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몇 년 전 같은 회사에서 근무했던 직원으로부터 오랜만에 전화가 왔다.
“상무님, 별고 없으시지요? 그동안 연락을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이번에 제가 결혼을 하는데 주례를 부탁드립니다.”
“먼저 축하하네. 하지만 내가 주례를 설 만한 사람이 되겠는가?”
내가 주례를 하기에도 충분하고 함께 근무할 당시 이미 약속을 했다는데 나는 그 약속을 잊고 있었던 모양이다.
대학교수로 계시는 어느 선배는 제자들의 주례를 여러 번 하신 경험이 있기에 여쭈어보니 이런 대답을 해주셨다.
“주례 부탁을 받는 것은 참으로 고마운 일이라네. 본인이 주례를 서게 해 달라고 부탁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혼인 당사자들이 생각해서 요청하는 것인 만큼 흔쾌히 받아들이고 그냥 하면 된다.”
혼인식이 15일 남았을 때부터 출퇴근 길에 운전을 하면서 주례사를 어떻게 쓸 것이며 어떠한 교훈적인 말을 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되었다. 결혼식 날 미리 준비한 내용을 참고해서 신랑, 신부에게 당부의 말을 하기 시작했다.
“오늘은 참으로 경사스러운 날입니다. 두 사람의 오늘이 있기까지에는 양가 부모님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이토록 경사스러운 날에 주례를 맡게 된 저는 4년 전 신랑 OOO군이 근무하는 회사에서 본부장 상무로 재직한 적이 있으며 지금은 현대중공업 석유시추선 신조선 선주 감독관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3단계로 나누어 살아간다고 합니다. 1/3은 자식으로써 1/3은 부부로써 그리고 1/3은 부모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신랑 OOO군과 신부 OOO양은 이미 1/3은 자식으로 살아왔고 오늘은 여러 하객들 앞에서 부부로 살아가겠다는 중요한 의식을 치르는 날입니다. 사람도 때가 되면 둥지를 떠나야 하고 자신들만의 둥지를 다시 만들어야 합니다. 신랑, 신부에게 3가지를 당부합니다.
첫째, 결혼은 이상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것을 직시해야 합니다. 살아가다 보면 서로 다툴 일도 있을 것이고, 의견충돌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뿌리는 서로 다르지만 나중에 자라서 가지가 서로 합쳐지는 연리지라는 나무가 있습니다. 부부가 서로 화목함을 이르러 연리지같은 부부라고 하지요. 아주 귀한 나무이지요. 이 나무처럼 성장이 다르고 환경이 다르긴 해도 서로를 이해하고 결국에는 하나가 되지요. 서로의 각진 부분을 둥그스럼하게 만들어 가야 합니다.
둘째, 양보와 타협을 해야 합니다. 양보는 나 자신을 낮추어야 가능합니다. 나 자신을 낮춘다는 것은 곧 겸손으로 연결되기도 합니다. 타협은 상대방을 이해하고 알아야 합니다. 양보와 타협이야말로 부부간에 있어서 빠트릴 수 없는 덕목입니다. 부부는 누가 위에 있고 아래에 있다는 개념은 없습니다. 동격의 평등입니다. 따라서 양보와 타협은 서로가 평등함을 의미합니다.
셋째, 인내와 끈기입니다. 인내는 나 자신을 시험하는 일이고 끈기는 서로를 끔직히 생각해 주는 일입니다. 상대방에게 맹목적인 인내만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서로를 아껴 주는 인내와 끈기를 대화로 풀어 나가야 합니다. 살아가다 보면 남편은 처가에 대한 불만, 아내는 시집에 대한 불만이 당연히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럴 때 ‘인내와 끈기’라는 지혜를 발휘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하면 모든 것이 풀립니다.
사람들은 흔히, ‘잘 먹고 잘 살아라’ 고들 말합니다. 그야말로 ‘자식 낳고, 잘 산다는 것’이 부모님께 효도하는 길이고, 사회에 봉사하는 길입니다.
끝으로 오늘 이렇게 혼인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신 부모님께 다시 한번 고마워하십시오. 그리고 부디 살아가면서 ‘다툼은 하되 둘 사이에 금은 가지 않도록 하고 의견충돌은 있되 깊은 상처가 남지 않도록 하십시오.’ 아울러 하객 여러분들은 인생의 새로운 출발을 하는 부부에게 축복해 주시고 행복하기를 기원해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결혼 후 몇 개월이 지난 어느 날, 신랑으로부터 “저희들, 아기 가졌습니다.”라는 연락이 왔고, 예쁜 딸을 출산했다는 기쁜 목소리를 들었을 때 나는 마치 나의 손녀를 얻은 듯이 기뻤다. 얼마 전에는 딸의 백일 떡을 회사 직원들과 나누어 먹었다는 전화를 받기도 했다. 그들의 행복하게 사는 모습이 나의 눈에 선했다.
[김태식]
미국해운회사 일본지사장(전)
온마음재가센터 사회복지사(현)
울산신문 등대문학상 단편소설 당선 등단
해양문학상 논픽션 소설 당선
사실문학 시 당선 등단
제4회 코스미안상 수상
이메일 : wavekt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