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헌식의 역사칼럼] 『난중일기』의 명량해전 기록에 나타난 조선 수군의 단병기

윤헌식

충무공 이순신이 『난중일기』에 적은 명량해전 기록은 당시의 급박한 전투 상황을 상세히 묘사한 자료이다. 이 명량해전 기록은 TV 드라마 같은 극적인 내용을 담은 자료로서 많은 분들이 그 내용을 잘 알고 계실 것이다. 

 

이 기록에는 통제사 이순신의 명령에 의해 거제현령 안위가 판옥선을 이끌고 적선들 사이로 돌입하여 근접전을 벌이는 내용이 있다. 그 내용에는 조선 수군의 몇 가지 단병기가 등장하는데, 이들 단병기가 어떤 무기인지 설명을 해주는 연구 자료가 거의 없으므로 본 칼럼에서 이들을 한번 살펴보려고 한다. 다음은 『난중일기』의 명량해전 해당 기록이다.

 

『난중일기』, 1597년 9월 16일

 

두 배가 앞서 나아갈 때 적장이 탄 배가 그 휘하의 배 2척을 지휘하며 한꺼번에 안위(거제현령)의 배에 개미 떼처럼 달라붙어서 다투어 기어올랐다. 안위와 배 위의 사람들이 각기 죽을힘을 다해서 혹 능장을 가지고, 혹 장창을 쥐고, 혹 수마석 덩어리로 무수히 마구 공격하다가 배 위의 사람들이 거의 힘이 다하였다.

 

[원문] 兩船先登之際 賊將所騎船指其麾下船二隻 一時蟻附安衛船 攀緣爭登. 安衛及船上之人 各盡死力 或持稜杖 或握長槍 或水磨石塊 無數乱擊 船上之人 幾至力盡.

 

​임진왜란 시기 조선 수군은 전투를 벌일 때 주로 화포와 활을 이용한 원거리 사격으로 일본군을 무찔렀다. 특히 화약 병기인 화포를 이용한 함포 사격은 일본군과의 해상 전투에서 조선 수군이 압도적인 전력의 우위를 점하게 해주는 주요한 요인이 되었다.

 

​명량해전은 기존에 조선 수군이 벌인 전투와 달리 일부 선박에서 근접전이 벌어졌다. 선박 규모가 조선 수군은 13척, 일본군은 130여 척이라는 큰 차이가 있었기 때문에, 피치 못하게 조선 수군은 일부 선박이 근접전을 벌이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위 『난중일기』의 기록을 살펴보면 거제현령 안위가 지휘하던 판옥선의 군사들은 일본군 3척의 배와 목숨을 건 치열한 근접전을 벌였다. 이 기록에는 조선 수군이 일본군과 싸우면서 능장, 장창, 수마석과 같은 무기를 사용하였다고 서술되어 있다.

 

능장은 각이 진 곤방(棍棒)류를 통칭하는 용어이다. 국사편찬위원회의 『조선왕조실록』 사이트이나 한국고전종합DB 사이트에서 '능장(稜杖)'을 검색해 보면 이 용어의 용례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이원익의 『오리집』을 비롯한 조선 중기의 문헌에 종종 삼릉장(三稜杖)이라는 용어가 등장하는 점으로 보아 임진왜란 전후의 시기에 사용된 능장은 주로 삼각으로 제작되었던 것 같다. 능장을 각을 세워 제작한 이유는 당연히 타격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장창은 동서양을 불문하고 군에서 널리 쓰인 보편적인 무기이다. 명량해전에서 사용되었던 장창의 규격을 명시한 사료는 찾기 어렵지만, 이를 추정해 볼 수 있는 사료는 있다. 1598년 훈련도감의 낭관(郎官) 한교(韓嶠, 1556~1627년)에 의해 편찬된 『무예제보』에 수록된 「장창제(長鎗製)」는 장창의 규격과 재료를 서술하였는데, 『무예제보』의 편찬 시기를 고려하면 이 책에 서술된 장창 규격은 임진왜란 시기의 장창 규격과 같거나 큰 차이가 없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무예제보』에 따르면 당시 장창은 1장 5자 길이의 나무나 대나무로 된 자루에 4냥 이하의 창날을 붙여서 만들어졌다.

 

『무예제보』의 「장창제」 - 자료 출처: 『무예문헌자료집성』(국립민속박물관)

 

수마석은, 조선 후기 각종 화기의 제원과 사용법 등이 서술된 책인 『융원필비』에 수록된 「단석(團石)」에 따르면 화약 병기인 완구(碗口)에서 사용되던 포탄이다. 『중종실록』의 기사(권48, 중종18년-1523년 7월6일 갑술 2번째 기사)에도 수마석을 배에 싣고 다니면서 변란에 대비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며, 『순천부읍지』와 『장흥부읍지』 등에 수록된 「군기(軍器)」에도 수마석이 군기의 종류로 포함되어 있다. 수마석은 상당한 무게를 가진 돌덩이이기 때문에 포탄뿐만 아니라 판옥선에서 적의 선박에 던지는 무기로도 사용되었을 것이다. 이는 판옥선이 규모가 큰 선박이기 때문에 가능한 추정으로서 위 『난중일기』의 명량해전 기록도 이를 입증한다.

 

​[참고자료]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한국고전종합DB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국립민속박물관, 「무예제보(武藝諸譜)」, 『무예문헌자료집성』, 2004년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순천부읍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장흥부읍지』

 

 

[윤헌식]

칼럼니스트

이순신전략연구소 선임연구원

저서 : 역사 자료로 보는 난중일기

이메일 : thehand8@hanmail.net

 

작성 2025.03.28 11:05 수정 2025.03.28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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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