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라발갛게 관광객을 황홀한 경치로 눈을 멀게 하는 문광 저수지를 출장 중 일행과 잠시 들렀던 것이 지난달 말이었다. 지난해 망막에 박제했던 산과 강을 입은 채 양쪽에 도열한 은행나무 길 사이를 상상하는 몽롱한 눈빛과 아득한 대화를 흩날리며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차창 밖을 응시했다.
가까워질수록 잉큼잉큼 심장 소리가 차창을 뚫고 나갈 듯이 뛰었다. 곧 우리를 온통 점령하더라도 두 손을 뻗어 기꺼이 정복당해 줄 가슴이 벌렁거렸지만, 제법 깊어졌을 가을만큼 물든 것은 우리의 감성뿐이었다. 이즈음이면, 그럴 것이라 당연하게 받아들인 우리의 설렘에 강물이 끼얹은 것은 여름의 길쭉한 눈을 한 문광 저수지이다.
가마발갛게 제 색을 드러낼 비경은 여태 연두 바른 얼굴로 허공에서 흔들리고 있다. 날짜만 홀로 깊어진 가을이었을 뿐 그곳 ‘문광’의 생명은 여름에서 한 발자국씩 무더위에 지친 속도로 기후 환경에 보조를 맞추고 있다. 은행잎 축제 기간이 무색하게도 올해는 이를 저장하고 찾는 우리처럼 완숙한 표정이 아닌 미숙한 은행잎 길을 걷게 될 줄, 까맣게 몰랐을 이들의 아쉬운 탄성으로 문광이 휩싸였다.
익숙함에 오래 젖다 보면 소중함과 감사하는 마음이 점진적으로 둔감해진다. 우리를 둘러싼 지구의 환경이 영원할 것이란 것도 어쩌면 체계적 둔감으로 당연하게 권리인 양 물들고 있었지만, 생명의 불꽃이 활활 타오르지 않는 작금의 지구의 허파를 보면 그 의무는 사양하고 싶은 건지 시들시들 아픈 모양새이다.
낮과 밤, 암과 수, 생과 사는 동전의 양면처럼 언제나 비교 대상이자 은유의 주 단골이다. 그중 생명과 죽음에서 물리학자가 보는 생명은 가장 흔한 원자로 되어 있다. 현재까지 오직 지구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생명이라 학자들은 말한다. 범우주적으로 본다면 우리가 경외하는 위대한 신비인 '생명'은 어쩌면 환상 같은 아름다운 착시 현상이거나 그것이 온통 휘황하여 지구를 둘러싼 은하계에서도 어딘가 이 빛처럼 반짝이는 생명들이 존재할 거라 끝없이 도전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미지의 세계인 죽음은 부활하지 않으면 알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마저 이 세상에서 ‘나’란 존재가 흔적도 없이 사라질 목숨이 꺼진다면? 도전해도 좋다는 확신은 오직 신만이 할 수 있는 고유의 영역일 것이다. 왜 우리는 사실, 자연스럽지 않은 생명에 가슴이 몽글몽글 뛰고 어찌 보면 자연스럽다는 죽음에 슬금슬금 뒷걸음치는 것일까. 지구인인 이미 지구에서 사는 동안 희귀한 생명에 대를 이어 오랫동안 우리는 노출되었다. 경이로운 이 세계를 독식하는, 선택받은 우리가 영혼과 육체가 이별한다는 죽음과 그 너머를 알 수 없고 극히 적은 사람이 임사체험을 경험했다 하더라도 유체 이탈과 저마다 다른 장소가 아득하여 오히려 두려운 메커니즘으로 탯줄로서 유전된 것이 아닐까.
지구 밖 우주는 너무나 광활하여 무한의 세계라 칭한다. 죽음이 오히려 리얼리티, 은하계에서 유일하게 쏘아 올리는 생명의 불꽃을 푸르게 반짝이는 별에서 우리는 살았고, 살고. 살아갈 것이다. 어쩌면 지구가 발산하는 이 푸른 꽃으로 태어나서 자라고 별이 될 우리는 지금, 지구가 묻고 있다. 희귀한 꽃을 소중하게 품어 물 주고, 가꾸고, 돌보며 아름답게 틔우고 있는지를.
2023년 보건복지부 보고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인구 10만 명당 27.3명이 작년 자살률이었으며 전년 대비 8.5퍼센트가 증가한 수치라고 발표하였다. 이는 2018년 이후로 가장 높은 수치를 말해준다. 굳이 성별로 분리하여 살펴보면, 모두 증가하였고, 남 男 이 9,747명으로 4,231명인 여 女를 앞질렀다.
‘K’를 앞세워 붙이면 전 세계적인 문화가 되는 요즘 우리의 문화, 예술은 물론 음식까지 우리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임이 곳곳에서 증명되고 있는 현상을 마주하고 있다. 문화의 꽃을 피워내는 우리가 달갑지 않은 생명을 경시한다고 볼 수 있는 자살률이 OECD 국가 중 1위라는 기록을 남겼다. 이를 들쳐 보면, 봄 같은 청년과 깊은 가을 같은 노년에서 유독 그늘이 짙다.
세 사람이 길을 갈 때, 한 사람이 길을 잃으면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이 길을 잃으면 아무리 고생한다 한들 이를 수 없다. 길을 잃은 자가 더 많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길을 잃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바라는 바가 있어도 도저히 얻을 수가 없다면, 이 얼마나 슬픈 일인가 장자는 짚어준다. 청년에게 먼저 읽은 세상의 이치와 철학을 귓속말을 전해줄 어른과 세상의 부조리를 젊은 혈기로 혼잣말을 던지는 청년이 스스로 생명의 불꽃을 꺼트리고 있다. 우리가 길을 잃지 않았다고 어찌 말할 수 있을까.
시골에서 닭은 새벽에 울어도 갓난아이의 첫울음 소리는 꿈결 같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다. 우리의 자화상은 흔들린 채 바람은 맞을 뿐 피어나는 꽃이 세계가 주목할 만큼 적은 수로서 씨를 뿌리고 가꾸는 중이다. 실은 인간은 서로를 사랑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존재라 마누엘 푸익이 『거미여인의 키스』로 언급했다. 불완전한 존재인 우리는 늘 사랑스럽지만은 않다. 그렇기에 예수는 ‘사랑’으로 극복할 수 있음을 누차 강조한 것이다.
안될 걸 알면서 억지도 하는 것은 길을 잃은 것이라 그대로 두고 하지 않는 것만 못하다. 위선과 왜곡이 난무하는 굴절된 렌즈가 청년과 노년의 틈에서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다. 모순된 렌즈 안에서도 타고난 성질을 잃어버리지 않는 본성을 잊지 않게 산소를 공급하는 것은, 어쩌면 안과 밖에서 쏘아주는 투명한 사랑만이 두꺼운 렌즈를 깨트릴 수 있을 것이다.
[민은숙]
시인, 칼럼니스트
제4회 코스미안상
제3회 문학뉴스 &시산맥 기후환경문학상
2024 중부광역신문신춘문예
청주시 1인 1책 펴내기 지도 강사
꿈다락학교 시 창작 강사
문화재단 & 예술재단 창작지원금 수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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