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칼럼]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

고석근

 노동자가 이윤 낳는 기계가 아닌 것처럼

 아내는 나의 몸종이 아니고

 평등하게 사랑하는 친구이며 부부라는 것을

 우리의 모든 관계는 신뢰와 존중과

 민주주의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잔업 끝내고 돌아올 아내를 기다리며

 이불 홑청을 꿰매면서

 아픈 각성의 바늘을 찌른다

 

 - 박노해, <이불을 꿰매면서> 부분  

 

 

중국의 임제 선사가 사자후를 토했다.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立處皆眞), 이르는 곳마다 네가 주인이 되면 그 서 있는 자리가 바로 진리다.”

 

우리는 흔히 진리가 이 세상 어딘가에 객관적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진리는 밖에 없다. 우리가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게 되면,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그 자리에 진리가 있다.

 

시인은 노동 운동을 하면서도 집에서는 왕으로 군림했다. 아내를 부려 먹었다.

 

“밥 달라. 물 달라.” 

 

삶의 주인은 남에게 기생하지 않는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꾸려간다. 시인은 깨닫는다. 아내도 자신과 같은 고귀한 인간임을. 그는 이제 자신의 삶을 스스로 구성해가는 삶의 주인이 되었다.

 

시인은 이불을 꿰매면서 아픈 각성의 바늘을 찌른다. 시인의 집에서 진리가 함빡 피어난다.  

 

삶의 주인이 되면, 우리 안에서 영혼이 깨어난다. 영혼이 천지자연과 접속한다. 천지자연과 인간의 길(道)을 저절로 알게 된다.  

 

 

[고석근]

수필가

인문학 강사 

한국산문 신인상

제6회 민들레문학상 수상.

이메일: ksk21ccc-@daum.net

 

작성 2025.03.27 10:59 수정 2025.03.27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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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