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헌식의 역사칼럼] 『난중일기』에 등장하는 지명 '구치(鳩峙)'의 위치

윤헌식

충무공 이순신은 1597년 4월 백의종군길에 오른 뒤 경상도 초계에 있는 도원수 권율의 주둔지로 이동하여 그곳에서 백의종군하였다. 그러다가 같은 해 7월 칠천량해전이 발생하자 그 사후 수습을 위해 노량에 들렸다가 진주 정개산성 부근에 머물렀는데, 8월 3일에 이르러 삼도수군통제사로 제수하는 교서를 받게 되었다. 다시 통제사로 제수된 충무공은 곧바로 경상도와 전라도의 여러 연해 지역을 거쳐 가면서 수군을 재건하는 작업에 본격적으로 매진하였다.

 

​8월 3~8일 사이 순서대로 구례, 곡성, 옥과, 곡성을 거쳐 순천으로 향한 충무공은 8일 순천 부유창에서 아침 식사를 하였다. 부유창은 지금의 전남 순천시 주암면 창촌리 창촌 마을에 있던 창고로서, 조선시대 고을의 환곡을 저장해 두던 곳이다. 

 

부유창은 『순천부읍지』의 「창고」, 『해동지도』의 「순천부」, 『비변사인방안지도』의 「순천」 등 여러 조선시대 문헌이나 고지도에서 그 위치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주암면 창촌리 창촌(倉村) 마을은 그 지명에도 부유창의 흔적이 남아있다. 다음은 부유창의 지명이 언급된 『난중일기』의 1597년 8월 3일 기록이다.

 

 

『난중일기』, 1597년 8월 3일

 

새벽에 출발하여 부유창에서 아침 식사를 하였는데, 병사(전라병사 이복남)이 이미 명령하여 불을 질러 놓았다. 광양현감 구덕령, 나주판관 원종의, 옥구현감(김희온) 등이 창고 부근에 있다가 내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는 배경남과 함께 급히 달려가 구치에 이르렀다. 내가 (말에서) 내려 전령을 보냈더니 한꺼번에 만나러 왔다. 내가 (그들이) 피해 다니는 것을 말하며 질책하니 모두 병사 이복남에게 죄를 돌렸다. 바로 길에 올라 순천에 이르니 성 안팎으로 인적이 없었다.

 

[원문] 曉發 朝飯于富有倉 則兵使已令衝火. 光陽倅具德齡羅州判官元宗義沃溝倅等在倉底 聞吾行到來 急走与裴慶男 同到鳩峙. 余下坐傳令 則一時來拜. 余以轉避爲辞而責之 則皆歸罪兵使李䃼男. 卽登路 到順天 則城內外人跡寂然.

 

 

위 기록을 살펴보면 충무공의 이동 경로는 부유창에서 구치(鳩峙)를 거쳐 순천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가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번 칼럼의 주제가 이 구치라는 곳의 위치이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얼마 전까지 구치는 순천시 주암면 행정리 접치(接峙)라고 알려졌다가, 최근에는 순천시 서면 비월리 비월재(비둘기재)라는 주장이 힘을 받고 있다. 많은 분들이 이에 관심을 가지고 의견을 제시하는 것은 아주 바람직한 일이지만, 이를 입증할 수 있는 근거를 말씀시하는 분이 거의 없어서 아쉽다. 이러한 이유로 필자가 구치의 위치를 조선시대 문헌을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한국고전종합DB 사이트에서 '구치(鳩峙)'를 검색해보면, 일단 『난중잡록』에서 이 지명이 발견된다. 다음은 그 해당 기록이다.

 

『난중잡록』, 1598년 9월 18일

 

유정(劉綎)은 용두산(龍頭山)으로부터 곡성을 지나 저녁에 부유현(富有縣)에 이르니 <<중략>> 역관이 “구치(鳩峙)가 직로(直路)입니다”라고 하니, 제독(유정)이 말하기를 “이 길은 비록 바르다고 하지만 적진과 서로 마주 보이니 군사를 행진할 수 없다”라고 하였다.

 

​위 기록은 정유재란 시기 조명연합군의 사로병진 작전과 관련된 것으로서, 명나라 제독 유정이 곡성을 지나 부유에 이르렀을 때의 일을 서술하고 있다. 이 내용은, 곡성을 지나 부유에 머물던 명나라 군사가 더 이상 전진하려면 구치를 지나는 길을 나아가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던 사실을 묘사하였다. 여기에 나타난 명나라 군사의 이동 경로 '곡성->부유->구치'는 위 『난중일기』에 보이는 충무공의 이동 경로와 거의 일치한다. 『난중일기』와 『난중잡록』 두 기록에 '구치(鳩峙)'라는 지명이 나타나는 점을 통해 이 지명이 당시 자주 사용되던 지명임을 확인할 수 있다. 

 

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지지』에는 '구치(鳩峙)'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기록이 있다. 다음은 그 해당 기록이다.

 

​『대동지지』, 「순천」

 

송원치(松院峙): 북쪽 30리에 있다. 경치가 기괴하며 일명 송현이라고도 한다. (北三十里 泉石奇怪 一云松峴).

구현(鳩峴): 북쪽 30리에 있으며, 곡성으로 가는 길이다. (北三十里 谷城路)

접치(接峙): 서쪽 60리에 있다. (西六十里)

 

한자 '치(峙)'와 '현(峴)'은 모두 '고개' 또는 '언덕'이라는 의미가 있으므로 이 두 글자를 혼용하는 지명이 적지 않다. 게다가 순우리말 '재' 또한 같은 의미가 있어서 세 글자가 혼용되는 사례도 있다. 예를 들면 순천 서면 학구리에 있는 송치재가 이러한 사례에 해당한다. 송치재는 순천 북쪽에 있는 고갯길로서 구례와 남원으로 통하는 교통의 요지이기 때문에 많은 조선시대 문헌에 등장하는 유명한 지명이며, 지금도 이 지명이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다. 이 지명은 『여지도서』의 「순천」에는 '송치(松峙)'로, 『순천부읍지』의 「역원」에는 '송현(松峴)' 등으로 나타난다. 송치는 이곳에 말을 쉬어가는 원이 있었기 때문에 '송원', '송치원', '송원치', '송현원', '송원현' 등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난중일기』의 1597년 4월 27일에도 '송치(松峙)'와 '송원(松院)'의 지명이 등장하며, 위 『대동지지』의 기록에도 '송원치'가 보인다.

 

 

위 『대동지지』의 기록은 '송현(송원치)'과 '구현'이 순천읍치 북쪽 30리에 있다고 기록하였는데, 이는 송현과 구현이 매우 가까운 거리에 있었음을 의미한다. 지금의 순천시 서면 비월리 서쪽에는 비월재라 불리는 고갯길이 있는데 '비둘기재', ‘비둑재’, ‘비드리재’ 등으로도 불린다고 한다. 비둘기를 의미하는 한자가 '구(鳩)'이므로 이곳 지명을 한자로 표기하면 '구치(鳩峙)'나 '구현(鳩峴)'이 된다. 비월재는 순천 서면 학구리에 있는 송치재(송현)와 거리가 가깝고, 비월재와 송치재 모두 순천읍치로부터 대략 30리 거리에 있다. 『대동지지』는 구현(鳩峴)이 곡성으로 가는 길이라고 서술하였는데, 순천에서 비월재를 넘어가면 주암면(부유), 석곡면, 삼가면을 거쳐 곡성으로 가는 길에 들어서므로 비월재는 『대동지지』의 구현에 관한 기록과도 부합한다. 위 『난중일기』 기록에 언급된 충무공의 이동 경로는 '곡성->부유->구치->순천'으로 정리될 수 있는데, 이 또한 『대동지지』의 구현에 관한 기록과 부합한다.

 

​요컨대 순천시 서면 비월리 비월재는, 『난중일기』와 『난중잡록』에 등장하는 '구치(鳩峙)'에 해당하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1916년 일제강점기에 제작된 『전라남도지지조서』의 「순천군」은 '비월리'의 속칭을 '비들치'라고 기록하였는데, 아마도 이 기록이 비월리의 구전 지명을 서술한 가장 빠른 기록일 것이다. 추정이긴 하지만 '비월'과 '비들'은 구음이 비슷하므로, 지명 '비월'은 '비들'에서 파생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1789년에 편찬된 관찬 사료인 『호구총수』는 당시 순천의 서면(西面)에 속한 리(里) 지명을 수록하였는데, 그 가운데 '비월(飛月)'이라는 리도 포함되어 있으므로 비월리는 최소한 1700년대까지 소급되는 지명이다.

 

『전라남도지지조서』에 기록된 '비들치' - 자료 출처: 국토지리정보원

 

참고로 위 『대동지지』의 기록은 구현과 별개로 지명 접치(지금의 순천시 주암면 행정리 접치에 해당)에 대해서도 서술하였는데, 이를 통해 『난중일기』에 언급된 구치가 접치라는 주장은 틀린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 

[참고자료]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순천부읍지(順天府邑誌)』, 「창고(倉庫)」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해동지도(海東地圖)』, 「순천부(順天府)」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비변사인방안지도(備邊司印方眼地圖)』, 「순천(順天)」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순천부읍지(順天府邑誌)』, 「역원(驛院)」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호구총수(順天府邑誌)』, 「순천(順天)」

한국고전종합DB, 『대동지지(大東地志)』, 「순천(順天)」

한국사료총서, 『여지도서(輿地圖書)』, 「순천(順天)」, 「관애(關阨)」

국토지리정보원, 『전라남도지지조서(全羅北道地誌調書)』

디지털순천문화대전

 

 

[윤헌식]

칼럼니스트

이순신전략연구소 선임연구원

저서 : 역사 자료로 보는 난중일기

이메일 : thehand8@hanmail.net

 

작성 2025.05.02 10:29 수정 2025.05.02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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