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열하고 규제하면 더 하고 싶은 게 인간이다.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산주의자 시진핑은 통제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했다. 3연임을 하기 위한 20차 당대회를 앞두고 ‘농촌 빈곤을 퇴치했다’는 대대적인 선전과 달리 농촌은 여전히 가난하고 어렵고 힘든 삶에 찌들어 있었다. 가난한 중국 농촌의 현실을 보여주는 영화 ‘먼지로 돌아가다’가 세상에 나오자마자 중국은 가뿐하게 상영 금지를 했다. 가난이 불편해서다. 영화가 다루고 있는 가난이 시진핑의 심기를 건드렸다. 그러나 인간은 검열하고 규제하면 더 하고 싶은 강렬한 욕구가 생기는 법이다.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고 보지 말라면 더 보고 싶은 게 인간이다.
중국에서 상영을 금지당하고 모든 온라인 플랫폼에서 삭제당한 비운의 명작 ‘먼지로 돌아가다’는 입소문을 타고 다른 나라에서 불꽃처럼 일어나 흥행에 성공했다. 아이러니다. 근데 보면 볼수록 참 잘 만든 영화다. 인간의 내면을 이토록 섬세하게 표현한 영화는 드물다. 뭐가 문제라서 상영 금지했는지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영화다. 가난이 오히려 인간의 내면 저 깊은 심연에 있는 세포를 흔들어 깨운다. 세상은 절대 공평하지 않다. 불공정한 것이 세상이다. 우리는 탄생부터 불공정하다. 물론 죽음도 불공정하다. 이 불공정을 인정하지 않으면 그냥 인생 불평만 하다가 종치고 만다.
천조국 미국이라고 가난이 없겠는가. 우리나라도 가난은 넘친다. 그게 보편적인 사회다. 보편적인 삶이기에 우린 그 가난을 조금 불편해할 뿐이다. 그 가난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건 예술가의 몫이다. 그런 당연한 걸 검열한다고 하니 공산주의 나라에서 태어나지 않은 걸 감사해야 할 일이다. 걸작은 평범한 일상 가운데서 나오기 힘들다. 남들이 겪지 못하는 고통에서 나오고 남들이 하지 못한 사랑에서 나오고 남들이 겪지 못한 특별함에서 나온다. 그래서 공감하고 눈물이 나고 열광하는 것이다. 그런 영화 ‘먼지가 되다’는 참 잘 만든 영화다.
중국 간쑤성 어느 농촌 마을에 사는 찢어지게 가난한 노총각 유톄는 누군가 버린 집에 살고 있다. 유톄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것은 당나귀 한 마리뿐이다. 같은 마을에 사는 구이잉은 오빠네에서 더부살이하는데 그런 구이잉을 새언니가 4만 원을 받고 유톄에게 팔아넘긴다. 요로 질환으로 대소변을 가리지 못해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살아가지 못하고 아기도 낳을 수 없다. 그런 구이잉을 유톄는 정성을 다해 돌본다. 구이잉도 자신에게 잘 해주는 유톄에게 마음을 열고 결혼사진을 찍으며 신혼생활을 시작한다.
이 둘은 첫날밤을 보내게 되는데 구이잉과 눈도 못 마주치는 유톄는 어색하고 부끄러워 홀로 잠을 청하고 배뇨장애를 앓고 있던 구이잉은 그만 이불에 오줌을 싸고 만다. 유톄는 오줌을 싼 구이잉이 추워할까 봐 아궁이에 불을 더 지펴준다. 구이잉은 불안해하며 다시 또 실수할지 몰라 두려움에 선 채로 잠을 잔다. 유톄는 아직 자신을 경계하며 어색해하는 구이잉이 불편해할까 봐 농사일에만 몰두한다. 그렇게 서로를 배려하는 둘은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열고 다가간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 지주가 병원에 입원하게 되자 마을 사람들은 지주가 죽으면 농사지은 물건들을 팔 수 없다는 것을 이유로 지주와 혈액형이 같은 유톄에게 수혈을 부탁한다. 유테는 자의 반 타의 반 수혈을 하고 돈을 받는다. 마을에 현대화 바람이 불면서 집주인이 나타나 유톄가 살고 있는 집을 철거하고 보상을 받겠노라고 하며 집을 비워달라고 요구한다. 어쩔 수 없이 유테와 구이잉은 급하게 동네 빈집으로 이사를 간다. 유톄는 아내를 위해 집을 짓기로 마음먹고 진흙을 빚어 집을 짓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마을 사람들은 지주를 위해 한 번 더 수혈을 부탁하고 그런 유톄가 안쓰럽기만 구이잉은 도움이 되지 못하는 자신이 원망스럽기만 하다.
고군분투 끝에 집이 완성되지만, 정부에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아파트를 준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하지만 소식도 없던 둘째 형이 와서 이 아파트를 가로채 간다. 어느날 몸에 발진이 생긴 구잉은 보이지 않고 누군가 물에 빠져 죽었다는 동네 사람의 말을 듣게 된다. 한순간에 소중한 사람을 잃은 유톄는 망연자실하다가 창고의 곡식들을 모두 정리하고 그 돈을 마을 사람들에게 나눠준다. 그리고 구이잉을 만나기 위해 하늘나라로 떠난다.
리뤼준 감독은 ‘먼지로 돌아가다’를 만들기 위해 투자를 받기로 했지만 돌연 투자 회사로부터 거절당했다. 하는 수 없이 사비 약 3억 원을 들여 저예산으로 어렵게 영화를 완성했다. 개봉 이후 시진핑에 의해 상영 금지를 당했지만, 입소문이 터지면서 62일 차에 200억 원의 엄청난 수익을 올렸다. 전문 배우는 구이잉 역을 맡은 중국의 국민 며느리 하이칭 한 사람밖에 없다. 유톄 역의 우런린은 감독의 삼촌으로, 극중 유톄처럼 실제 농부이기도 하다. 그런데 어쩌면 연기가 그렇게 자연스러운지 모르겠다. 구이잉 역을 맡은 하이칭은 연기의 장인이다. 표정이며 말투며 약간 굽은 등이며 자고 일어날 때 눌린 머리며 디테일을 완벽하게 연기했다.
저 밑바닥에서 흐르는 중국 문화의 힘을 보았다. 사회 부조리, 기득권, 가난, 인간의 잔인함 등 어느 국가에서나 있는 문제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은 위대한 용기다. 인간에게 남은 마지막 자존심은 경건하고 아름답다. 빌린 달걀 한 알도 반드시 갚아야 마음이 편하고 개울가에서 물을 뜨면서도 딸려 온 올챙이는 다시 살려주고, 동물이지만 가족 같은 말에게 한없는 애정을 쏟는 등 인간의 자존심은 지키는 것은 자존심이 곧 생명과 다를 바 없음을 임을 깨닫게 해준다. 제목처럼 먼지로 사라지는 게 인생인데 먼지와 먼지 사이에 우린 얼마나 많은 삶이 흐르는지 메타포가 강하게 울려온다. 유톄가 가여운 구이잉에게 꽃으로 상처를 가려주며 말한다.
“내가 당신에게 꽃을 심었다”
[최민]
까칠하지만 따뜻한 휴머니스트로
영화를 통해 청춘을 위로받으면서
칼럼니스트와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대학에서는 경제학을 공부하고
플로리스트로 꽃의 경제를 실현하다가
밥벌이로 말단 공무원이 되었다.
이메일 : minchoe293@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