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헌식의 역사칼럼] 난중일기에 등장하는 송강 정철의 조카 정원명

윤헌식

충무공 이순신이 임진왜란 시기에 쓴 『난중일기』에는 당대의 많은 인물들의 이름이 등장한다. 그의 친인척들을 비롯하여 육군과 수군의 장수들이나 조정 대신들 등이 그러한 인물들이다. 그 가운데에는 조선시대 문신이자 문인으로 유명한 송강(松江) 정철(鄭澈, 1536~1593년)과 그의 조카 정원명의 이름도 나타난다. 다음은 그 두 사람이 언급된 『난중일기』의 가장 이른 기록이다.

 

『난중일기』, 1593년 2월 16일

 

“정 재상이 사은사가 되어 명나라에 간다.”라는 소식을 들었기에 노비단자를 정원명에게 보냈는데 그것을 사은사 행차에게 전해주도록 일러서 보냈다. 

 

[원문] 聞鄭相爲謝恩使赴京云 故路費單字 付送于鄭元明處 持傳其使行次事敎送矣.

 

위 기록의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당시의 시대 상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다음 해인 1593년 1월 초 조명연합군은 평양성 전투를 통해 일본군에게 빼앗겼던 평양을 수복하였다. 이에 조선은 명나라에 사례를 하기 위해 정철을 명나라로 보낼 사은사로 임명하였다. 정철은 1월 11일경 사은사로 임명되었지만, 서울이 수복된 이후인 6월경이 되어서야 명나라로 출발하였다. 위 『난중일기』 기록에 언급된 "정 재상이 사은사가 되어 명나라에 간다.”라는 소식은 이러한 역사적 배경에서 비롯된 것이다.

 

​명나라로 가는 사신 일행이 사용할 여비는 관례에 의하여 각 도의 감사, 병사, 수사, 수령들이 보내주는 물품으로 충당되었다. 『명종실록』이나 『선조실록』의 기사(『명종실록』 권9, 명종4년-1549 3월13일 계미 1번째 기사; 『선조실록』 권14, 선조13년-1580 8월5일 임인 1번째 기사)에서 당시 그러한 관례가 있었던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위 『난중일기』의 기록에 언급된 노비단자는 명나라로 가는 여비로 쓰일 물품들의 목록을 적은 문서로서, 당시 충무공 이순신이 전라좌수사였던 까닭으로 관례에 따라 정철의 여비 일부를 부담한 것이다.

 

 

위 기록에 언급된 정원명(鄭元溟)은 송강 정철의 둘째 형인 정소(鄭沼)의 서얼 아들이다. 『영일정씨세보』에 따르면, 그의 자는 사호(士浩)이며 생몰년은 1561~1645년이다. 위 기록에는 그의 이름이 '鄭元明'으로 잘못 적혀 있지만, 『난중일기』의 이후 기록에는 '鄭元溟'으로 제대로 적혀 있다. 『난중일기』에는 정원명의 이름이 여러 차례 나타나는데, 그 내용을 살펴보면 전라좌수영에서 군관 정도의 관직을 가지고 군무를 보았던 것으로 보인다.

 

​정원명의 아버지 정소는, 1545년 을사사화에 계림군이 관련되어 그 일족으로서 아버지가 유배당하자 순천으로 낙향하여 살았다. 이는 정철에 관한 여러 조선시대 문헌에서 쉽게 확인되며, 정철에 관한 많은 연구 자료에서도 이러한 내용이 자주 언급되고 있다. 지금의 전남 순천시에는 정소와 관련된 역사적 흔적이 여럿 남아 있다. 이긍익의 『연려실기술』에는 순천의 청사사(菁莎祠)에 정소를 모셨다는 기록이 있는데, 청사사는 후일 곡수서원(曲水書院)으로 재건되어 지금의 전남 순천시 조례동에 현전한다. 구암 이정(李楨)의 문집에 수록된 「임청대비음식(臨淸臺碑陰識)」에 따르면, 지금의 전남 순천시 옥천동 옥천서원(玉川書院)에 있는 임청대 뒷면의 음기(陰記)가 정소가 쓴 글이라고 한다. 붕당정치의 아이콘 같은 인물인 정철의 이력을 감안하면, 정소가 순천으로 낙향하여 다시는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은 사실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순천 임청대(順天臨淸臺) - 자료출처: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정소의 아들 정원명 또한 그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순천에 거주하였다. 그가 전라좌수영에서 군 복무를 한 이유도 그의 거주지인 순천이 전라좌수영에 소속된 군현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난중일기』의 기록에 따르면 충무공 이순신이 백의종군 길 도중 순천에 이르렀을 때 정원명의 집에 들른 적이 있었는데, 내용의 정황으로 보아 그 집에서 하룻밤을 보낸 것 같다. 다음은 그 해당 기록이다.

 

​『난중일기』, 1597년 4월 27일

 

순천 송원에 이르니 이득종, 정선이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저녁에 정원명의 집에 이르니 원수(권율)가 내가 온 것을 알고는 군관 권승경을 보내어 조문하고 또한 안부도 물었는데 위로하는 말이 매우 간곡하였다.

 

[참고자료]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영일정씨세보(迎日鄭氏世譜)』

한국고전종합DB, 이긍익(李肯翊),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별집권4, 「사전전고(祀典典故)」-「서원(書院)」

한국고전종합DB, 이정(李楨), 『구암집(龜巖集)』 권1, 「식(識)」-「임청대비음식(臨淸臺碑陰識)」

 

 

[윤헌식]

칼럼니스트

이순신전략연구소 선임연구원

저서 : 역사 자료로 보는 난중일기

이메일 : thehand8@hanmail.net

 

작성 2025.03.21 10:52 수정 2025.03.21 11:05
Copyrights ⓒ 코스미안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한별기자 뉴스보기
댓글 0개 (1/1 페이지)
댓글등록-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글의 게시를 삼가주세요.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Shorts 동영상 더보기
2025년 4월 24일
2025년 4월 23일
2025년 4월 22일
나는 지금 '행복하다'
2025년 4월 21일
2025년 4월 20일
2025년 4월 19일
2025년 4월 18일
2025년 4월 17일
2025년 4월 17일
2025년 4월 16일
2025년 4월 15일
2025년 4월 14일
2025년 4월 13일
2025년 4월 13일
2025년 4월 13일
2025년 4월 13일
2025년 4월 13일
2025년 4월 12일
2025년 4월 12일
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