다.

 

인생의 쓴맛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올 이즈 로스트’가 주는 고립감이 지루하게 다가온다. 요트까지 있는 좀 잘 사는 남자에게 바다는 무료한 삶을 위로해 주는 아주 좋은 자연이다. 그러나 그 자연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모른다. 카메라는 이 남자를 천천히 쫓아가며 인간의 저 밑바닥에 있는 본성까지 끌어올린다. 대사 한마디 없는 영화, 출연자는 오직 남자 하나뿐이다. 선하게 생긴 남자, 걱정거리라곤 하나 없을 것 같은 남자, 열심히 일해서 재산도 좀 모아 요트를 산 남자, 그 남자를 따라가는 카메라의 시선에 나의 시선도 조용히 따라간다.

 

인도양에서 요트를 타고 유유자적 항해하며 즐기던 한 남자가 있었다. 성공한 인생이기에 남들이 사지 못하는 요트를 사서 홀로 한적하게 인도양을 향해 하면서 인생을 즐기고 있었던 남자, 그런 여유를 즐기던 남자에게 위기가 닥친다. 어디선가 밀려온 컨테이너에 요트가 충돌하고 만다. 설상가상으로 내비게이션과 라디오도 모두 고장난 상태다. 남자가 의지할 것은 오직 나침판과 항해 지도뿐이다. 그리고 남자가 살아온 시간만큼 축적된 오랜 경험이 전부다.

 

배 안으로 물이 차오르는 상황에서 남자는 노련하게 배를 수리해 보지만 저 멀리 폭풍이 몰려와 배를 삼켜버리고 만다. 남자는 요트에 있는 구명보트로 물건을 이동해 생존을 위한 투쟁을 시작한다. 요트에 실은 물이 바닷물과 섞여 더 이상 먹을 수 없게 되자 살아야겠다는 생존 본능이 발동해 바닷물을 증발시켜 먹는다. 그리고 고기를 잡아먹으며 근근이 버텨 보지만 한계에 도달하고 만다.

 

남자는 저 멀리 지나가는 배를 발견하고 구조 신호를 보내지만, 배는 남자의 구조 신호를 보지 못하고 유유히 사라지고 만다. 늦은 밤 또 다른 배가 지나가는 것을 목격한 남자는 자신의 위치를 알리기 위해 보트에 있는 모든 것을 태워 신호를 보내지만, 배는 그런 남자를 발견하지 못하고 지나가 버린다. 그 사이 보트에 불이 붙어 이제는 정말 죽음밖에 없는 상황이 되고 만다. 남자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바닷속으로 몸을 던진다. 바다에 가라앉고 있는 남자는 어렴풋이 수면 위로 자신을 구하러 온 구조선을 보고 마지막 힘까지 다 짜내 헤엄쳐 나오면서 영화는 막을 내린다.

 

그렇다. 끈기가 생존이다. 생존은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고난이 닥치면 냉정하게 대처해야 살 수 있다. 인생에서 고난은 수없이 온다. 망망대해의 파도처럼 고난은 끝없이 밀려오고 밀려가는 것이 인생이다. 오죽했으면 인생은 고해라고 했을까. 이 영화는 시종일관 대사 하나 없이도 마음속에 뜨거움이 소용돌이치면서 몰입하게 한다. 남자가 만들어 낸 표정이 시시각각 바뀌면서 삶과 죽음, 기쁨과 절망의 순간들이 고요하게 지나간다. 이 영화는 생존에 대한 의지뿐만 아니라 삶이라는 인생에 대한 회한과 관조에 관한 이야기다. 

 

인간의 의지는 어디까지 가능한 것일까. 고독한 항해를 통해 인간의 의지와 도전을 그려낸 이 영화는 J.C. 챈더 감독과 로버트 레드포드의 인간에 대한 공감이 만들어 냈다. 2013년에 개봉했는데 놀라운 것은 이 영화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자연이라는 거대하고 무자비한 힘 앞에서 인간은 한없이 나약하고 어리석지만, 끈기와 의지가 있는 인간은 그 거대한 자연의 힘에 굴복하지 않고 결국 생존에 성공한다. 우리도 그렇다. 누구나 때때로 인생의 파도를 만나 추락하고 그 추락의 밑바닥을 짚고 다시 일어선다. 

 

남자가 직면한 8일간의 사투는 희로애락의 모든 인간적 감정을 모두 끌어올린다.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흐르는 어색한 정적이 무척 낯설다. 나오는 사람은 오로지 남자 하나뿐이다. 이 단조로움은 시간이 지날수록 거대한 포효와 다채로움으로 변하면서 화면을 꽉 채운 생존 본능의 절박함이 관객을 압도한다. 냉철한 판단력, 생존 의지, 존재에 대한 물음, 고독에 대한 절망, 삶의 성찰 등 내면의 나와 싸우면서 결국 이 모든 고난을 이겨내는 과정을 통해 인간 승리의 희망을 이끌어낸다. 

 

불행은 늘 한꺼번에 찾아오는 법인가 보다. 하나의 불행이 찾아오면 연달아 또 다른 불행이 찾아온다. 마치 종합선물 세트 같다. 그러나 사람은 죽으란 법은 없다. 모든 것을 잃는 그 순간에 비로소 다시 얻게 된다. 그래서 인내의 끝은 달다. 우리 인생은 이렇듯 롤러코스터를 탄 것과 같다. 인생 바다를 표류하는 한 조각 나뭇잎과 같은 존재다. 그러나 그 존재는 아주 작지만 위대하다. 고난의 다른 말은 희망이라고 말해야 옳을 것이다. 로버트 레드포드가 연기한 주인공 그 ‘남자’가 곧 우리일지 모른다. 우리도 인생이라는 바다에서 자주 표류하니까.

 

“당신에게 고립은 무엇인가”

 

 

[최민]

까칠하지만 따뜻한 휴머니스트로 

영화를 통해 청춘을 위로받으면서

칼럼니스트와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대학에서는 경제학을 공부하고 

플로리스트로 꽃의 경제를 실현하다가

밥벌이로 말단 공무원이 되었다. 

이메일 : minchoe293@gmail.com

 

작성 2025.02.25 09:15 수정 2025.02.25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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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