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칼럼] 여자의 일생

고석근

사십 년인가 오십 년이 지나간 뒤에 뜻밖에 딴 볼일이 생겨 이 신부네 집 옆을 지나가다가 그래도 잠시 궁금해서 신부방 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신부는 귀밑머리만 풀린 첫날 밤 모양 그대로 초록 저고리 다홍치마로 아직도 고스란히 앉아 있었습니다.

 

 - 서정주, <신부> 부분  

 

 

첫날 밤에 신랑의 오해로 소박맞게 된 여인은 그대로 앉아 있어야 했다. 사십 년, 오십 년 지나 신랑이 나타난다. 신랑이 어깨를 어루만지자 그제야 초록 재와 다홍 재로 내려앉았다. 삼종지도(三從之道)의 삶이다. 

 

어릴 적, 항상 아프신 엄마는 자주 말씀하셨다. 

 

“너희들만 다 크면 훨훨 날아갈 거다!”

 

우리 형제들이 다 커서 자리를 잡고 살게 되었다. 다 늙으신 엄마가 자주 푸념을 하시더란다. 이제 엄마는 날기는커녕 걷기도 힘들어하셨다. 

 

“자식들이 효자면 뭐하나? 돈이 있으면 뭐하나?”

 

인터넷에 떠도는 말이다. ‘여자 나이 오십이면 예쁜 년이나 못생긴 년이나 같고, 여자 나이 60이면 배운 년이나 못 배운 년이나 같고, 여자 나이 70이면 남편 있는 년이나 없는 년이나 같고, 여자 나이 80이면 산 년이나 죽은 년이나 같다.’

 

삼종지도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여자의 일생이다. 한번 만들어진 가부장 사회의 생명은 질기디질기다. 거의 모든 부부가 상하 관계로 만난다. 평등하게 만나는 법을 배운 적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졸혼을 하는 부부가 많다.  

 

나이 들어 부부가 친구가 될 수는 없을까? 어린아이로 돌아가 오순도순 소꿉놀이하듯 살아갈 수는 없을까?

 

 

[고석근]

수필가

인문학 강사 

한국산문 신인상

제6회 민들레문학상 수상.

이메일: ksk21ccc-@daum.net

 

작성 2025.03.06 10:02 수정 2025.03.06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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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