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이천삼백이십구년 전 인간 아소카다. 갠지스강이 흐르는 너른 들판 비하르주 남부에서 태어났다. 마우리아 왕조의 제2대 왕인 아버지 빈두사라와 아버지의 후궁이었던 어머니 다르마 사이에서 태어났다. 브라만의 딸이었던 어머니는 어느날 관상쟁이가 와서 말하길 왕후가 되어 두 아들을 낳을 것인데 첫째 아들은 전륜왕이 될 것이고 둘째 아들은 출가하여 도를 얻게 될 것이라는 예언을 했다고 한다. 외할아버지가 이 예언을 듣고 어머니를 아버지 빈두사라에게 바쳐서 내가 태어난 것이다.
아버지 마우리아는 16명의 후궁을 두고 자식은 101명이나 생산해 냈다. 우리 왕조의 전통에 따라 형제들과 같이 살았지만, 백 명이 넘는 형제들 사이에서 나는 유독 총명하고 기개가 남달랐다. 어릴 적부터 눈빛이 날카롭고 머리는 번개처럼 빠르며 공부면 공부, 무술이면 무술 그리고 전술까지 재능이 뛰어났다. 그러나 나는 못생겼고 지나치게 야망이 많다는 이유로 아버지 빈두사라에게 총애를 받지 못하고 장남인 수사마형의 그늘에 가려졌다. 나는 이를 악물고 결심했다.
“세상이 나를 인정하지 않으면, 내가 세상을 바꿔버리겠어.”
왕위 계승자로 유력한 장남인 수사마와 나는 경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릴 적부터 탁월한 지혜와 뛰어난 군사적 재능이 있는 내게 수사마형은 후계자 자리를 놓칠까 봐 전전긍긍하며 끝없는 질투를 했다. 나는 외모가 수려하지 않아서 눈에 확 띠지는 못했지만, 아버지 빈두사라의 팽창 정책을 적극적으로 도우면서 명성을 쌓아나갔다. 아버지 빈두사라는 이런 나의 능력을 인정해서 지방도시 우자인의 총독으로 보내 정치 경험을 쌓게 했다. 나의 명성이 높아지자 수사마형과 다른 왕자들의 시기가 날로 커졌다. 왕위 계승을 놓고 우리 형제들 간의 견제가 심해지자 나는 남부 지역으로 사실상 추방당하기 일보직전까지 갔다.
하지만 아버지 빈두사라는 부용국으로 거느리던 덕차시라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나를 다시 사령관으로 임명하며 병기와 병사는 주지 않고 스스로 조달해서 싸우라고 했다. 내 부하들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나는 “나에게 공덕이 있다면 마땅히 내가 왕이 될 것이고 병기와 물자도 자연히 나타날 것이다”라고 부하들을 안심시키는 순간 땅이 열리더니 병기와 물자들이 한꺼번에 튀어나왔다. 덕차시라 백성들은 나를 마중 나와서 자신들은 반역할 생각이 없었는데 빈두사라왕이 보낸 대신이 패악질을 부려서 시달리고 또 시달리다가 일어난 일이라고 변론하여 나는 손대지 않고 코 풀 듯 쉽게 반란을 진압했다.
나는 승승장구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기반을 탄탄하게 닦아 나갔다. 아버지가 중병을 얻어 곧 돌아가시게 되었다. 장손인 수사마에게 왕위를 계승한다고 말하고 나를 다시 덕차시라국으로 보내고 수사마를 돌아오라고 명령했다. 예전에 수사마가 재상의 대머리를 장난삼아 툭 쳤던 일이 있었는데 강한 수치심을 느낀 재상이 앙심을 품고 덕차시라 백성들을 선동해서 반란을 일으키게 조종하고 수사마를 반란 진압군으로 보냈다. 그리고 나를 왕으로 추대하는 운동을 벌였고 나는 결국 왕위에 올랐다.
덕차시라에 있던 수사마는 아버지 빈두사라가 죽고 내가 즉위했다는 소식에 분노하며 군사를 일으켜 나를 치러 왔다. 나는 함정을 파서 수사마의 군사들이 불구덩이에 빠져 스스로 타 죽게 했다. 나는 맏형 수사마를 제거하고 왕위를 튼튼하게 지키는 데 성공했다. 내 친동생을 뺀 나머지 이복형제들 99명과 그들을 따르는 신하와 궁녀까지 모두 죽이고 왕의 자리를 굳건하게 지킬 수 있었다.
나는 파탈리푸트라를 수도로 서쪽의 아프가니스탄부터 동쪽의 방글라데시에 이르는 아대륙의 가장 큰 부분을 전쟁으로 승리하여 대제국을 만들었다. 이웃 나라인 킬링가를 정복하기 위해 보병 60만과 기병 10만 그리고 코끼리 부대 9천 마리를 이끌고 쳐들어갔다. 이 전쟁으로 10만 명이 넘는 사람이 죽었다. 그렇게 킬링가를 정복하고 마우리아를 통일국가로 완성했다. 나는 폐허가 된 칼링가를 직접 돌아보았다. 나의 야망으로 수많은 인명이 죽었다. 고아가 된 아이들과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 그리고 전쟁으로 미쳐버린 사람들의 모습에 큰 충격을 받았다.
수십만 명의 희생자를 낳은 살육의 대가로 얻은 통일제국이었다. 후회와 인생에 대한 회의감이 들어 괴로웠다. 나는 이제 무력으로 정복하는 것을 포기하고 ‘다르마’에 의거한 정치를 할 것을 결심했다. ‘다르마’의 정책을 발표하고 백성들에게 알리기 위해 바위나 돌기둥에 새겨서 널리 알렸다. 나는 다르마를 관리하는 법대관을 임명하고 그 관리를 그리스, 스리랑카까지 보냈다. 그리고 다르마의 정치 일환으로서 도로의 정비, 인축(人畜)을 위한 병원의 건설, 우물, 휴식처 등 수많은 사회사업을 실시했다.
나는 부처의 말씀을 사회적 도덕으로 모두가 지켜야 할 덕목으로 설정하여 발표했다. 다르마의 정치는 민족적으로 지리적으로 또 문화적으로 매우 복잡하게 얽혀있는 통일제국을 다스리기 위한 정치이념으로서 가장 적합한 것이었다. 살생하지 말고 부모에게 순종하며 모든 사람을 경애하고 브라만과 사문 그리고 노인과 스승에 대해 존경하고 노예나 가난한 사람은 배려하며 자기반성을 하는 등 덕목을 실천하여 통일제국의 기반을 안정시켰다. 나는 점차 불교에 이끌리게 되어 불교 선교사들을 지원했으며 수많은 사리탑을 세우고 불교경전 편찬 사업을 펼치며 승가에 아낌없이 기부했다.
나는 불교를 사랑했다. 부처님의 말씀으로 세상을 평정하려고 노력했다. 불교 교단에 막대한 돈과 물질을 후원하려고 기획하고 있었는데 이를 싫어하고 나의 뜻을 거스르는 왕자와 대신들에게 유폐되고 말았다. 나는 세상에 태어나 왕이 되기 위해 살육도 했고 통일제국을 건설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을 죽였다. 그리고 불교에 귀의해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들려고 무던히 애썼지만, 나의 뜻은 다 실현되지 않았다. 결국 가장 믿을 만한 자식들과 신하들에게 유폐되고 말았다. 나는 이제 갈 때가 되었음을 직감했다. 내 나이 이른 두 살에 나는 눈을 감았다.
“진정한 왕은 힘으로서가 아니라 사랑으로 통치한다.”
[전명희]
서울대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다 그만두고
‘밖철학연구소’를 설립해 연구에 몰두했지만
철학 없는 철학이 진정한 철학임을 깨달아
자유로운 떠돌이 여행자가 된 무소유이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