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의 영화에 취하다] 워낭소리

최민

그곳에도 사람이 산다. 자연의 시계에 맞춰 느릿느릿 살아가는 곳, 깊고 깊은 소백산 골짜기 봉화에 있는 듯 없는 듯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사람과 동물이 하나의 풍경이 되어 단순하고 담백하게 살아가는 그곳의 삶이 다 닳아 바닥난 인류애를 다시 건져 올렸다. 늙은 소와 노인의 서사는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사람의 팔자가 소와 다를 바 없고 소의 팔자도 사람과 다를 바 없는 곳이다. 연출이라는 걸 하지 않고 마치 그냥 있는 그대로 카메라만 나 두고 찍은 것 같은 영화 ‘워낭소리’는 폐우물처럼 메마른 우리 감성의 등짝을 후려치는 것 같았다.

 

영화 ‘워낭소리’는 제목부터 무슨 뜻인지 몰라 되물어 보는 영화다. 소의 목에 길게 단 방울인 워낭은 불과 삼십여 년 전 시골에 흔했던 물건이다. 소가 움직일 때마다 달랑달랑 방울 소리를 내는데 그 소리가 워낭소리다. 한때 워낭소리는 우리 사회에 신드롬을 일으켰다. 다큐영화는 재미없다는 선입견을 깨고 독립영화계에 신화를 만든 영화다. 인간은 여전히 관종이다. 남의 삶을 끼어들어 울고 웃고 하면서 자신을 투영하기도 한다. 그 관종을 관종답게 해주는 것이 영화다. 그러나 다큐영화는 관종 그 너머 어떤 것까지 건드린다. 연출되지 않은 날것의 삶에 존재를 묻고 존재를 확인하기 때문이다.

 

“안 팔아”

 

단호한 이 한마디는 할아버지가 소를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는지 나타내준다. 가족을 파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는 법이다. 한 집에서 한솥밥 먹으며 동고동락한 소는 가족이다. 가족의 범위를 인간으로 한정 짓는 사람들에게는 이해되지 말이다. 소와 할아버지는 얼마나 많은 정서적 공감대가 있었겠는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함께하며 인생이라는 강을 건너왔겠는가. 봄이 오면 저 너머 사래 긴 밭을 같이 갈고 여름이면 냇가의 물을 같이 마시고 가을이면 추수한 곡식을 같이 나르고 겨울이면 흰눈 내리는 풍경을 같이 보면서 살아왔기에 가족이 아닐 수 없다. 혈연으로 묶인 가족보다 더 애틋한 가족일 것이다. ‘워낭소리’의 서사를 같이 따라가 보자.

 

소백산 어느 골짜기에서 평생 땅을 일구며 살아온 노인에게는 늙은 소 한 마리가 있다. 소의 수명이 보통은 15살이지만 노인의 소는 무려 40살이다. 얼마나 애지중지 키우고 보살폈는지 소의 나이만 봐도 알 수 있다. 소는 노인에게 베스트 프랜드다. 노인도 소에게 둘도 없는 친구다. 구불구불한 산골짝에서 소는 유일한 자동차이며 최고의 농사도구다. 노인은 귀가 어둡다. 잘 들리지 않는 귀로 소가 내는 워낭소리는 귀신같이 알아듣는다. 노인은 한쪽 다리도 불편해 절뚝거린다. 그렇지만 소에게 아무거나 먹일 수 없어 신선한 풀을 베기 위해 매일 산에 오른다. 심지어 소에게 해가 될까 봐 농약도 치지 않는 고집쟁이다. 

 

“말 못 하는 짐승이라도 내한테는 소가 사람보다 나아요” 

 

소를 자신보다 더 아끼는 노인은 서로를 신뢰하고 함께 움직인다. 노인은 불편한 다리 때문에 잘 서지도 못하면서 소의 고삐를 잡고 산으로 들로 함께 일하러 다닌다. 무뚝뚝한 노인과 덤덤한 소는 서로에게 더할 수 없는 친구이자 가족인데 어느 날 소가 아프게 된다. 수의사를 불러온 노인은 이제 소의 나이가 너무 많아 올해를 넘길 수 없을 것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릴 듣게 된다. 추석에 자식들이 모두 모이고 이제 소를 팔아버리라고 말하지만, 노인의 눈빛은 떨린다. 가족을 팔 수는 없었다. 오히려 더 애틋하게 돌본다. 늙은 소를 대신해 일할 어린 송아지를 사 오지만 천방지축인 송아지는 늙은 소의 밥까지 빼앗아 먹어 버리자, 버르장머리가 없다며 타이어를 매달고 어린 소를 훈련시킨다.

 

“영감은 이 소 없었으면 벌써 죽었어.”

 

어느 날 노인은 소가 일어나지 않자 절망에 빠진다. 고삐를 당겨보고 등을 두드려봐도 늙은 소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연락을 받고 온 수의사는 이제 더 이상 못산다고 하자 노인은 그동안 늙은 소를 옥죄고 있던 고삐와 워낭을 풀어준다. 그러자 늙은 소는 조용히 눈을 감는다. 노인은 한평생 친구가 되어 준 소를 묻어주며 회한에 젖는다. 노인과 늙은 소의 생을 다 봐온 할머니는 차라리 우리가 죽고 나서나 죽지라며 애달파 한다. 노인은 소를 묻은 곁에서 아무 말 없이 앉아 먼 산만 바라본다. 

 

‘워낭소리’는 사랑의 힘이며 관계의 힘이다. 고향을 사랑하는 힘, 자연을 사랑하는 힘, 동물을 지극하게 사랑하는 힘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노인의 서사다. 이충렬 감독이 만든 독립영화는 인간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자연과 인간과 동물의 대서사를 담아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인내하고 기다렸는지 영화를 보면 알게 된다. 공들이고 소통하고 공감해서 만들어 낸 스크린 속 이야기에 나도 모르게 빨려 들어간다. 영화의 소재를 찾아 5년의 시간을 투자했고 영화를 찍는데 또 3년의 세월을 투자했다. 8년이라는 긴 세월의 결정체로 만든 영화가 ‘워낭소리’다. 이충렬 감독은 말한다.

 

“낡고 늙고 장애가 있기에 그 헌신이 더욱 빛날 수 있는 존재의 마지막 몸부림과 헌신을 보여주고 싶었다”

 

 

[최민]

까칠하지만 따뜻한 휴머니스트로 

영화를 통해 청춘을 위로받으면서

칼럼니스트와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대학에서는 경제학을 공부하고 

플로리스트로 꽃의 경제를 실현하다가

밥벌이로 말단 공무원이 되었다. 

이메일 : minchoe293@gmail.com

 

작성 2025.05.06 09:50 수정 2025.05.06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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