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세기의 사상가로 불린 헝가리 태생의 영국 작가 겸 언론인 아써 쾨슬러(1905-1983)와 그의 부인 씬티아는 1983년 3월 그들의 런던 자택에서 함께 자살했다. 그는 루키미아라는 백혈구 과다증과 전신 마비를 일으키는 파킨슨병을 앓았다. 그의 부인은 남편 없이 살고 싶지 않다고 같이 죽은 것이다. 그들은 유산 50만 파운드를 어느 영국 대학 부설 심령과학연구소 설립기금으로 써달라는 유언장을 남겼다. 이심전심 텔레파시 같은 초 심리적 심령현상의 과학적 연구하는 심령과학에 관심 있는 쾨슬러는 ‘일치의 근거’와 ‘우연의 도전’이라는 그의 저서에서 인간의 이성과 지성 밖의 영역을 탐구했다.
서양의 지식층에서는 일반적으로 이러한 분야는 사기꾼이나 돌팔이 무당 또는 악장수들과 이들의 속임수에 빠지기 쉬운 무식하고 어리석은 자들의 관심사로 치지도외(置之度外) 해왔고, 근년에 와서 일각에서 관심 좀 두기 시작했으나 아직은 일종의 과학적 호기심에 불과한 것 같다. 자칭 무신론자였던 쾨슬러는 죽음은 미지의 나라로서 만성고질병을 앓는 사람은 고문실을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라 했다. 그러나 이 미지의 나라를 향해 떠나기로 결심하고 쓴 그의 유서에서 그는 말한다.
“우리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 또 시간과 공간과 물질의 경계를 넘어, 인간 개개인으로서의 개성과 인격을 탈피, 탈바꿈한 탈 인간을 위한 내세에 대한 좀 겁먹은 희망을 갖고 나는 떠난다.”
그의 유언집행자로 스코틀랜드 에든버러대학 심리학과 심령과학 교수 존 베로프(1920-2006)는 쾨슬러가 초현실 세계와 접촉을 갖는 신비스러운 경험을 하고 사람이 죽으면 그 사람 개인은 없어지지만, 그 사람 개인의 정신은 우주정신에 동합될는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태곳적 옛날로부터 삶이 끝나면 죽는다는 생존의 환멸은 많은 사람들에게 공포심은 물론 절망감을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마음과 정신의 눈을 뜨게 해주는 깜짝 놀랄 만한 일이었으리라. 그러니 죽음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어떻게 사느냐가 결정되지 않을까.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우리가 걱정할 것은 우리의 목숨이 끊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숨 쉬고 살아 있는 동안 진짜로 사는 일이다. 다시 말해 네가 누구이고 무엇인가라는 외적 정의에 맞도록 만들어진 껍데기로부터 네 속 알맹이 핵심, 네 진짜 자신을 해방시키는 일이다.”
이렇게 죽음과 죽는 일을 전문적으로 연구한 이 분야의 한 개척자는 말한다. 정신병학자이며 ‘죽음과 죽는 일에 대하여’와 ‘죽음과 죽는 일에 어떻게 대처할까’ 그리고 ‘사후의 삶에 대하여’라는 책들의 저자인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1926-2004)는 우리에게 정신이 번쩍 들 만한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어떻게 죽을 준비를 하고 있는가?’ 죽음에 관한 연구 조사로 세계적인 명성이 있는 이 전문가는 삶의 유한성을 받아들임으로써 우리는 성숙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죽음은 인간 실존의 의미에 대한 수수께끼를 풀어줄 열쇠인 까닭이고 또 죽음이 인간의 성장과 발달 곧 삶의 가장 중요한 한 부분임을 깨닫고 인식함으로써 우리 각자가 자기 삶의 참뜻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의 까마득한 조상 원시인들은 죽음을 어떻게 생각했었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죽음이라는 엄연한 현실을 외면할 수 없었으리라.
기원전 3천 년에 세워진 피라미드에 상형문자로 새겨져 있는 글을 보면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내세를 굳게 믿었었던 것 같다. 이 세상에서 누리던 모든 사치와 허영 그리고 쾌락까지도 계속 즐길 수 있으리라고. 메소포타미아의 신화를 보면 인간은 신들을 섬기기 위해 그의 짧은 인생을 살고 시간이 다 되면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간다. 이로 미루어 보아 그들은 죽음을 무서워했던 것 같다.
가나안의 신화에는 주인공 아카트가 젊어서 살해되자 그의 콧구멍에서 숨이 떠나듯 그의 생명이 그의 몸에서 떠난다. 생명과 숨이 같은 것으로 숨이 그치면 죽음이 오고 죽음이 올 때 숨이 그친다고 그들이 생각했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내세에 신의 상벌이 있을 것으로 보고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 신화에선 개개인에게 선택의 책임을 지운다. 긍정적으로 순결한 선과 부정적이고 불결한 악, 이 둘 가운데서 어느 쪽을 선택하는가에 따라 한 인간의 행동이 그가 죽은 뒤까지 그를 따라가기 때문에 그가 신의 상벌을 피할 길이 없다고 본 것이다.
이 신화에 따르면 사람이 죽은 지 나흘째가 되는 날 그의 영혼은 물질세계와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정신세계를 잇는 다리를 건너, 의인은 아름다움과 기쁨의 나라로, 악인은 고통의 나라로 간다. 그렇지만 시간이 다 가도록 고통을 받고 깨끗해지면 악인들의 영혼도 의인들이 사는 복된 나라에 들어가게 된다. 이처럼 조로아스터교에서는 다른 종교들과 달리 내세에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제공한다. 이 세상에서 의롭게 살든가 그렇지 못하면 내세에 고통을 받아 죗값은 치르고 나서 구원받도록.
유대 히브리 사상에서는 사람이 육신과 영혼으로 분리되지 않는다.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처럼 히브리 사람들은 우리가 구약성서 ‘욥기’에서 볼 수 있듯이 사후의 세계가 즐거운 곳이 아니고 돌아올 수 없는 나라요 어둠과 암흑의 장소로 보았다. 구약성서에는 죽음을 보는 세 가지 다른 관점이 있다. 하나는 가나안 신화에서 나온 것으로 저승이란 뜻의 쉬올이란 곳의 통치자는 그의 사자의 나라 백성이 될 후보자들을 찾고 있다. 둘째는 히브리 문화에서 비롯한 것으로 산 사람은 죽은 사람과의 접촉을 일체 피한다.
셋째는 페르시아에서 유래하여 구약시대 말기에 유대인 사회에 전파된 것으로 내세에 있을 신의 상벌신화이다. 신약성서의 세 가지 주제는 죽음, 부활, 그리고 영생으로 로마 법정에서 단죄받고 처형된 예수의 비극을 초기 기독교 신자들이 신화화해서 그가 죽음을 이기고 승리한 것으로 풀이, 그 승리를 기독교 신자들도 같이 나눌 것으로 생각한다.
일부 기독교 신자들은 믿기를 기독교 신자의 영혼은 곧바로 천국에 들어갈 것이라고, 또 일부, 예를 들어, 가톨릭교 신자들은 어떤 영혼들은 연옥이란 곳에서 먼저 깨끗해진 다음에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그리고 또 일부는 죽은 자들은 모두 최후의 부활을 기다리며 잠들어 있다고 한다. 어떻든 대부분의 기독교 신자들은 미신자나 이교도들은 영원한 벌을 받기 위해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불에 떨어진다고 저주하면서 이와 같이 배타적이고 이기적이며 편파적인 신화의 교리를 무시한 신의 대자대비가 있을 수 있으리라는 가능성조차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무신론자라고 주장할 만큼 유치하고 오만방자하거나, 유신론자라 할 만치 단순하고 맹목적인 맹신자가 아닌 나는 스스로를 불가지론자라고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다. 폴란드계 미국 학자 알프레드 코집스키(1879-1950)가 개발한 ‘일반의미론’에서 강조하듯이 ‘아무도 아무것에 대해 전부 다 알지 못한다’이라고 나도 알고, 그렇게 생각하고 믿는 까닭에서다. 그렇지만 단 한 가지 분명하고 확실하다고 내가 절대적으로 확신하는 것이 있다.
하느님이 계신다면 또 참으로 하느님다운 하느님이시라면 그분은 우주 하늘님 코스모스요, 우리 모두 그 코스모스의 분신인 코스미안이란 것이다. 그 하늘님은 아버지도 아니고 어머니도 아니다. 남성도 아니고 여성도 아니며 그렇다고 중성(中性)도 아닐 것이고 질투심 시기심에 불타 편파적으로 그 어느 특정 선민(選民) 민족이나 개인 또는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만을 편애하는 그따위로 속악(俗惡)하고 소갈머리 좁거나 없는 분이 절대 절대로, 결코 결단코 아니리라는 것이다.
정말 신(神)이 있다 할 것 같으면, 또 진정 신이 신다운 신격의 소유자라면, 그리고 참으로 내세가 있고 또 천당과 지옥이 있다 할 것 같으면, 예수나 석가모니를 찾아 부르면서 알랑방귀 뀌는 아부 아첨꾼들 그리고 진짜로 도움이 필요한 헐벗고 굶주린 이웃은 못 본 체하면서 천당클럽에 회비 내듯 아니면 부정부패 축재하는 부패한 관리에게 뇌물 바치듯 교회나 절에는 아낌없이 많은 연봇돈과 시줏돈을 바치는 뇌물꾼들과 천당계꾼들부터 몽땅 지옥에 보내리라.
부질없이 신의 자선적인 구원을 바라지도 않으면서 제 운명은 어떤 것이든 달게 받아 신나게 열심히 이 세상을 사는 사람들만 천국에 들게 하리라.
[이태상]
서울대학교 졸업
코리아타임즈 기자
합동통신사 해외부 기자
미국출판사 Prentice-Hall 한국/영국 대표
오랫동안 철학에 몰두하면서
신인류 ‘코스미안’사상 창시
이메일 :1230ts@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