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명희의 인간로드] 나는 백제다 ‘온조’

전명희

나는 이천육십이년 전 인간 ‘온조’다. 고구려를 세운 아버지 주몽과 어머니 소서노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활을 잘 쏘며 리더십이 뛰어난 아버지 주몽이 새로운 나라를 세우기 위해 졸본 지역으로 이동해 왔다. 외할아버지 연타발은 졸본부여의 왕으로 아들 없이 딸만 셋이었는데 둘째 딸인 어머니 소서노를 아버지 주몽과 결혼시켰다. 어머니는 형 비류와 나를 낳고 아버지를 도와 고구려를 세우는 데 지대한 공을 세운 건국공신이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고구려를 강국으로 발전시켜 나갔다.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지극정성으로 키우신 덕분에 건강한 청년으로 성장했다. 말을 타고 드넓은 평야를 달리며 세상을 호령할 수 있는 인물이 되었고 아버지를 닮아 활쏘기를 아주 잘해 사람들의 칭찬이 마르지 않았다. 또한 형 비류와 남달리 우애가 깊고 부모님께 걱정 끼치는 일은 하지 않았다. 그렇게 큰 걱정 없이 왕자로서의 기백을 잃지 않고 살아오던 중 생각지도 않았던 아버지 아들 유리가 찾아왔다. 아버지는 북부여를 떠날 당시 이미 결혼한 예씨 부인이 있었고 아들이 하나 있었다. 아이가 장성하면 찾아오라는 말을 남기고 졸본으로 와서 어머니를 만나 형 비류와 나를 낳았다.

 

아버지는 유리가 고구려로 오자 매우 기뻐했다. 유리를 위해 잔치를 열고 온 천하에 유리의 존재를 각인시켰다. 그리고 유리를 태자로 책봉했다. 나는 마음이 심란했다. 어머니와 형 비류도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은 당연했다. 유리가 왕이 되면 고구려에서 살기 어려울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나는 어머니와 형 비류를 따로 불러서 앞날을 논의했다. 우리는 결국 고구려를 떠나 새로운 나라를 세우기로 했다. 나는 어머니와 형 비류를 비롯해 나를 따르는 오간과 미려 등 신하들과 백성들을 이끌고 남쪽으로 떠났다. 

 

나를 따르는 백성들을 이끌고 남쪽으로 떠난 나는 한산에 이르러 높은 산에 올라가 백성들이 살기 좋은 지형을 찾아보았다. 한산은 큰 강 옆으로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고 높은 산이 평야를 감싸고 있어 수도를 정하기에 아주 좋은 땅이었다. 나는 이곳 한산에 나라를 세웠다. 이 과정에서 형 비류와 이견과 다툼이 생겼다. 형 지류는 자신을 따르는 무리를 이끌고 바닷가에 나라를 세우겠노라고 선언하고 미추홀로 떠났다. 나는 위례에 수도를 정하고 열 명 신하의 도움을 받아 나라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름을 십제(十濟)라고 지었다. 

 

나와 결별하고 미추홀로 떠났던 형은 땅이 습하고 물이 짜서 백성들이 편히 살 수 없는 곳임을 깨달았다. 형 비류는 내가 세운 십제를 둘러보고자 왔다. 수도는 안정되었고 백성들도 근심 없이 평안하게 살고 있는 것을 보고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다가 병에 걸려 죽고 말았다. 형 비류의 백성들이 모두 우리나라로 다시 돌아와서 함께 살 수 있기를 간청했다. 나는 다시 돌아온 백성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나라 이름을 백제(百濟)로 명명했다. 그리고 나는 왕으로 즉위하고 백성들을 위해 지도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나라를 세우고 2년이 지날 무렵 나는 전쟁에 대비해서 무기를 더 만들고 군사를 훈련시켰다. 그리고 양식을 비축하고 전쟁에 대한 방어 계획을 수립하는 등 만반의 태세를 갖추었다. 내 예상대로 다음 해 9월에 말갈이 북쪽 국경을 침범했다. 나는 병사들을 이끌고 말갈족과의 전쟁에 나가서 용맹하게 싸운 결과 대승을 거두고 돌아왔다. 또 내가 왕위에 오른 지 8년이 되자 나에게 패하고 돌아갔던 말갈군이 이번에는 3천 명의 군사를 이끌고 또 쳐들어왔다. 위례성이 포위당했으나 열흘 후에 말갈군은 군량미가 부족하고 군사의 사기가 떨어져 회군하고 있을 때 나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추격하여 말갈군을 물리쳤다. 그리고 500여 명의 군사를 포로로 잡아 왔다. 

 

마한은 우리와 연맹국이어서 우호적이었다. 나는 사냥터에서 잡은 사슴을 마한 왕에게 보내 친선을 강조했고 수도를 옮길 때에도 마한에 통보했다. 하지만 웅천에 목책을 세우자, 마한 왕이 사신을 보내서 나를 책망했다. 점차 마한과 껄끄러운 관계가 되어 나는 진한과 마한을 합병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먼저 취하고 후환을 없애는 것이 낫다는 결론에 이르러 마한을 습격했다. 그 결과 원산과 금현 두 성이 항복하고 마한을 무너트렸다. 내가 왕이 된 지 27년 만에 이룬 성과였다. 그 이듬해 2월에 나의 맏아들 다루를 태자로 삼고 중앙과 지방의 병무를 맡겼다.

 

가뭄이 극심하던 해 백성들이 서로 잡아먹을 지경에 이르렀다. 사방에 도적이 일어나고 흉년이 들자 천여 가구의 백성들이 고구려로 도망갔다. 나는 백성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나라 곳곳을 돌아보고 백성들을 살피며 위로했다. 그리고 신하들을 보내 백성들에게 농업과 양잠을 권장해 소득을 올려 생활이 나아지도록 했다. 그리고 제단을 쌓아 하늘과 땅에 제사를 올려 백성들의 마음을 위로하며 나라의 안민을 기원했다.

 

나는 아버지의 나라 고구려를 떠나 새로운 나라 백제를 건국하고 백성들을 위해 한평생 헌신했다. 어진 사람들이 사는 풍요로운 땅에서 백제는 날로 발전했고 높아진 문화로 다른 나라의 부러움을 샀다. 나는 이 땅 백제에서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살다가 왕 위에 오른 지 39년이 되던 해 65세로 세상을 떠났다. 

 

 

[전명희]

서울대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다 그만두고

‘밖철학연구소’를 설립해 연구에 몰두했지만

철학 없는 철학이 진정한 철학임을 깨달아

자유로운 떠돌이 여행자가 된 무소유이스트

이메일 jmh1016@yahoo.com

 

작성 2025.03.31 10:40 수정 2025.03.31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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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