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서 칼럼] '지금, 여기'에 다시 소환되는 '악의 평범성'

이진서

독일의 철학자이자 역사학자인 베티나 슈탕네트가 2011년에 쓴『예루살렘 이전의 아이히만』은 당시나 지금에서나 문제작이다. 900페이지에 육박하는 그녀의 책 속엔 홀로코스트의 주범 중 한 사람인 아돌프 아이히만이 예루살렘 법정에 서기 전까지의 행적이 빼곡하게 기록되어 있다. 

 

악의 평범성, 이 말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썼던 한나 아렌트 만큼이나 유명세를 치룬 말이다. 평범한 누구라도 악인이 되거나 악행을 저지를 수 있다는 의미로 널리 쓰였지만, 이 말의 의미망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유대인이었던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이 기소되어 열린 공개재판을 지켜본 후 자신의 역작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집필했다. 재판정에서 본 아이히만은 그녀에게도 적잖이 충격이었다. 

 

아렌트의 눈에 비친 아이히만은 유대인 600만 명을 학살한 홀로코스트의 주범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평범’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생겨난 이 ‘악의 평범성’이란 용어는 누구에게나 악이 내재되어 있음을 강조하기보다는 인간이 더 이상 사유하지 않을 때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경고하는 문구로 은유되었다. 아렌트 역시 자신의 저작 결말부에서 아이히만이 저지른 악의 근원은 그의 ‘무사유’ thoughtlessness에 있었음을 거듭 강조한다. 

 

슈탕네트는 아렌트가 강조하는 ‘악의 평범성’에 어느 정도 동의하면서도 아렌트와는 다른 주장을 펼친다. 아이히만은 ‘악의 평범성’의 상징이 아니라 매우 노련하고도 체계적으로 유대인을 학살한 계획된 악인이라는 것이다. 이른바 '악의 확정성'을 주장한다. 최근 글항아리에서 번역 출간된 『예루살렘 이전의 아이히만』에는 이러한 저자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다양한 사례가 수록되어 있다. 

 

책에서 묘사되는 아이히만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평범함으로 위장했을 뿐, 그의 간교한 위장술은 끝이 없었다. 아이히만은 일찍이 반유대주의와 인종주의적 신념으로 가득 차 있었으며 평범한 선행으로 종종 자신을 위장했지만 그것이 그의 내면 전부를 감출 수는 없었다. 재판 과정에서의 아이히만의 발언들, 이를테면 “나는 히틀러가 만든 절멸 작동기계의 작은 톱니바퀴 중 하나일 뿐“이라며 유대인 학살의 책임을 부인한 것이다”나, “그저 명령을 따랐을 뿐”이었다는 아이히만의 주장은 슈탕데트의 집요한 추적으로 모두 거짓이었음이 밝혀졌다. 아이히만은 준비된 ‘확신범’이었다.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에 속았다”

 

슈탕네트가 한 이 도발적인 주장을 통해 그가 단지 주류 체제 안에서 인정받고 출세하고자 했던, 별생각 없이 그저 국가에 복종했던 평범한 시민이라는 그간의 평가는 뒤집혔다. “카페에서 잡담하고 텍스트를 작성하며 발표하거나 동료들과 전문 서적을 읽고 토론하는 와중에도 유대인을 고발하기 위해 꼼꼼히 일하면서 반유대주의 선전 작업을 수행하고 게슈타포와 함께 체포하고 조사한 일들이 사료에 드러나지 않았다면” 알 수 없었을 수많은 사실들은 아이히만이 자신의 죄상을 덮기 위해 어떤 위장술을 발휘했는지를 섬뜩할 정도로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세계적 차원에서의 악의 내면화. 이는 논박할 여지없이 이미 세계적 현상이 되었다. 무력을 앞세워 타인의 영역을 침범하고 와해시키는 일이 어찌 국가 간에만 벌어지는 일이겠는가. 인간적 유대감에 기초한 공동체가 힘없이 무너지고 그 자리를 대신해 상품-화폐 교환이 지배적인 현실이 된 지 오래다.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의 아성은 그 어느 때 보다 굳건하다. 이제 사람들은 더 이상 호혜적 관계에 기대지 않는다. 뭐든 ‘돈 되는’ 일이라면 사력을 다하고 진심을 쏟는다. 교육과 언론, 그리고 종교까지 가세해 이런 현상을 더욱 부추기고 있는 것이 오늘날 우리사회의 단면이다. 

 

스스로 악을 신념화하는 이들이 주류가 된 세상에서 상식을 지키고자 하는 시민들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니 무엇을 해야만 할까. 안타깝게도 선뜻 답하기가 쉽지 않다. 한가지 책무는 부가된 듯하다. 우리사회의 근간이 되는 최소한의 가치체계를 지키기 위한 뼈아픈 성찰의 시간을 가지는 일이다. 우리 모두에게 충격을 주었던 2024년 12월 3일의 밤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이제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계몽주의자가 되어볼 때이다.

 

 

[이진서]

고석규비평문학관 관장

제6회 코스미안상 수상

lsblyb@naver.com

 

작성 2025.03.10 10:18 수정 2025.03.10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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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