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는 따스한 날씨에는 그냥 집에 버티고 있기에는 견디기 힘들다. 봄 내음 가득 실린 햇살 가득한 야외를 걸으며 자유로운 자신을 느끼고 싶으면 봄이 내려오는 길로 떠나보자.
동해안 7번 국도 옥계역 교차로에서 빠져나와 옥계해변에서 금진항을 거쳐 심곡항으로 이어지는 헌화로 해안 길로 접어들자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해안선에 점점이 박힌 작은 포구마다 갈매기들이 몰려나와 사람을 반기고 차창 너머로 청옥 빛 바닷물에서 푸르스름한 방광이 일자 그제야 지금까지 품어온 마음속의 그리움을 봄볕 밖으로 꺼낸다.

이윽고 도착한 심곡항은 작은 어항이다. 여기서 정동항까지 이어지는 정동심곡 바다부채길은 2017년 조성된 해안 둘레길로, 편도로 약 3㎞이고 왕복한다면 6㎞ 정도를 걷게 된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발표한 ′2025~2026 한국 관광 100선′에 선정된 이 길은 바다와 산, 그리고 하늘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멋진 풍경을 만끽할 수 있으며, 연평균 20만 명 이상이 찾는 특별한 명소이기도 하다. 이 길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일상의 스트레스가 사라지는 경험을 하게 되는데, 이곳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내면의 평화를 찾을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과거 군사 작전용 정찰로로만 사용되다가 관광지로 새롭게 태어난 바다부채길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해안 단구를 따라 조성된 도보 여행 길이다. 바다부채길의 이름은 이곳 땅 모양이 바다를 향해 부채를 펼쳐 놓은 모양이라는 데서 붙여졌다. 해안 단구란 해안을 따라 분포하는 계단 모양의 지형을 나타내는데, 200만∼250만 년 전에 일어난 지각 변동으로 형성된 해안 단구인 바다부채길 전 구간은 천연기념물 제437호로 지정되어 있다.

탐방로는 절벽을 따라 나무 데크와 철제 다리로 조성돼 있다. 비교적 평이하지만 구간에 따라 절벽과 맞닿은 아찔한 데크길도 있으며, 발밑으로 초록빛 수면과 하얀 파도를 내려다보며 걷다 보니 흥분과 스릴도 느끼게 된다. 여기에 바다의 파도 소리와 함께 바람의 속삭임이 어우러지면서, 실제로 자연과 하나가 되는 듯한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바다를 바라보며 깊게 숨을 쉬면서 자연의 품에서 느끼는 평화로움과 안정감은 세상의 모든 근심과 걱정을 덜어낸다.

바다부채길의 중간에 있는 카페 ′윤슬′로 가는 길에는 햇살이 눈 시리게 부서져 내리고, 바닷물은 해안로 담을 넘을 듯 일렁인다. 카페 앞 바다에서 햇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인 윤슬은 오늘따라 봄바람에 몸을 주체하지 못한다. 하얀 외관이 바다의 푸른색과 어우러져 산토리니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2층짜리 아담한 카페는 한적해서 조용히 시간 보내기에 좋다. 잠시 카페의 야외 장의자에 누워 파도가 전해 주는 청아한 갯돌의 울림을 한참 동안 듣는다.

수백 만년에 걸친 지구 역사의 신비, 광활한 동해의 역동을 가까이서 느낄 수 있는 부채길 여정에는 해상광장, 몽돌해변 광장, 투구바위, 부채바위, 전망 타워 등의 특히 눈여겨 볼만 한 명소들이 많다. 파도가 밀려왔다가 물러갈 때마다 '또르르 또르르' 돌 굴러가는 소리를 내는 몽돌해변 옆으로 삼라만상이 그대로 비치는 바다 위에 투구바위가 우람하게 서서 동해를 지켜보고 있다.

심곡항에서 출발한 바다부채길이 끝나는 정동항의 바다와 산에 거대한 썬크루즈 건물이 모습을 드러낸다. 바다 위로 내려앉은 하오의 햇살에 정동항은 생기를 얻어 물빛이 더욱 반짝인다. 오늘 함께 한 바다부채길은 단지 천천히 걷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평온해지고 행복해지는 길이자 자연과 내가 하나가 되는 길이다. 느린 풍경으로 삶의 쉼표에 빠져든 자유롭고 달콤한 시간들. 이렇게 한갓지고 유유자적한 날들은 내 마음마저 깨끗하게 한다.

고개를 드니 흰 구름 몇 조각이 둥실 뜬 정동진의 하늘은 에머랄드빛을 무한정 쏟아내고 그 빛을 고스란히 품은 동해는 눈이 시리도록 푸르다. 오늘따라 봄날의 설렘이 도도한 동해의 파도처럼 가슴으로 밀려든다.

[여계봉 선임기자]
수필가
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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