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공공정책신문=김유리 기자] 5·18 민주화운동 45주년을 맞이하며, 필자의 마음은 다시 1980년 5월의 광주로 돌아간다. 필자는 고등학생 시절, 광주에서 학창시절을 보내며 5·18의 현장을 직접 목격하였다. 그날의 두려움과 분노, 그리고 시민들이 보여준 연대와 용기는 지금도 필자의 삶의 가장 깊은 곳에 남아 있다.
광주, 평범한 이웃들이 민주주의를 지킨 현장
1979년 12·12 군사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 신군부는 1980년 5월 17일 자정, 전국에 비상계엄을 확대하고 정치활동과 언론, 집회·시위를 전면 금지하였다. 국회는 계엄군에 의해 봉쇄되었으며, 야당 지도자들은 연행 또는 가택연금되었다. 광주 시민들은 이러한 불의에 맞서 거리로 나섰고, 계엄군은 총·칼·진압봉·헬기·탱크까지 동원하여 무자비하게 진압하였다.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으며, 항쟁은 시민군의 무장저항으로까지 발전하였다. 남녀노소, 학생과 노동자, 상인과 종교인까지 모두가 민주주의를 위해 하나가 되었다.
공동체의 연대와 저항, 그리고 희생
5·18은 단순한 지역적 사건이 아니라, 민주주의와 헌정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전국적 저항의 결정적 분수령이었다. 시민들은 서로를 위해 피를 나누고, 주먹밥을 나누며, 전남도청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웠다. 5·18은 불의에 타협하지 않은 불굴의 투지와,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자치공동체 정신의 발현이었다.
진상규명조사위원회의 공식 보고서에 따르면, 5·18 기간 동안 166명이 사망하고, 179명이 행방불명되었으며, 2,617명이 부상을 입었다. 아직도 확인되지 않은 희생자와 행방불명자가 남아 있다.
민주주의의 불꽃, 오늘까지 이어지다
5월 광주의 정신은 1987년 6월 항쟁으로 이어져 결국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큰 진전을 이루어냈다. 올해 45주년을 맞는 5·18은, 최근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 위기 논란 이후 처음 맞는 기념일로 더욱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최근의 정치적 혼란과 사회적 갈등은 1980년 광주의 아픔을 다시 떠올리게 하였다. 그러나 시민들의 비폭력 저항과 국회의 역할, 사회 각계의 연대는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회복력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다.
2025년 오늘, 금남로에서 개최된 45주년 전야제는 ‘아 오월, 다시 만난 오월’이라는 주제로, 당시 민주주의를 외치며 행진하던 시민들의 모습을 재현하였다. 5·18의 대동정신과 저항정신은 여전히 우리 사회 곳곳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5·18 정신, 헌법에 새기고 미래로 계승해야
5·18 민주화운동은 대한민국 민주주의 발전사에 불멸의 금자탑을 세운 민권투쟁이다. 그 정신은 단순한 과거가 아니라, 오늘과 내일의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원동력이다. 5·18의 저항정신과 대동정신, 공동체의 연대와 용기는 앞으로도 우리 사회가 반드시 지켜나가야 할 가치이다. 이제 5·18의 정신을 헌법에 명문화하고,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희생자 명예회복 등 남은 과제를 완수해야 할 시점이다.
필자는 광주에서 5·18을 경험한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공공정책을 연구하는 사회의 일원으로서, 그날의 정신을 잊지 않고 계승해 나갈 것을 다시 한번 다짐한다.
“5월의 광주는 우리 모두의 미래를 밝히는 등불이다. 5·18의 진실과 정신을 가슴 깊이 새기며, 더 나은 민주사회로 나아가는 길에 함께 서 있을 것이다.”
박동명 / 법학박사
∙ 한국공공정책학회 상임이사
∙ 전)국민대학교 행정대학원 외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