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완서 소설가의 2006년 작품 대범한 밥상, 작가 특유의 생생한 문체로 현재를 사는 우리들의 마음을 둘러보게 하는 작품이다. 과연 어떤 밥상이길래 대범한 밥상이라고 제목을 지었을까. 자식의 죽음이라는 하늘이 무너지는 고통 앞에서 쉽게 무너질 수 없었던 할머니의 내면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외 손주 들을 키우기 위해 견딘 그 세월의 슬픔을 직접적이고 과격하게 표현하지 않고 담담하면서도 잔잔하게 물결치듯 독자에게 전하는 작가의 문체는 작품에 완전히 몰입하게 하는 한 편의 장엄한 서사시로 보이게 한다.
대범한 밥상은 몇 개월 시한부 인생을 통보받은 60대 후반의 여성이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이 세 명의 자식에게 공평하게 분배한 유산임에도 분란이 생기자 심란해하다 해괴망측한 소문을 남기고 시골로 사라진 여고 동창생 경실을 만나는 것으로 시작된다. 경실은 외동딸과 사위가 어린 남매를 남긴 채 비행기 사고로 죽자 떨어지지 않으려는 외 손주들이 원하는 대로 같이 모여 살기 위해서 바깥사돈이 홀로 사는 시골로 내려가 살림을 합친다.
고교 동창들 사이에서 사돈간의 할망구와 할아범이 눈치 맞아 함께 산다는 둥 온갖 흉측한 소문이 떠돌았다. 그 소문이 과연 사실인지 주인공이 묻는다. 그러자 경실은 아이들이 말간 눈으로 두 늙은이를 쳐다보면서 왜 안 되냐고 따지니까 대답할 말이 없고 아이들에게 설명할 수 없는 이 세상 상식은 무시해도 좋다는 생각이 단순하게 정리가 되어 내려온 것이라고 대답한다. 주인공은 한 방에서 같이 잔다는 소문에 대해서도 묻는다. 경실은 이에 잠만 잤지만 영감님이 딴짓을 하고 싶어 했다고 해도 그 영감님에게 위로 가 될 수 있다면 거절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답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이 단편의 제목이 왜 대범한 밥상인가 대해 분석할 필요가 있다. 주인공은 함께 밥을 먹으며 물어보기 힘든 것을 아주 대범하게 물어본다. 또한 친구 경실은 주인공의 짐작과 주변에서 들리던 소문과는 다른 진짜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바로 경실이 결단한 삶이 남들의 의혹과 귀를 닫고 자신의 목적이 있는 삶을 살기 위해 대범한 결정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찌 보면 세상의 상식과 반대되는 행동이었지만 외 손주들을 위해 결단한 대범한 선택, 그러한 경실이 차려준 밥상이니 당연히 대범한 밥상이 아닐까. 친구를 위해 차린 시골 밥상의 소박한 음식을 놓고 주고받는 대화는 우리들의 삶의 방식이 어떤 것이 옳은 것인가를 고민하게 한다. 윤리와 규범, 상식이란 것은 무엇일까. 경실은 외손주를 키우기 위해서 남의 이목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선의 선택을 했고 그것 때문에 세상으로부터 비판받을 이유는 전혀 없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어떤가. 자신은 떳떳하지 못하면서 남들의 잘못이나 흠집을 찾아 끊임없이 입방아를 찌어댄다. 아마 그래서 ‘너나 잘해’라는 말이 나온 것이 아닐까. 누구나 죽음 앞에서는 꼼짝 못 하는 것이 인간이다. 그 수많은 재산, 명예, 지위 모든 것을 내려 좋고 떠난다. 그럼에도 우린 온갖 눈앞에 보이는 이익과 이기를 탐닉하고 더 많은 것을 갖기 위해 인간 같지 않은 짓을 저지른다. 우리나라 속담에 자기 눈에 (대)들보는 못 보고 남의 눈에 티는 잘 본다는 말이 있다.
다른 사람의 삶에 어떤 사정이나 아픔이 있는지 모르면서 함부로 떠들지 말고 없는 것까지 지어내어 타인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는 치졸한 삶보다 다른 이들에게 연민과 사랑으로 오히려 상처의 치유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경건한 삶을 살도록 노력하라고 작품은 말하고 있는 것이다.
[민병식]
에세이스트, 칼럼니스트, 시인
현) 한국시산책문인협회 회원
2019 강건문화뉴스 올해의 작가상
2020 코스미안뉴스 인문학칼럼 우수상
2022 전국 김삼의당 공모대전 시 부문 장원
2024 제2회 아주경제 보훈신춘문예 수필 부문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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