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수 칼럼] 시니어(Senior), 의식의 변화를 이루자

홍영수

얼마 전 공원을 산책했다. 이른 봄날, 공원 둘레를 몇 바퀴 돌았는데 햇볕이 잘 드는 벤치에 앉아있던 허리가 구부정한 백두옹이 여전히 그 자리에 앉아있었다. 

 

의학의 발달과 건강에 관한 관심 등, 그 어떤 이유로든 노인의 인구가 증대됨에 따른 사회적인 현상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일어나고 있다. 대표적인 예는 현행 60세인 법정 정년을 65세로 5년 늘리는 방안에 10명 중 8명꼴로 찬성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며칠 전 나왔다. 이와 함께 전체 인구 대비 노인층의 비율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우리 속담에 ‘나이 들면 어린애가 되어 간다’는 말이 있다. 어린이나 노인은 여러 면에서 홀로서기가 힘들어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라는 뜻일 것이다. 이런 공통점이 있는 반면에 차이점은 어린이들은 부모의 사랑을 흠뻑 받고 관심을 받으면서 노인들은 대체적으로 경원시하는 경향이 있다. 여기서 오는 고립감을 느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오죽했으면 ‘인종차별’과 ‘성차별’처럼 연령차별 하는 ‘ageism’의 현상이 나타나고 있겠는가.

 

역사의 전통을 보더라도 유교 사상이나 그리스도교의 십계명, 부모은중경의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동서양을 막론하고 나이 들어 늙어가는 어른들을 공경하고 보살피라는 말이 나온다. 그만큼 관심과 사랑과 배려가 필요한 게 노인이다. 특히 사회적 관심이 필요한 시점이 바로 고령자의 문제가 아닌가 한다. 물론, 작금의 언론지상에도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기도 하다.

 

예전에 조선시대의 유명한 화가의 고택을 방문했는데, 그 동네 한 가운데 오래된 정나무가 있었다. 고목이었는데 곧게 자라지 않고 줄기와 가지들이 이리저리 구부러진 형태였다. 저토록 수령이 많은 나무가 지금까지 살아남아 도끼와 톱날에 찍히지 않고 잘리지 않은 것은, 목수의 시선으로 봤을 때 필요치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살아남아 동네 사람들의 그늘이 되어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영혼들이 앞 뒷산으로 날아가지 않고 오순도순 함께 모여 얘기 꽃을 피우는 장소가 되어준 것이다. 이것은 장자의 시선이다.

 

이렇듯 비록 신체적, 정신적으로 허약하고 흔들릴 수 있는 노인의 삶이란 비틀어진 나무가 베이지 않고 살아남듯이 쓸모없는 것의 쓸모 있음, 장자의 무용지대용(無用之大用)의 의미로 되새겨봐야 하지 않을까.

 

나무 자체의 유용성을 기준으로 좋은 목재의 쓰임으로만 보는 본질적인 문제를 떠나서 좀 더 높고 먼 차원에서 바라보는 비본질적인 시선, 즉 쓸모없음에서 쓸모 있음을 찾고 발견하는 시각주의의 관점이 필요한 것이다. 굽고 휘어진 나무를 보고 구들장을 데우는, 그래서 장작의 땔감으로만 보는 시선이 아닌, 햇볕을 가리는 그늘과, 어린이가 뛰놀고 노인들이 평상을 펴고 바둑 장기를 두면서 옛 얘기 지줄대고, 새들이 죽지 접고 둥지를 찾아든다는 시각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래서 작은 시골 동네 고목의 정자나무도 살아남아 그때 보았던 노인분들의 쉼터가 되어주고 새들의 노랫소리가 울렸던 것이 아닐까.

 

말라비틀어지고 심하게 굽어 금방이라도 꺾일 것만 같은 나무를, 너무나 경제적 가치와 실용주의적 셈법으로만 바라보지 말고, 비록 무용한 나무일지라도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에 심어놓고 새 소리 들으면서 낮잠도 자고 층층이 쌓아 온 인생 뒤안길의 얘기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보자. 좀 더 넓은 시야로 보다, 큰 세계를 바라보자. 

 

다양한 세계가 존재하고 하루가 멀게 급변하는 세상에 한쪽 눈만으로 보는 시각을 접고 사시의 눈을 버리면 비록 나이 든 노인일지라도 적재적소에 사회적인 쓰임이 보일 것이다. 나이 든 만큼의 풍부한 경험을 쌓은 소중한 자산을 헛되이 낭비할 수는 없잖은가. 결코, 공원 산책할 때 흔히 볼 수 있는 공원의 의자에 앉아 그 의자를 따뜻하게 하는 역할(benchwarmer)을 벗어나게 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러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노인들의 자세 또한 변화가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특히 노인은 미래의 희망보다는 살아온 만큼의 기억과 추억들에 얽매인다. 그것은 살아 온 날 보다 살아야 할 날이 짧음을 알기 때문에 과거의 삶을 뒤돌아보며 때론, 조바심을 갖게 된다.

 

장자의 제물론에 나오는 오상아(吾喪我)에서 알 수 있듯이, 나를 잃고, 나를 여의는 그래서 평소의 틀에 박힌 고정불변의 시각을 벗어나 새로운 눈으로 볼 수 있는 시선을 지녀야 한다. 이분법적인 사고방식과 배타적인 고집을 버리고 포용하고 수용할 수 있는 긍정적 사고를 지녀야 주어진 분야에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진정한 의식의 변화를 이룰 때만이 가능한 것이다.

 

 

[홍영수] 

시인. 문학평론가

제7회 매일신문 시니어 문학상 

제3회 코스미안상 대상(칼럼)

제4회 한탄강문학상 대상

제7회 보령해변시인학교 금상 

제6회 아산문학상 금상 

제5회 순암 안정복 문학상 

제6회 최충 문학상 

시집 『흔적의 꽃』, 시산맥사, 2017.

이메일 jisrak@hanmail.net

 

작성 2025.03.24 11:23 수정 2025.03.24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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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