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진왜란 초기인 1592년 8월 28일 ~ 9월 2일(음력) 조선군은 황해도 연안성에서 구로다 나가마사가 이끄는 일본군 제3군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다.
이 전투가 그 유명한 연안성 전투이다. 황해도 초토사 이정암(李廷馣, 1541~1600), 연안부사 김대정, 황해도의 의병장 주덕윤과 장응기 등 1,400여 명이 한 마음으로 합심하여 5,000여 명이 넘는 일본군을 무찔러 황해도의 곡창지대를 지켜낸 뜻깊은 전투였다.
연안성 전투에 관한 가장 주요한 사료는 이정암이 1592년 4월 28일 ~ 10월 7일까지의 일기를 적은 『서정일록(西征日錄)』이다. 이 외에 『선조실록』, 『난중잡록』, 『연려실기술』에서도 연안성 전투와 관련한 기록을 찾을 수 있다.
연안성 전투와 관련한 기록을 살펴보면 전투에서 활약한 인물들 가운데 조신옥(趙信玉)과 홍대방(洪大邦)이라는 이름이 보인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 두 사람의 이름은 충무공 이순신의 『난중일기』에도 등장한다. 다음은 그 해당 기록의 일부이다.
『난중일기』, 1597년 6월 28일
늦게 황해도 배천에 사는 별장 조신옥, 홍대방 등이 와서 만났다.
[원문] 晩 黃海道白川居 別將趙信玉洪大邦等來見.
『난중일기』, 1597년 7월 13일
늦게 이태수, 조신옥, 홍대방이 와서 만나고 또한 적을 토벌할 일을 이야기하였다.
[원문] 晩 李台壽趙信玉洪大邦來見 且言討賊之事.

충무공 이순신은 1597년 백의종군 시기 도원수 권율 막하에 머물 때 조신옥과 홍대방을 만났다. 조경남의 『난중잡록』의 1597년 11월 24일 기록에 조신옥과 홍대방이 원수부 별장(別將)으로 서술되어 있으므로, 위 『난중일기』에 언급된 조신옥과 홍대방은 도원수 권율의 휘하 장수 자격으로 충무공 이순신을 만난 것으로 보인다. 위 『난중일기』의 1597년 6월 28일 기록은 이 두 사람을 황해도 배천 사람으로 서술하였는데, 배천은 바로 연안성과 가까운 고을이다.
조신옥과 홍대방의 신상 정보를 보여주는 가장 정확한 기록은 「기해춘정시용호방목」일 것이다. 이는 임진왜란 직후인 1599년 무과 시험 합격자 명단으로서 조신옥과 홍대방의 이름이 실려 있다. 이 두 사람은 전쟁이 끝나고 함께 무과 시험에 도전했던 것 같다. 방목에 기록된 두 사람의 거주지는 배천(白川)이다.
조신옥은, 『배천조씨대동세보』에 따르면 배천조씨 부흥부원군파(復興府院君派) 파조 조득주(趙得珠)의 9대손으로서, 자는 화중(華重), 생몰년은 임신년(1572년)~병진년(1616년)이다. 홍대방은 「기해춘정시용호방목」에 따르면 본관이 남양(南陽-당홍)이다. 홍대방은 아들 홍응정(洪應淨)이 1629년 무과에 급제하여 「숭정2년기사황태자탄생별시」의 무과급제자 명단에도 그의 이름이 실렸다. 아쉽게도 홍대방의 족보 기록은 찾지 못하였다.
충무공 이순신은 같은 해 7월 15일 조신옥과 홍대방 등을 불러서 떡을 대접하였다. 이날이 백중절인 이유도 있었겠지만, 아마 이 두 사람을 전쟁의 환난을 극복하는데 필요한 인재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다음은 그 해당 기록이다.
『난중일기』, 1597년 7월 15일
늦게 조신옥, 홍대방 등과 여기에 있는 윤선각까지 아홉 사람을 불러 떡을 차려서 대접하였다.
晩招趙信玉洪大邦等及此在尹先覺九人 設餠饋之.
[참고자료]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시스템, 「기해춘정시용호방목(己亥春庭試龍虎榜目)」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시스템, 「숭정2년기사황태자탄생별시(崇禎二年己巳皇太子誕生別試)」
『배천조씨대동세보(白川趙氏大同世譜)』
[윤헌식]
칼럼니스트
이순신전략연구소 선임연구원
저서 : 역사 자료로 보는 난중일기
이메일 : thehand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