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수 칼럼] 운현궁의 봄

이봉수

다시 운현궁에 봄이 왔다. 운현궁은 사대문 안에 있었던 대원군의 개인 집이다. 궁이라고 해서 궁궐로 착각해선 안 된다. 그러나 궁궐보다 더한 세도를 부렸던 곳이다. 대원군이 이 집에서 고종을 낳았고 고종은 12세까지 여기서 자랐다. 

 

'운현궁의 봄'은 김동인의 역사소설 제목이다. 대원군이 운현궁에서 봄처럼 일어나 득세했다는 의미로 쓴 소설이다. 왕손인 인간 이하응이 온갖 모멸과 천대를 받다가 마침내 권좌에 오르는 파란만장한 이야기다.

 

대장부로 태어나서 이만한 집 한 채는 있어야 하는데, 현실은 대부분 그렇지 못하다. 나락으로 떨어진 사람은 손바닥만 한 작은 집 한 채도 없어서 원룸이나 고시원 혹은 게스트하우스에서 살아가기도 한다. 

 

그러나 기죽을 건 없다. 천하를 호령하던 대원군이 이 집에서 살 때는 텔레비전도 없었고 냉장고도 없었다. 스마트폰이 없었으니 카톡도 당연히 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렇게 따지면 지금 고시원이나 원룸에 사는 사람도 대원군보다 낫다는 이야기가 된다.

 

지금도 나라에 큰일이 있을 때마다 시위대가 코 앞에 있는 헌법재판소와 운현궁 앞길을 가득 메우며 나라를 걱정한다. 그뿐이랴 외국 관광객들은 우리 문화의 아름다움을 찾아 운현궁으로 발길이 모인다. 못난 소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는 말이 있지만, 역사의 중심에 있던 건물은 그 값을 톡톡히 치른다. 

 

권력은 봄 아지랑이와 같고 물거품 같은 것이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대원군은 다시 돌아올 기약이 없지만 해마다 운현궁에 진달래는 핀다. 태양이 남회귀선을 찍고 우리 곁으로 올라오고 있다. 봄은 희망이다. 

 

지금의 운현궁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공간이다. 이곳을 걷다 보면, 조선 말기 한 시대를 뒤흔든 격랑이 조용히 발끝에 스친다. 왕보다 더 큰 권력을 가졌던 대원군의 사저 운현궁에서 봄날의 하루를 보내며 인생무상이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다. 이 봄이 가면 또 새로운 봄이 올 테지만 한 시대의 격랑도 이 봄과 함께 사라져 가면 좋을 듯싶다. 

 

 

[이봉수] 

시인

이순신전략연구소 소장

https://yisoonsin.modoo.at

 

작성 2025.04.25 10:56 수정 2025.04.25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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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