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영의 낭만詩객] 미라보 다리

이순영

파리는 낭만이다. 낭만의 대명사 파리는 낭만에 대한 그리움이다. 잘사는 나라에 대한 그리움이며 잘 사는 사람들의 사랑에 대한 그리움이며 잘사는 사람들에 대한 이별까지도 그리움이다. 미라보 다리 위를 걸어가는 사람들은 왠지 특별할 것 같은 사대주의 근성이 젊은 날을 지배했다. 알랭 드롱이 걸어갔을 것 같은 도시, 옷깃을 세운 사르트르 철학자가 걸어갔을 것 같은 도시, 멋진 옷을 입은 연인들이 팔짱을 끼고 걸어갔을 것 같은 도시가 파리다. 그랬다. 늘 파리의 낭만을 부러워했고 파리의 사랑을 부러워했다. 

 

나이를 먹고 세상을 이해할 때가 되니 파리의 미라보 다리나 청계천 광통교나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러나 젊은 날엔 어찌나 파리를 가보고 싶은지 결혼하면 신혼여행은 파리로 보내달라고 부모님을 조르기까지 했다. 결국 내 허영심을 꺾어버린 부모님 덕분에 파리로 신혼여행은 못 갔다. 파리를 제집 드나들 듯이 하는 요즘 젊은이들을 보면 세상 참 좋아졌다는 말로 부러움을 대신 하지만 실제로 부럽지 않다. 부럽지 않을 만큼 정신적 성장을 이룬 탓이라고 자위한다.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강이 흐르고

우리들의 사랑도 흘러간다

그러나 괴로움에 이어서 오는 기쁨을

나는 또한 기억하고 있나니,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흘러가는데, 나는 이곳에 머무르네

 

손에 손을 잡고 얼굴 마주하며

우리의 팔 밑 다리 아래로

지친 듯 흘러가는 영원의 물결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이곳에 머무르네

 

흐르는 강물처럼 사랑은 흘러간다 

삶이란 이다지도 지루하고

희망은 이토록 강렬한지

 

날이 가고 세월이 지나면 가버린 시간도

사랑도 돌아오지 않고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강만 흐른다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가는데 나는 이곳에 머무르네

 

파리를 가보지 않더라도 기욤 아폴리네르 ‘미라보 다리’를 조용히 읊조리며 한 시대의 문학은 사람들의 정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냥 해석 없이도 참 좋은 ‘시’가 ‘미라보 다리’이기 때문이다. 미라보 다리는 파리 사람들에게 대서사를 만들어 주는 장소다. 흐르는 강물처럼 사랑이 왔다가 흘러가고 삶도 흘러가고 세월도 흘러간다. 미라보 다리 위에 서성이는 시간과 회한과 사랑은 우리네 삶의 이야기다. 열정으로 불붙었던 사랑은 이별의 찬물로 꺼지고 미라보 다리 위에서 흘러가는 강물을 망연히 바라보며 삶과 죽음 사이를 망설였을지 모른다. 

 

사랑의 열병을 앓은 사람들은 안다. 그 지독한 열병으로 사랑보다 이별을 먼저 생각한다는 것을 안다. 기욤 아폴리네르도 사랑보다 이별의 열병을 앓았다. 피카소가 소개해 준 화가 마리 로랑생을 만나고 나서 더 이상 사랑할 수 없다고 할 만큼 마리 로랑생에게 흠뻑 빠져 들었다. 마리 로랑생이 미라보 다리가 가까운 곳으로 이사 가자 기욤 아폴리네르는 더 생각할 것도 없이 마리 로랑생이 이사한 곳 바로 옆으로 이사한다. 둘은 미라보 다리를 수없이 오가며 사랑의 노래를 불렀을 것이다. 파리가 그들 것이었고 미라보 다리가 그들 것이었다. 흘러가는 강물에 사랑을 띄워 영원할 것 같은 마음을 흘려보냈을 것이다. 그게 사랑이니까. 

 

영원할 것 같았던 사랑도 어딘가에 숨은 이별이 불쑥 튀어나오기 마련이다. 기욤 아폴리네르는 미술품 도둑으로 몰리고 만다. 시인, 작가, 비평가이자 예술 이론가인 그가 뭐가 아쉬워서 미술품을 훔쳤다는 누명을 쓴 것인지 모르지만, 설상가상으로 마리 로랑생에게 이별 통보를 받게 된다. 그렇다. 나쁜 일은 한꺼번에 몰려오는 법인가 보다. 기욤 아폴리네르에게 미라보 다리는 사랑의 다리가 되었다가 이별의 다리가 된다. 그의 시처럼 삶이란 이다지도 지루하고 희망은 이토록 강렬한 것인지 그 아픔이 내게도 전해오는 듯하다. 그의 영혼은 지금도 미라보 다리 위에 머무르고 있을까.

 

세월은 흘러가는데

나는 이곳에 머무르네

 

 

[이순영]

수필가

칼럼니스트

이메일eee0411@yahoo.com

 

작성 2025.03.27 10:27 수정 2025.03.27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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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