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서 칼럼] 이순신정신을 우리 시대의 정신으로

부산여해재단 이순신 독후감 공모에 부쳐

부산여해재단에서 2025년 이순신 독후감을 공모한다. 올해로 아홉 번째이다. 지역소멸의 속도 만큼 독서 인구가 급감한다고 걱정들을 하지만 이순신 읽기의 열기는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여러 해 전부터 이순신 독후감 공모 심사에 참여하고 있는 필자의 감회 역시 남다르다.

 

이순신, 우리사회가 호명하는 그의 이름은 대개 위기 상황 시 구국의 상징으로 기능하였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우리사회의 '이순신현상'은 매우 징후적이다. 이순신은 특정한 종류의 이해 구조 안으로 흡수되어 그 틀을 유지하고 갱신하기 위한 구성요소로 변환되기 때문이다. 혼란기나 정치적 과도기에 진영을 초월하여 이순신을 소환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난중일기》에는 이순신이 전쟁을 치르는 동안에도 책을 읽고 글을 쓴 대목이 여럿 기술되어 있다. 중국의 역사책 《송사》를 읽고 쓴 그의 정유년 일기에는 알려진 바대로 역사 속 인물의 행적을 살피며 나라를 걱정하는 이순신의 애국충정으로 가득하다. 

 

이순신 책 읽기의 또 다른 진수인《증손전수방략》은 오랜 지우이기도 한 류성룡이 전해주어 이순신이 큰 도움을 받은 책이었다. "수전과 육전, 화공법에 대한 전술을 일일이 설명한 참으로 만고에 뛰어난 이론"이라는 꼼꼼한 책평을 이순신은 자신의 일기에 남겼다.

 

《난중일기》는 사료적 가치 외에도 후세에 미친 문학적 성취 또한 작지 않다. 필자는 제2차 진주성 싸움(1593년)이 조선의 패배로 끝난 후 그가 기록한 구절을 읽노라면 지금도 가슴이 서늘하다. 

 

소설 《칼의 노래》를 썼던 김훈은 "홀로 뱃전에 앉아 있었다"는 《난중일기》의 이 문장을 두고, "이것은 죽이는 문장입니다. 슬프고 비통하고 곡을 하고 땅을 치고 울고불고하는 것이 아니고 나는 밤새 혼자 앉아 있었다. 혼자 앉아 있었다는 그 물리적 사실을 객관적으로 진술한 것이죠. 거기에 무슨 형용사와 수사학을 동원해서 수다를 떨어본들, ‘나는 밤새 혼자 앉아 있었다’를 당할 도리가 없습니다. 이것은 전연 수사학의 세계가 아닙니다. 그것은 아주 강력한 주어와 동사의 세계죠. 내가 사랑하는 주어와 동사의 세계는 바로 이런 것입니다. 그분은 사실에 입각해 있습니다."라고 평했다. 이순신 글쓰기는 후대 글쓰기의 전범이 되기도 했다.

 

하나의 얼굴로만 설명할 수 없는 이순신, 그래서 각자 만나고 사유하고 품는 이순신의 얼굴은 다양할 수밖에 없다. 필자에게 이순신은 절체절명의 시기에 지도자로 우뚝 선 단순한 영웅이 아니다. 또한 그의 영웅적인 면모가 용맹스러움 때문에도 정의로움 때문도 아니다. 구국이라는 자신의 신념체계 속에서 기꺼이 자신과 함께 사지로 걸어들어간 이들에 대한 깊은 애정이 없었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일이다. 

 

이순신과 그 시대 이름 없는 서발턴들이 간직했을 공동체적 가치를 지금의 시대정신으로 복기하자. 성숙한 사회로 향하는 여정에서 뜻하지 않게 시대의 복병을 만난 우리가 이순신 읽기를 통해 그것의 큰 걸음을 함께 내딛길 기원한다.

 

 

[이진서]

고석규비평문학관 관장

제6회 코스미안상 수상

lsblyb@naver.com

 

작성 2025.02.27 00:18 수정 2025.02.27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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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