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합포해전은 임진왜란 시기인 1592년 5월 7일 조선 수군이 치른 해전이다. 합포해전지는 현재까지도 그 위치가 논란에 쌓여 있다. 1970년대부터 노산 이은상과 해군사관학교 조성도 교수 등이 합포해전지는 창원시 마산합포구 일원이라고 주장하였으며, 여수의 원로 향토사학자 임기봉 선생과 이봉수 이순신전략연구소장 등도 같은 의견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근자에 일부 학자들은 합포해전지를 경남 창원시 진해구 원포동 학개 마을로 주장하고 있다. 학개(鶴浦)가 합포(合浦)와 지명이 비슷하다는 것이 그 주요한 이유이다. 그러나 학개마을은 합포해전지가 될 수 없는 이유를 본 칼럼에서 밝히고자 한다.
지금의 진해구는 조선시대에는 웅천현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삼국사기』, 『고려사』, 『경상도지리지』, 『연려실기술』, 『경상도읍지』, 『세종실록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 『웅천군읍지』 등과 같은 조선시대 문헌을 아무리 뒤져보아도 웅천현에서는 합포라는 지명이 보이지 않는다. 『동여도』, 『해동지도』, 『청구도』, 『대동여지도』를 비롯한 많은 고지도를 찾아보아도 마찬가지이다. 혹시 위 사료들이 담고 있는 지명 기록이 자세하지 않아서 그럴까? 그렇다면 지명이 보다 상세히 수록되어 있는 자료들을 확인해보자.
1. 『호구총수』(1798년 편찬)
1789년에 편찬된 『호구총수』는 당시 각 고을의 면리(面里) 지명을 수록한 자료로서 전국의 면리 지명이 거의 빠짐 없이 실려있다. 다음의 표는, 지금의 진해구 웅천동(행정동) 일대 현재 지명과 이에 대응하는 『호구총수』에 수록된 면리 지명을 나열한 것이다.

위 표에 나열된 지명에는 합포라는 지명이 보이지 않는다. 아래 그림은 위 표에 나열된 지명을 1970년대 지도에 표시한 것으로서 이 지역의 조선시대 지명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2. 『웅천군읍지』 지도(1899년 편찬)
1899년에 편찬된 『웅천군읍지』에 수록된 웅천군 지도는 당시 이 고을의 주요 지명을 상당히 자세히 수록하였다.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 전 자료이기 때문에 현재 지명과 비슷한 지명이 많이 발견된다. 이 지도에도 합포라는 지명은 나타나지 않는다.

3. 『경상남도지지조서』(1914년)
일제강점기인 1914년 일제는 우리나라 전국의 지명을 조사하여 자료로 만들었다. 아래는 당시의 창원군 웅읍면에 해당하는 지명 조사 자료로서 이 지역은 지금의 창원시 진해구 웅천동에 해당한다. 이 자료는 웅읍면의 지도도 함께 수록하였다. 이 두 자료에도 합포라는 지명은 보이지 않는다.


4. 『경상남도 지명조사철』(1959년)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에서 벗어나 1959년 대한민국 최초의 전국 지명 조사를 실시하였다. 현재 국토지리정보원은 홈페이지를 통해 그 1959년 조사 자료를 공공에 제공하고 있다. 아래는 당시의 창원군 웅천면(지금의 창원시 진해구 웅천동) 일부 지역의 자료로서 여기에도 합포 지명은 나타나지 않는다. 이 자료 또한 당시 웅천면의 지도를 함께 수록하였다.


5. 『경상남도 지명조사철』(1965년)
1959년 전국 지명 조사 이후 1965년에도 다시 한번 지명 조사가 이루어졌으며, 그 자료가 현재 국토지리정보원의 홈페이지를 통해 제공되고 있다. 아래는 당시의 창원군 웅천면(지금의 창원시 진해구 웅천동) 일부 지역의 자료로서 여기에도 합포는 보이지 않는다.

6. 1970년대 지도
지금의 창원시 진해구 웅천동 지역은 1970년대까지 어떠한 지명 관련 자료에서도 합포라는 지명이 나타나지 않는다. 아래는 이 지역 일대를 보여주는 1970년대 지도이다.

지금까지 『호구총수』(1798년 편찬), 『웅천군읍지』 지도(1899년 편찬), 『경상남도지지조서』(1914년), 『경상남도 지명조사철』(1959년), 『경상남도 지명조사철』(1965년) 등의 자료를 통해 지금의 창원시 진해구 웅천동 지역의 해당 시기 지명을 살펴보았다. 이들 자료는 상당히 자세한 지명을 수록하였는데, 어디에도 합포라는 지명은 나타나지 않는다.
웅천동 지역에서 합포와 비슷한 지명이 보이는 것은 1980년대부터로서 학개, 합개, 학포 등 여러 가지 형태로 표기되어 나타난다. 웅천의 학개 지명을 1592년 임진왜란 시기 합포해전지와 연결 짓는 것은 전혀 논리적이지 못한 주장이다. 위에서 살펴본 자료들을 조금만 들여다 보더라도 이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일부 학자들은 1904년에 발행된 일본 수로부 지도(馬山浦至釜島水道)를 근거로 하여 진해 학개를 합포해전지로 주장하기도 한다. 아래는 그 해당 지도에서 진해 학개의 일부 지역을 옮겨 놓은 것이다.

위 지도를 살펴보면 ‘合浦末’과 ‘Hakke Kutsu’라는 표기가 보이는데, 이것이 진해 학개를 합포해전지로 주장하는 근거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지금의 진해 학개에 해당하는 곳에 ‘합포’라는 표기가 없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가. ‘合浦末’과 대응되는 ‘合浦’가 지금의 진해 학개가 아닌 다른 곳이 아닐까.
실제로 이 수로부 지도에는 ‘~末’이라는 지명이 여럿 등장하는데, 그에 대응되는 지명이 상당히 멀리 떨어진 위치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가 부산 해운대에서 8.8km 떨어진 신선대에 ‘해운말’이 있다. 이곳이 ‘신선대말’이 아니고 ‘해운말’인 것은 어떤 영역의 끝이라는 의미로 봐야 한다. 위 지도는 오히려 진해 학개가 합포해전지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근거에 가까우며, 지도가 발행된 1904년까지 지금의 진해 학개에 해당하는 곳에 아무 것도 없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자료로 해석된다.
위 일본 수로부 지도와 앞에서 살펴본 『호구총수』, 『웅천군읍지』, 『경상남도지지조서』 등의 자료를 함께 고려해보면 진해 학개 지명은 ‘合浦末’과 ‘Hakke Kutsu’으로부터 파생된 지명으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 즉, 진해 학개는 아무리 빨라도 1900년대 중반 이후에 생긴 지명이다.
[이봉수]
시인
이순신전략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