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려운 말 하나 없이도 어쩌면 이렇게 아름다운 시가 만들어졌는지 경이롭다. 초등학생이 읽어도 알아먹고 박사학위를 가진 자가 읽어도 알아먹는다. 가장 오래된 부처의 노래가 ‘숫타니파타’다. 경전이라기보다 스토리텔링으로 된 불교 ‘시’라고 해야 더 어울릴 것 같다.
반복되는 질문에 대한 단순하고 실천적인 답은 명쾌하고 간결하다. 복잡한 철학을 담지 않았어도 누구나 읽고 암송하기 좋다. 이천 년 넘게 익다가 또 익다가 완전한 시간의 결정체가 된 것 같은 ‘숫타니파타’는 수많은 불교 경전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향기가 나는 경전이다.
그중에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의 구절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이다.
서로 사귄 사람에게는
사랑과 그리움이 생긴다.
사랑과 그리움에는 괴로움이 따르는 법.
연정에서 근심 걱정이 생기는 줄 알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숲속에서 묶여 있지 않은 사슴이
먹이를 찾아 여기저기 다니듯이
지혜로운 이는 독립과 자유를 찾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서로 다투는 철학적 견해를 초월하고
깨달음에 이르는 길에 도달하여 도를 얻은 사람은
나는 지혜를 얻었으니
이제는 남의 지도를 받을 필요가 없다고 알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탐내지 말고, 속이지 말며, 갈망하지 말고,
남의 덕을 가리지 말고, 혼탁과 미혹을 버리고
세상의 온갖 애착에서 벗어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애착을 없애는 일에 게으르지 말며,
벙어리도 되지 말라.
학문을 닦고 마음을 안정시켜
이치를 분명히 알며 자제하고 노력해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흙탕물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숫타니파타’는 초기 경전인 ‘나까야’ 속에 들어 있다. 그중 ‘무소의 뿔의 경’에 담긴 41개의 시 마지막 구절에 반복되는 것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이다. 무소는 코뿔소다. 뿔이 하나인 동물이다. 뿔 하나로 인도의 평원을 걸어가는 모습을 상상해 봤다. 외롭고 고독한 길을, 외뿔을 가지고 가는 모습이 우리에게도 필요하지 않을까. 눈치 보지 않는 당당함, 머뭇거리지 않고 기대지도 않고 혼자서 가는 것이야말로 존재를 존재답게 한다는 가르침이다. 얼마나 멋진가. 외로움에 몸부림치는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지 않겠지만 외로움을 사랑하고 고독을 사랑하면 인간의 의지로 신에게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젊은 날 사랑했던 사람은 늘 그리움이 남았다. 그리움이 괴로움으로 변하고 괴로움은 근심으로 변한다. 누구나 겪는 일이다. 그때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는 길을 몰랐다. 어리석게도 혼자서 가면 죽는 줄 알았다. 이제 인생의 가을 앞에 서고 나니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는 즐거움을 알 것 같다. 익숙하고 모호한 사람들과의 관계를 단절하고 나만의 길을 만들어 가다 보면 나의 자유의지는 더 단단해질 것이다. 마음속에서 자라나는 공포를 하나하나 뽑아내고 내면의 길을 내어 혼자서 가는 여행자가 되어야 한다. 그 고독의 길을 두려움 없이 걸어가고 싶다. 진심으로.
나는 마음이 어지러울 때마다 숫타니파타를 읽는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스트레스를 받을 때 이 시를 읽으면 그토록 미웠던 타인도 이해가 된다. 또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해 어둠 속에서 헤매고 있을 때, 이 시를 읽으면 세상에 용서 못 할 사람은 없다는 걸 깨닫게 된다. 음식은 싱거워야 건강에 좋고 철학은 세상을 의심해야 정신의 탑을 쌓기에 좋고 종교는 쉬워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 그 쉬운 시가 불교 초기 경전 ‘숫타니파타’다. 그중에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시구는 마음 치유에 가장 좋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흙탕물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이순영]
수필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