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생예술’이 뭐냐고 누가 묻는다면 이 물음에 나는 ‘도를 닦는 것’이라고 답하고 싶다. 그 실례 하나 들어보리라. 나에게는 괴짜 형님이 한 분 있었다. 나보다 열 살 위인이 명상(明相) 형님은 일정시대 평안북도 신의주고보를 다니다가 말고 스스로 도 닦는 길에 나서 팔도강산 방방곡곡으로 여러 스승을 찾아다녔다.
깊은 산 속 굴에 들어가 단식 아니면 생식하면서 여러 날 여러 밤 묵상에 잠기기도 하고 방랑하는 옛날 김삿갓처럼 떠돌아다니면서 병든 사람들 고쳐주기도 했다. 그가 처방하는 약이래야 별것도 아니었다. 폐병 결핵 또는 해수병 환자에게는 솔잎은 뜯어다 항아리 꿀물에 담가 보름쯤 뒀다가 그 쩌르르한 사이다 같은 물을 공복에 마시게 했다.
이런 약을 써서 병이 낫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는 언제나 그가 병을 고쳐주는 게 아니고 환자 자신이 고치는 것이라 했다. 그가 처방해 주는 약재의 효험을 믿는 사람에겐 약효가 있고 믿지 않는 사람에겐 없다고 했다. 그리고 사람 몸은 자연치유가 가능한 자구력을 갖고 있다고 했다. 예를 들어 손가락을 베면 피가 좀 나다 저절로 아물지 않느냐며 그 어떤 의사도 어느 누구의 병을 고쳐주는 것이 아니고 환자 스스로 고치도록 좀 도와줄 수 있을 뿐이라 했다. 다른 사람들한테서는 도사님 소리를 듣기도 했지만, 홀어머님 이하 우리 형제들 눈에는 집안 망신이나 시키는 ‘미친놈’일 뿐이었다. 장발에다 거지처럼 누더기옷을 걸치고 가끔 집에 들르면 동네가 창피하다고 어머니는 야단이셨다.
정신 좀 차리고 농사나 지으면서 제발 사람처럼 살아보라고 집안 논밭전지 다 주고 장가까지 보냈으나 농사일은 색시에게 맡기고 여전히 떠돌이 신세였다. 그야말로 예수가 말한 것 같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않고 먼저 그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삶이었다. 어머니 말씀으로는 형이 게으르고 일하기 싫어도 닦는다는 핑계로 그렇게 산다는 거였다.
하기는 신부, 목사, 중들도 그렇다고 할 수 있겠지만. 왜냐하면 남들은 다 애써 일하며 땀 흘려 먹고 사는데 그들은 쉽게 입으로 하느님, 예수, 석가모니 이름이나 부르면서 기도 팔아먹고 사는 셈이니까. 어머님 말씀에 철저히 세뇌되어서였는지 나도 도 닦는 형님을 사람 취급하지 않으면서도 간혹 만나는 기회에 그의 도깨비 같은 소리에 흥미를 조금은 갖게 되었다. 내가 국민학교(초등학교) 다닐 때 하루는 이 도깨비 같은 형님 보고 축지법이란 것이 어떻게 가능하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형님은 나를 조그만 시냇가로 데리고 갔다. 냇물 폭이 2미터도 넘어 보였다.
“태상아, 너 이 냇물 건너뛸 수 있겠니?”
형님이 물으셨다. 못한다고 대답하자 형님이 나를 데리고 같이 냇가로부터 뒷걸음 하다 보니 냇물 폭이 시각적으로 점점 좁혀져 갔다. 그러다 그 폭이 완전히 없어진 듯 물줄기가 하나의 은빛 흰 선처럼 보이는 지짐까지 가서 말했다.
“너 저 선(線)은 뛰어넘을 수 있지?”
“네”
“그럼 됐다. 네 머릿속에 저 하얀 선을 고정시키고 그 선만 보면서 물가로 달려가다 뛰어넘거라. 물가에 가까이 갈 때 네 눈에 냇물 폭이 점점 다시 넓어지는 걸 보지 말고 네 머릿속에 박힌 그 선만 보거라.”
이렇게 일러주셨지만, 그 당시에는 형님의 말씀이 엉터리 같아 나는 형님이 시키는 대로 해보지도 않았다. 훗날에 와서 생각해 보니 형님이 하신 말씀을 수긍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도 한 가지 정말 이상한 것은 한국동란이 나기 꼭 일 년 전에 형님이 집에 들러 일 년 후 큰 난리가 날 테니 양식을 좀 미리 땅속에 묻어두라고 했다. 어머니는 ‘미친놈 미친 소리 한다’고 형을 나무라신 끝에 그래도 혹시나 하는 생각에서 양식을 준비했다가 전쟁 때 양식 걱정을 안 할 수 있었다.
전쟁 때는 산속 굴에 있다가 북한 인민군에게는 남한의 첩자로, 남한 국군에게는 북한의 빨치산으로 오해받아 이가 다 빠지도록 매를 맞기도 하고 누가 뭐라 조롱하고 욕을 해도 그 아무도 나무라거나 탓하지 않으셨다. 형님도 마치 미국의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의 생활신조대로 ‘아무에게도 악의를 품지 않고 모두에게 자비심’으로 대하셨던 것 같다. 또 한 가지 불가사의한 것은 우리 가족이 1972년 초 한국을 떠나 영국에 가 살다가 어느 날 밤 꿈에 나는 형님을 봤다. 꿈에서도 생시 때처럼 온다 간다는 말 없이 형님은 왔다 가셨다.
그런 꿈을 꾼 다음 날 나는 형님의 부고를 받았다. 나에게 작별 인사하러 꿈에 형님이 나타나셨나 보다. 언젠가 형님이 조계사에 들러 청담 스님과 더불어 여러 가지 토론하셨다고 한다. 한참 열띤 토론 끝에 더 이상 말로 이야기가 될 수 없자 형님이 한 스님보고 수고스럽겠지만 뒷간에 가서 똥물 한 바가지만 퍼갖다 달라고 하시고는 바가지에 담긴 똥물을 천천히 쭈욱 다 들이키셨단다. 모르긴 해도 그 자리에 있던 스님들은 하나같이 옛날에 원효 대사(617-686)께서 해골바가지에 고인 빗물을 마시고 크게 깨달음을 얻으셨다는 일화를 생각하게 되었으리라.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가 ‘선도 악도 없다. 사람의 생각이 선도 악도 만든다’라고 했다는 것처럼 형님도 세상에 깨끗한 것도 더러운 것도 없다는 것을 말 대신 행동으로 역설하신 모양이다. 그러고 보면 세상에 절대적인 선도 악도 없는데 사람이 제멋대로, 편리한 대로, 형편 따라 선이니 악이니 하며 아전인수식으로 억지 부리고 우겨온 것 같다. 특히 서양의 기독교에서 악마니 천사니, 흑이니 백이니, 선민이니 이방인이니, 기독교 신자가 아니면 죄다 구원받지 못하고 영원히 저주받을 이교도로 낙인찍는가 하면 하나님이 인간을 위한 제물로 다른 동식물 자연 만물을 창조하셨다느니, 정말 말도 안 되는 천하의 얌체 같은 소리를 벌써 몇천 년째 해 오고 있지 않은가.
기독교인들이 식탁에 앉아 일용할 양식을 주셨다고 하나님이나 주님께 감사 기도할 때 식탁에 오른 제물들 입장에서 보면 이 얼마나 가증스러울까. 이는 마치 해적이나 강도, 강간범들이 실컷 노략질, 강도질, 계집질해 놓고, 저희들 운수 좋았다고 저희들이 섬기는 귀신한테 고사 지내는 것과 다를 바 없지 않을까. 어디 그뿐이랴. 서양 사람들이 예수의 상징이라는 양고기를 즐겨 먹으면서 동양 사람들이 개고기 먹는다고 야만이니 동물학대니 떠들어 대는 것이나, 저희들이 믿는 것은 종교요 신앙이고, 다른 사람들이 믿는 것은 사교나 미신이라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프랑스의 작가 빅토르 위고(1802-1885)가 쓴 ‘레미제라블(1862)’의 주인공 장발장 같이 배고파 빵 한 쪽 훔쳐 먹어도 평생토록 벌 받는 세상에 전 세계 땅덩이를 거의 다 훔치고 약탈하며 천하의 못된 짓은 다 해온 자들이 대속한다는 예수의 피로 속죄받아 지옥에 안 가고 천당 가겠다는 발상부터가 너무너무 뻔뻔하고 가소로운 서양 사람 기독교인들의 ‘육갑’ 아닌가. 그보다는 우리 동양의 음양오행설의 이치가 훨씬 더 자연스럽고 무리가 없는 것 같다.
어두운 밤은 밤이고, 밝은 낮은 낮이지, 어떻게 어둠은 악이고 빛은 선이라 할 수 있으며, 산은 좋고 계곡은 나쁘다 할 수 있나. 그래서 천국이나, 지옥이란 말이 생겼는지 몰라도 남자는 선이고 여자는 악이란 말인가? 세상에 어둠이 없으면 빛도 있을 수 없고, 여자가 없으면 남자도 있을 수 없지 않은가. 둘이 서로 보완하고 서로에게 절대불가결인 동전의 양면 격인데 어쩌자고 이쪽 아니면 저쪽, 나 아니면 남, 백이 아니면 흑이라 하는가?
이런 유치한 억지놀음인 ‘서양육갑’에 ‘골빈당’처럼 맞장구치지 말고 우리 동양 고유의 ‘음양육갑’ 떠는 것이 천만 배 낫지 않을까. 그리고 고양이가 쥐 사랑하듯 이웃 사랑하는 대신 이웃을 존중해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이 창조되었다고 하지만 내 생각에는 인간 특히 서양의 백인, 그중에도 유태인들이 저들 형상대로 저들 하나님 여호와를 만든 것임이 분명하다. 저들의 신화를 만든 것이다. 어디 또 그뿐이랴. 우리 가운데 가장 천대받는 사람으로 창녀가 있다. 하지만 그런 창녀조차 예수의 처가 아니면 벗이 아니었나. 신약성서 누가복음에 나오는 막달라 마리아 말이다.
동서고금을 통해 저지른 이후 필설로 다 형언할 수 없는 잔악무도하고 천인공노할 남성들의 만행이 정복이니, 승리니 하는 영광된 훈장으로 장식돼 왔다. 창녀는 몸을 판다기보다 서비스를 제공한다. 창녀의 서비스는 다른 많은 직업적인 서비스보다 솔직하다. 눈 가리고 아웅 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선적이고 자비롭기까지 하다. 예를 들어 직업적인 날강도, 날도둑, 날사기꾼이라 할 수 있는 일부 정치인, 실업인, 종교인이 부리는 농간에 비하면 말이다. 파는 것으로 말할 것 같으면 창녀나 장사꾼만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좋든 싫든 뭔가를 팔아먹고 산다.
육체노동이든 정신노동이든 감정노동이든 노동을 파는 것이 노동자라면 예술을 파는 것이 예술인이고, 법률 지식이나 의료기술을 파는 것이 변호사나 의사라면 하느님이나 귀신 또는 성인, 성자, 예수, 석가모니 등의 이름을 파는 기도 장사꾼이 종교인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독교와 천주교에서 성찬식으로 예수의 살과 피를 상징한다는 빵과 포도주를 나누지 않는가? 그렇다면 예수야말로 인류의 대속을 위해서이건 아니면 그의 과대망상증에서였건, 또는 예수 자신의 꿈보다는 기독교인들의 이기적인 해몽이든 간에 어떻든 제 몸을 그 누구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오래도록 팔아 온 남창 중의 남창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면 단군할아버지와 곰할머니의 후손이든 아니면 아담과 이브의 자손이든 또는 닭의 알에서 태어났다는 신라 태조 박혁거세의 후예이든 숫처녀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났다는 예수의 제자들이든, 그 어떻든 간에, 우리 모두 따져보면 다 일종의 창녀나 남창들이 아닐까. 다만 보통 사람들은 그 속살과 피(붉은 피든 흰 피든 간에)만 즐기는데 성인(聖人 아닌 性人)들은 그 껍데기 털까지 좋아하는가 보다.
예수는 눈물로 그의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에 입 맞추고 향유를 부은 막달라 마리아의 죄를 사하여 주었다 했고, 한때 우리 사회에 물의를 빚었던 용화교 교주 서백일(본명 한춘 1888-1966)은 수많은 여신도들을 농락 겁탈하고 그들로부터 뽑은 음모로 만든 음모방석을 즐겨 깔고 앉았었다 하지 않는가.
우리는 모두 우주 나그네 코스미안으로서 신화(神話)도 인화(人話)도 아닌 우리의 우화(宇話)를 써보리라.
[이태상]
서울대학교 졸업
코리아타임즈 기자
합동통신사 해외부 기자
미국출판사 Prentice-Hall 한국/영국 대표
오랫동안 철학에 몰두하면서
신인류 ‘코스미안’사상 창시
이메일 :1230ts@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