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나고 헤어지는 일이 다반사인 요즘, 이별에 대해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고 헤어짐이 있으면 또 만남이 있는 법이라고 쿨하게 뒤돌아서서 간다. 부럽다. 이별도 참 깨끗하고 만남도 쉽다. 정보가 공유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별이야말로 또 다른 기회로 작용하는지 모른다.
똥차 떠나니 벤츠 온다는 젊은이들의 세계관은 이별 같은 것에 얽매여서 시간 낭비 하지 않고 더 좋은 기회로 삼는다는 실용주의일까. 우리 인간의 감정 중에 팔할은 이별에 대한 감정이다. 이별을 노래한 시와 소설과 노래가 주를 이루는 것만 봐도 그렇다. 그렇다. 이별은 우리 인간사에 가장 중요한 사건이다.
가시리 가시리잇고 나ᄂᆞᆫ
ᄇᆞ리고 가시리잇고 나ᄂᆞᆫ
위 증즐가 大平盛代(대평셩ᄃᆡ)
날러는 엇디 살라 ᄒᆞ고
ᄇᆞ리고 가시리잇고 나ᄂᆞᆫ
위 증즐가 大平盛代(대평셩ᄃᆡ)
잡ᄉᆞ와 두어리마ᄂᆞᄂᆞᆫ
선ᄒᆞ면 아니 올셰라
위 증즐가 大平盛代(대평셩ᄃᆡ)
셜온 님 보내ᄋᆞᆸ노니 나ᄂᆞᆫ
가시ᄂᆞᆫ ᄃᆞᆺ 도셔 오쇼셔 나ᄂᆞᆫ
위 증즐가 大平盛代(대평셩ᄃᆡ)
고려가요 ‘가시리’는 이별의 주체가 여성이다. ‘가시렵니까. 버리고 가시렵니까 나를 두고 가시렵니까’를 외치며 제발 떠나지 말라고 애원하는 여인의 애절함이 묻어있다. 그러나 조금 더 객관적으로 들여다보면 여인의 주체적 이별의 모습이 담겨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가시리 가시리잇고’ 그냥 이별을 막아서는 피동적인 자세가 아니다. ‘당신, 정말 갈 건가요? 그래? 그럼 가버려’라며 이별에 대한 단호함을 피력하고 있다. 이건 어쩌면 전략일 수 있다. 고려 여인의 당돌함과 주체적인 삶의 태도다.
우리는 허구한 날 여자는 이별을 당하고 그 당한 이별에 눈물 콧물 짜며 애달파하는 약자로 인식해 왔다. ‘가시리’를 깊이 해석해 보면 떠나는 남자를 잡는 듯하지만 그 속에 숨은 마음은 계산된 거리 두기다. 상대방의 선택을 끌어내기 위한 전략적 애틋함으로 위장한 여자의 마음이다. 나를 두고 가려면 차라리 미련 없이 깨끗하게 가라고 단호하게 배웅하고 있다. 연민이 깔린 말투지만, 이별에서 주도권을 놓지 않겠다는 여인의 자존심이 깔려 있다. 게다가 붙잡지 않겠다는 의지도 엿보인다.
여성들은 지긋지긋하게 가스라이팅 당하며 살아왔다. 역사가 증명한다. 칠거지악이라는 목줄을 채워놓고 인권을 유린해 왔다. 시부모에게 순종하지 않으면 내쫓기고 자식을 못 낳아도 내쫓기고 행실이 음란해도 내쫓기고 질투를 해도 내쫓기고 나쁜 병이 있어도 내쫓기고 말썽을 피워도 내쫓기고 도둑질을 해도 내쫓겨야 한다니 기가 막힐 일이다. 그런 대접을 받으며 살아왔던 여성이다. 오늘날에 보면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니던가. 그런 속에서도 여성은 사랑을 하고 이별을 한다.
고려 여인의 이별 노래 ‘가시리’는 이별 당하는 수난자의 자리에 머물지 않고 감정을 절제하며 이별을 설계하는 존재로 서 있다. 울부짖거나 매달리는 대신 떠나는 남자를 고이 보내줌으로써 남녀 간의 권력을 선점하고 있다. 하도 탄압받고 억압받고 가스라이팅 당했던 조선시대 여인이 뇌리에 꽉 박혀서인지 고려 여인의 자주적이고 당당한 모습을 ‘가시리’에서 발견하는 건 쉽지 않았다. 그저 뻔한 이별 노래라고 치부하고 말뻔했지만, 다시 읽고 나직이 낭송해 보면 고려 여인의 주체성과 감정의 반전을 발견해 낼 수 있었다.
‘가시리’는 고려 여인의 은유적인 메시지가 단연 돋보이는 작품이다. ‘붙잡지 않겠다’는 말은 상대방에게 미련과 후회를 남기는 이별의 기술이다. 요즘 젊은 여성들의 연애 장면과 겹쳐 보인다. ‘그래 잘 가 나 없이도 잘 살아’라며 쿨한 이별 감정으로 연애의 종지부를 찍으며 담담하고 담백하게 끝까지 자신을 잃지 않는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이별에 휘둘리지 않는 존재, 이별을 허용하는 존재, 그 존재의 감정을 설계하는 주체가 고려 여인의 자존감이었을 것이다. ‘가시리’는 좀 과장해서 말하면 고려 여인의 사랑의 품격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가시겠습니까? 가시겠습니까?
버리고 가시겠습니까?
나는 어찌 살라하고
버리고 가시겠습니까.
붙잡아 두고 싶지만
서운하면 아니 올까 두렵습니다.
서러운 임 보내옵나니
가시는 듯 돌아오십시오.
[이순영]
수필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