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래 가구들끼리는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그저 아내는 방에 놓여 있고
나는 내 자리에서 내 그림자와 함께
육중하게 어두워지고 있을 뿐이다.
- 도종환, <가구> 부분
8년째 이어져 오던 부부 인문학 모임이 깨졌다. 집으로 오는 길, 가슴이 너무나 아팠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부부 인문학 모임이 끝나 집으로 돌아올 때, 아내에게 말했었다.
“이 모임 평생 가겠지?”
아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아내가 34년의 교직 생활을 끝내고 전업주부가 되었을 때, 나는 아내가 걱정되었다. 주부로 잘 지낼 수 있을까? 그래서 만든 게 부부 인문학 모임이었다. 다른 공부 모임에서 부부 인문학 모임을 얘기하면, 회원들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아직 하셔요?”
부부가 같이 공부 모임을 하면 다들 깨진단다. 부부가 싸워서 그렇게 된단다. 그렇다 우리 모임도 부부의 갈등이 어느 날 드러나더니 차츰 증폭되었다.
아, 부부가 인문학 공부의 동지는 될 수 없는 걸까? 부부의 갈등을 인문학의 힘으로 극복할 수는 없는 걸까? 나는 부부 인문학 모임이라는 전쟁터에서 처참하게 패하고 나뒹굴어졌다.
앞으로 회원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인문학을 공부하지 않아도 잘 살아갈까? 가구 부부가 되면 어떡하나? 한 회원의 말이 귀에 맴돈다.
“내가 거실에 있을 때, 남편이 안방에서 나오면 나는 안방으로 들어가요. 그러다 남편이 안방에 들어오면, 내가 다시 나와요.”
안방과 거실로 나눠서 이동하는 가구 부부, 서로 ‘육중하게 어두워지고 있을 뿐이다.’
[고석근]
수필가
인문학 강사
한국산문 신인상
제6회 민들레문학상 수상.
이메일: ksk21ccc-@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