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수 칼럼] 비우고 낮추자

홍영수

몇 년 전 ‘자코메티’ 전시회를 둘러보고 난 뒤, 그의 작품에 대해 사유의 시간을 가졌던 기억이 난다. 우린, 비우면 채워진다는 단순한 진리를 흔히 잊고 사는 것 같다. 불교에서는 ‘자기 비움’을 강조했고, 유교에서도 ‘사사로움을 잊으라’했다. 헬라어로 케노시스(Kenosis) 사상은 ‘비움’, ‘소모’을 의미한다. 케노시스는 고후 8:9에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이 부요하신 분인데 그 부요함을 버리고 가난하게 되셨다고 했다. 이렇듯 자기중심적 사유에서 오는 집착과 편견 등이 허구라고 생각할 때 오히려 자유와 실존을 찾게 되는 것이다. 내려놓고 놓아버리는 ‘방하착(放下著)’이나 비워야만 빛이 들어올 수 있는 ‘허실생백(虛室生白)’, ‘무(無)’와 ‘공(空)’으로 조각을 한 자코메티. 그의 작품에서 떠오른 개념들이었다.

 

장자 철학의 핵심은 비움이다. 부정적인 마음을 해체하여 맑고 밝은 거울과 같이 비움으로써 편견 없이 대하라는 것이다. 심재(心齋)와 좌망(坐忘)이 그것이다. 즉, 마음을 텅 비우고 자기의 신체마저 잊어버리라는 것이다. 마음을 비우고 세상을 바라보면 세상이 왜곡되지 않는다. 채운 마음으로, 자기 멋대로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안 된다.

 

우린 자기만의 리듬감과 시간의 템포를 맞추기 위해서는 단호한 자신의 결단이 필요하다. 그래서 스스로 삶의 어떠한 의미를 찾지 못하고 둥둥 떠다니는 부유물이 된다. 그래서 요즘은 등산, 낚시, 어느 장소에서 한 달 살기, 다른 한편으로 치유의 숲에서 홀로 독서하기 등등을 한다. 분주히 사는 것도, 좀 느리게 사는 것도, 정신없이 사는 것도, 정신 차리고 사는 것도 자신의 몫이고 책임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엇나가고 빗나가 삶이 되지 않기 위해 무조건 매달린다고 해서 문제가 결코 해결된다는 보장도 없기 때문이다.

 

오직 자기만의 삶의 템포와 리듬감을 유지하면서 스스로 뒤돌아봐야 한다. 그리고 더 비우고, 더 낮추는 것이 최상, 최고의 방법이다. 그것이 곧 현재의 순간에 집중하는 것이고 객관적 시각으로 자신의 삶을 그 어떤 편견도 없이 뒤돌아보고 관조하는 것이다. 치솟는 욕망을 억제하면 삶의 향기가 피어오른다. 그것은 곧 비우고 낮춰야 피어오를 수 있는 향기다.

 

우리가 맞이할 삶과 죽음은 하나이다. 그래서 의연히 받아들여야 한다. 물론 쉽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못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장뤽 낭시의 말대로 빛과 어둠이 서로 접촉하지 않고 교대하고, 상대를 밀어내고 나뉘고, 상호 간의 매개나 변환 없이 상대방의 진실이 되는 자리. 그 자리가 부활을 뜻하는 아나스타시스(anastasis)이다. 그런 측면에서 아나스타시스는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으로 취하신” 것과 같다.

 

예술 행위도 비워짐이어야 한다. 그것은 마음의 빈 공간을 채워 결여된 공간이 없어야 예술작품이 탄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아의 반영이고 자기 자신이다. 덜어내어 가늘어진 초췌한 인체인 자코메티의 작품 ‘광장’을 보면, 텅 빈 광장에 움직임 없는 자세로 여성이 있고 그 주위로 유령 같은 남성이 있다. 커다란 덩어리 인체의 불편함이 아닌, 비움과 절제, 낮춤의 자세로 불안하고 고독한 현대인에게 실존의 고독을 전하고 있다.

 

 

광장*

 

시선은 갈 곳을 잃고

넋 나간 유령이 되어

한 알 한 알 감정을 떨어뜨리며

미라가 미로를 헤매고 있다.

무게와 부피와

육신의 껍데기마저 벗어놓고

기름기 빠진 관절로

작대기 되어 서 있다.

어디로 향하는 것일까

발의 무게는 덜어내지 않고

한 줄기 고독을 뛰어넘어

유능한 영혼들이 걷고 있다. 

  

 -졸시

 

*자코메티 작품

 

 

[홍영수] 

시인. 문학평론가

제7회 매일신문 시니어 문학상 

제3회 코스미안상 대상(칼럼)

제4회 한탄강문학상 대상

제7회 보령해변시인학교 금상 

제6회 아산문학상 금상 

제5회 순암 안정복 문학상 

제6회 최충 문학상 

시집 『흔적의 꽃』, 시산맥사, 2017.

이메일 jisrak@hanmail.net

 

작성 2025.05.05 11:52 수정 2025.05.05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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