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식 칼럼] 대양의 파고를 넘다 보면

김태식

여행이란 평소 힘들게 번 돈으로 유유자적하게 가보지 못했던 곳으로 가본다든지, 아니면 지루한 생활의 전환을 위해 떠나는 것이리라. 그곳이 국내이든지 나라 밖의 지역이든지 상관없을 것이고 그것에서 유익함을 얻는 것이리라.

 

여행의 교통수단에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그 가운데서도 바다가 무대가 되고 그 위로 배에 몸을 의지한 채로 밤이고 낮도 없이 보름 이상을 아니면 30여 일의 여정을 떠난다면 이 또한 별스러운 일임이 틀림없을 것이다.  

 

부산항을 떠난 상선은 태평양으로 그 방향을 잡아 미국의 로스엔젤레스로 목적을 잡아가노라면 2~3일 후에는 바닷속의 섬 이른바 일엽편주가 되는 것이다. 20mm의 철판에 모든 인생을 걸고 갈매기도 너무 멀어 따라오기를 포기한 곳. 태평스러운 바다가 아닌 험난한 파고가 휘몰아칠 때쯤이면 15 일 후의 목적 항구에 닻을 내릴 날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이것은 편안한 여행이 아니라 직업상의 항해라 더욱더 서글픔으로 와 닿곤 한다.

 

파고 10m 이상, 590hpa 이하의 열대성 저기압이 오직 목적항을 향해 나가는 배를 때려 올 때는 길이 250m, 폭 40m의 제법 거대한 배도 그 중심을 잃어버리고 마치 하와이의 와이키키 해변에서 즐기는 파도타기 장면을 방불케 한다. 더욱이 밤이면 하늘의 별들만이 벗이 된 채로 그 아무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 칠흑이 되고 고독한 여행이 계속된다.

 

비행기로 간다면 20시간 이내이면 도착할 수 있을 거리이고, 이 교통수단으로라면 날짜 변경선을 지날 때도 빠른 시간으로 통과하므로 시차로 인한 불편함이나 환경의 변화를 느끼지 못하나 느린 속도로 나아가는 선박의 경우에는 적지 않은 변화가 생기게 된다. 

 

이를테면 한국과 미국의 17시간 차이(지역에 따라서도 시차가 있긴 하지만)를 맞추기 위해 매일 1시간씩 시각을 후진하여 맞추어 나가야하는데 이러다 보면 새벽 4시가 되어도 훤한 대낮처럼 선내의 시간과 자연의 환경이 서로 다르게 나타나고, 이러한 부조화로 나타나는 현상으로 인하여 이른바 하얀 밤이 계속되는 백야가 된다. 

 

심각한 불면으로 연결되어 몸의 상태는 적응 점을 찾느라 이리 뒤척 저리 뒤척이다 끝내 피곤한 몸으로 아침을 맞는다. 낮과 밤이 바뀌어 가는 길목에서 하얗고 높은 파도만이 그 갈 길을 재촉하건만 뱃전에 부딪치는 바닷물과 금속이 맞닿는 소리만이 귀 볼에서 맴을 돌다 갈 뿐이다. 아침이 상쾌하지 못하고 시간 상 대낮의 아침으로만 되어 흘러가는 파도에 실려 가는 만큼이나 쉽게 가버린다.

 

끝없이 펼쳐지는 수평선의 끄트머리쯤이라고 할 수 있는 곳도 지나고 나면 또 그 자리의 반복이니 마치 큰 폭포수를 받아 가두고 그 속에 아주 작은 나뭇잎 하나를 띄어 놓은 것처럼 그렇게 흘러가는 조각에 불과하다. 강렬한 태양이 내리쬐고 그것을 받은 수면은 심한 파도를 잠재우고 순간 조용한 광채를 뿜어낸다. 태평양 한가운데서 맛보는 하루 정도의 평온함인 것이다. 또 다른 격랑을 잠시 숨겨둔 채로 말이다.

 

마주할 상대도 없이 앞으로만 나아가는 선체 위의 외로운 길손은 또다시 파도를 벗 삼아 하늘의 별들만을 마주할 수밖에 없다. 한국 쪽도 미국 쪽도 아닌 태평양의 한가운데쯤에 이르러서는 고국에서 발사되는 라디오 단파방송이라도 들으려 다각도의 방향을 잡아 주파수를 맞춰 보지만 제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뱃전에 부딪히는 파도만이 여행길을 두렵게만 한다. 또 다른 반복으로 평온함과 요동침이 그 주기를 빨리해 갈 때쯤이면 냉장고 속의 위스키병으로 손이 가고 잔 에는 얼음을 띄우게 된다.

 

이렇게 태평양을 건넌 몸과 마음은 푹 가라앉은 채로 바닷물의 색깔이 약간 덜 푸른빛으로 나타날 때 비로소 육지가 가까워져 왔음을 알려 주는데, 그 지점은 목적항을 남겨둔 24시간 이내의 거리에 있음을 예고해 주기도 하는 것이다.

 

닿은 항구에서의 안도감보다는 또 다시 이 항로를 따라 되돌아가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앞서니 휘황찬란한 네온 불빛도 그렇게 들떠 보이지만은 않는다. 다만 잠시 머물렀다 간다는 생각 외에는.

 

 

[김태식]

미국해운회사 일본지사장(전)

온마음재가센터 사회복지사(현)

울산신문 등대문학상 단편소설 당선 등단

해양문학상 논픽션 소설 당선

사실문학 시 당선 등단

제4회 코스미안상 수상

이메일 : wavekts@hanmail.net

 

작성 2025.04.15 11:21 수정 2025.04.15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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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