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날의 꽃잎은 떨어지는 슬픔을 지닌 채 피기가 바쁘게 지고 있다. 나는 봄바람에 실려 날리는 꽃가루가 코끝을 스칠 때쯤 꽃잎이 날리는 그 아픔만큼이나 심한 알레르기 비염을 앓는다. 언제부터인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보름 정도를 훌쩍거리는 콧물로 봄을 맞이한다. 봄이면 어김없는 몸살을 앓는 것이다. 해마다 생기는 이런 현상을 나는 ‘봄살’이라고 이름 지었다.
꽃잎이 진 자리를 보았다. 살을 에고 뼈를 깎는 듯한 추운 겨울을 지나고 몸부림을 쳐서 힘들게 피워낸 꽃잎을 떠나보낸 자리는 혹독한 시련의 아픔이 있다. 흐드러지게 피어났던 꽃들을 날려 보내고 생채기가 난 꽃의 흔적을 안고 있다. 하지만 피어난 자리에 매달려 떨어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 꽃봉오리의 하소연은 어느 누가 들어 줄 것인가?
그래도 꽃이 이지러진 그 자리에 쌀눈만 한 움을 틔우느라 바쁘다. 그 위로 새로이 송송 올라오는 초록 잎은 꽃들의 봄살을 지나 여름날의 번창을 예고하고 있다.
꽃 피는 계절이 되면 사연을 가진 이들이 한 두 사람이랴만 꽤 오래전 내가 일본해운회사 근무 시절 중국의 따렌에서 몇 개월 동안 파견근무를 할 때였다.
3월의 봄날임에도 그곳에는 많은 양의 비가 내리고 있었다. 마치 여름 장맛비처럼 쏟아지던 그 빗속에서 목련꽃은 축 늘어져 목을 비틀고 있었다. 저녁 시간에 한국인이 운영하는 호프집을 동료들과 함께 들어서니 봄노래가 흘러나왔다.
가게에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아 라이브음악을 부르는 시간이 되었다. 첫눈에 예쁘고 매혹적인 인상을 주는 여주인이 부르는 노랫소리에 매료되어 손님들은 숨을 죽이고 듣고 있었다. ‘하얀 목련이 필 때면 다시 생각나는 사람......’으로 시작하여 노래가 끝날 즈음에 그녀의 목소리는 가녀리게 떨리는 듯했고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애절한 호소를 토해내고 있었다.
노래를 모두 부르고 난 뒤 그녀의 눈은 촉촉이 젖어 있었다. 나도 갑자기 슬퍼졌다. 빗속에 젖어 떨어지는 목련꽃을 보지 않았더라면 슬픔이 덜했을 것을.
그 여인은 무대를 내려와서 인사차 우리가 앉은 테이블에 왔을 때 권하는 맥주 한 잔을 비우고 묻지도 않은 말을 한다.
“한국에 있을 때 저는 일류 가수는 아니었고 삼류쯤 되는 무명 가수였습니다. 사랑하는 남자가 있었어요. 그러나 그 남자는 결혼을 앞두고 작년에 저세상으로 떠나고 말았지요. 하얀 목련꽃이 피어날 이맘때쯤입니다.”
교통사고로 이 세상을 등지게 되었다는 얘기까지 들었을 때 나와 동료들의 눈망울도 촉촉해져 있었다. 30대 초반의 그 여인도 심한 봄살을 앓고 있었다.
꽃이 피어나는 것을 봐야 하는 것은 고통이었고 꽃이 지는 모습은 처절함 바로 그것이었다. 그녀는 자꾸만 생각나는 아픈 기억을 삼키느라 봄살을 피해 이국땅으로 왔지만 그 아픈 상처가 쉽게 아물지 않고 있었다. 우리가 그 집을 나와 길을 걸을 때 목련꽃도 모두 비에 흠뻑 젖어 있었다. 나는 꽃피는 날이면 몇 년 동안 그때의 노래가 떠오르곤 했다.
봄볕이 따사로운 꼬리를 내리고 사뿐히 내려앉는다. 언제나 뜨고 지는 햇살이건만 봄의 향기를 실은 빛은 살갑다.
소나무 사이에서 부는 바람은 소리 높이지 않고 나지막하게 다가온다. 그 소리 높이고 싶어 아쉬움이 있으면 숲을 잠시 깨우기도 한다. 잎새에 부는 바람 솔솔 불어와 한낮의 열기를 조금만 거들면 어느새 졸음이 오기도 할 것이다. 유난히 많이 부는 봄바람에 나무는 흔들리면서 뿌리로부터 물을 길어 올려 그 멀지 않은 날에 봄볕은 꽃을 활짝 피우리라.
봄꽃들이 꽃내음을 풍기며 뭇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동안 심술궂은 봄비는 봄꽃에게 심한 봄살을 앓게 한다. 낙화는 땅에서 영혼을 잠재운다. 꽃은 지기 위해 피는 것이지 영원하기 위해 피어나는 것은 아니다.
봄꽃이 피어있는 동안 봄살을 앓는다는 것은 어떤 이에게는 슬픈 상처를 기억하게 하지만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아름다운 성숙이기도 하다.
[김태식]
미국해운회사 일본지사장(전)
온마음재가센터 사회복지사(현)
울산신문 등대문학상 단편소설 당선 등단
해양문학상 논픽션 소설 당선
사실문학 시 당선 등단
제4회 코스미안상 수상
이메일 : wavekt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