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흥렬 칼럼] 팔려나가지 못한 은행나무

곽흥렬

어찌하다 보니 용지봉龍池峯 자락 아래다 나만의 공간을 하나 갖게 되었다. 그저 듣기 근사한 말로 ‘집필실’이라고 해 둘까. 집필실이래야 콧구멍만 한 게 그나마 낡아빠져 볼품이 없지만, 그래도 운동화 하나만 신고 나서면 가벼운 마음으로 기분 전환을 하기에는 썩 안성맞춤인 곳이다. 일찌감치 저녁을 끝내고서 간편한 셔츠 차림으로 어슬렁어슬렁 소요를 즐기는 것이 하나의 일과가 되었다. 

 

초입에 들어서면서부터 언제나 색다른 풍경에 매료되고 만다. 열 지어 늘어서 있는 은행나무들을 만나는 즐거움이다, 마치 마중 나온 출영객出迎客들에 둘러싸이듯. 줄잡아 천여 그루는 넉넉할 성싶다. 개중에 튼실한 놈은 한 아름이 꽉 찰 만한 것들도 눈에 뜨인다. 

 

죽죽 근심 없이 자란 은행나무가 보는 사람의 눈에는 탐스럽기까지 하다. 아기의 조막손을 닮은 수만 개의 잎사귀가 황금빛 햇살을 쉴 새 없이 초록물감으로 바꾸는 중이다. 한 움큼 따서 꽉 쥐어짜면 금방이라도 푸른 물이 뚝뚝 들을 것만 같다. 그 신신한 잎사귀들에 눈길을 주고 있노라니 마음마저 말갛게 헹궈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일흔이 훌쩍 넘은 연세로 짐작되는 노부부가 허리를 구부려 부지런히 잡풀을 뽑아내고 있다. 햇빛에 반짝이는 은빛 머리칼, 그들의 뒷모습이 퍽이나 다정스러워 보인다. 흡사히 은행나무 숲에 깃든 한 쌍의 두루미 같다. 이런 정경이, 무심한 산책객의 눈에는 밀레의 ‘만종’처럼 평화로운 그림으로 다가온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서 등 너머로 공치사를 건넨다.

 

“훌륭히 키운 자식들을 대하듯 참 뿌듯하시겠습니다.” 

 

내가 던지는 인사말에 주인 내외는 굽혔던 허리를 반쯤 펴면서 ‘후유-’ 한숨부터 짓는다. 

 

“아이고 말도 마시오, 원~. 송아지라도 되었으면 키울수록 돈이나 사지.”

 

전혀 예상치 못한 뜻밖의 대답이 산울림 되어 돌아온다. 당초 가로수 용도로 키워 시장에 낼 요량으로 심었던 나무였는데, 팔리지 않은 채 몸피만 굵어져서 지금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애물단지가 되고 말았다니……. 푸념을 늘어놓는 어르신 부부의 옆모습이 금세 측은한 분위기로 바뀌고, 황혼빛에 물든 쓸쓸한 표정에는 짙은 우수의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나이테가 너무 감겨 출하 시기를 놓쳐 버린 이 은행나무의 사연을 들으면서, 불현듯 혼기가 훨씬 지났음에도 시집을 가지 않는 주위의 수다한 노처녀들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은 어인 일일까. 그네들이야 자신이 좋아서 한 선택일지 모르겠으되 부모는 까맣게 속이 탄다. 남들은 외손자 외손녀를 쑥쑥 잘도 보건만, 자신은 대체 뭐가 모자라 이래야 하는가. 여기저기서 땅이 꺼질 듯 내쉬는 한숨 소리가 귀울림처럼 들려온다. 

 

이런 경우가 어디 한둘이 아니다. 요사이 들어 한사코 시집을 가지 않으려는 과년한 딸자식을 둔 늙은 부모들의 답답해하는 사연을 심심찮게 만난다. 그저 고만고만한 사람 만나서 아들딸 낳고 오순도순 살기를 바라는 어버이의 심정을 그들은 도무지 헤아리지 못하는가 보다. 딸자식을 출가시키지 못한 부모의 마음은, 나무를 출하시키지 못한 노부부의 마음보다 몇십 갑절 더 절실할는지 모른다. 나무는 자유의지가 없어 받아줄 곳만 있었다면 얼마든지 떠나보낼 수 있었을 터이지만, 딸자식은 자유의지가 강해 설사 받아줄 곳이 있다 한들 부모 뜻대로 어떻게 해 볼 수도 없는 까닭이다.

 

은행나무는 곁에 짝이 있어 그나마 열매라도 맺거늘, 나이 들어가면서 제 분신 하나도 만들지 못하는 노처녀들. 제법 반반한 직장에서라면 이처럼 홀몸으로 늙어가는, 이른바 ‘골드 미스’ 족의 독신주의 여성들이 발걸음에 차이듯 흔해 빠졌다. 결혼이라는 것을 마치 구시대의 유물쯤으로 여겨 그 자체에 그다지 흥미를 갖지 않으니, 애당초 시집을 갈 생각조차 접어 버렸는지도 모른다.

 

요즘 세상에 효니 불효니 하고 들먹이는 것이 19세기식이라고 욕을 얻어먹을 일이긴 하지만, 아무리 그렇대도 절대의 윤리라는 것은 엄연히 있게 마련이다. 손자를 무릎 위에다 앉혀 놓고 재롱떠는 모습 보고 싶은 소박한 바람 갖지 아니한 부모가 과연 얼마나 있을까. 이건 어쩌면 머잖아 소멸해 가야 할 생명이 지니게 되는 절대의 본능이라 해도 좋으리라. 

 

그렇다면 혼기가 찬 젊은 남녀가 아름다운 인연으로 만나서 이세를 생산해 부모의 팔에다 안겨 드리는 것이야말로, 그 무엇에도 비할 바 없는 커다란 효도가 아닌가.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나이 들어서까지 홀몸으로 늙는 것도 적지 않은 불효인 셈이다.

 

제 한 몸 편한 대로만 살아가는 삶은 지독한 이기주의적 행실인지도 모른다. 남자든 여자든 조물주가 그를 이 세상에 내려보낸 데는 필시 목적이 있었을 것이다. 생산을 해서 후사를 잇는다는 것도 그 목적들 가운데 아주 중요한 하나이지 싶다. 그리 생각하면, 이를 외면하는 삶은 조물주의 뜻을 거스르는 일이라고 한대도 그다지 잘못된 표현은 아닐 줄 믿는다.

 

제때 팔려나가지 못해 애물단지가 되어 버린 용지봉 산자락의 은행나무를 닮은 과년한 아가씨들이여!

 

 

[곽흥렬]

1991년 《수필문학》, 1999년《대구문학》으로 등단

수필집 『우시장의 오후』를 비롯하여 총 12권 펴냄

교원문학상, 중봉 조헌문학상, 성호문학상, 

흑구문학상, 한국동서문학 작품상 등을 수상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기금 받음

제4회 코스미안상 대상 수상

김규련수필문학상

이메일 kwak-pogok@hanmail.net

 

작성 2025.05.05 10:46 수정 2025.05.05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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