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을 살면서 평범하기가 제일 어렵다. 보통사람 이돈수 씨의 평범하지만 비범한 삶을 따라가 본다. 경남 통영시 산양읍 연곡리 오곡도에 사는 이돈수 씨는 40여 년을 다닌 직장을 은퇴하고 올해부터 오곡도에 정착했다.
마산 창신공고 기계과를 졸업하자마자 약관 20세도 되기 전에 대우중공업 견습사원으로 입사한 그는 성실하게 꼼꼼하게 회사 생활에 매진했다. 그리고 해병대 복무를 마치고 전역한 후 대우중공업에 복귀했다.
돈수 씨가 공고를 졸업하던 1980년 당시만 해도 기계과를 나온 학생들은 창원공단의 대기업에서 스카우트를 할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그는 정년을 마치고 계약직으로 3년을 더 일한 후 2024년 말에 은퇴했다. 한 번도 직장을 옮긴 일이 없지만 그동안 회사의 주인은 여러 번 바뀌었다. 대우중공업에서 두산인프라코어가 되었다가 다시 현대로 넘어갔지만, 그는 항상 그 자리에서 꿋꿋하게 자신의 소임을 다했다.
대기업 제조업체는 인사와 승진 체계가 군대와 비슷한 면이 있다. 대학을 나온 사람들은 주임 대리 부장 임원으로 승진하는데, 고졸은 사원 조장 반장 직장으로 승진한다. 대졸이 군대의 장교에 비교된다면 고졸은 부사관과 비슷했던 시절이 있었다. 돈수 씨는 견습사원으로 출발해서 직장까지 했으니, 이등병으로 입대하여 주임원사로 전역한 것과 비슷하다.
공작기계를 제조하는 일은 초정밀 기술이 생명이다. 1/100mm 이내의 오차로 쇠를 깎아야 한다. 요즘은 계측 시스템이 자동화되어 있지만 돈수 씨가 조장이나 반장을 할 때만 해도 캘리퍼스와 같은 측정공구 하나 들고 동물적 감각으로 초정밀 금속 가공을 했다.
돈수 씨는 타고난 성품이 워낙 부지런하고 궂은일도 솔선해서 하는 스타일이다. 4형제 중에서 셋째인 그는 형들이 서울로 떠나고 동생도 객지로 나갔지만 혼자서 고향의 선산을 지키고 있다. 굽은 소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는 말은 돈수 씨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시고 나서도 선산을 돌보고 있다. 누구나 더 좋은 곳으로 더 나은 곳으로 떠나고 싶어할 때 돈수 씨는 묵묵하게 그 자리를 지키며 떠난 형제들의 고향이 되어주고 있다.
돈수 씨는 올해 연말에는 섬마을 오곡도 이장으로 취임할 예정이다. 그는 사람이 없어 무인도가 될 처지에 놓인 오곡도에 작은 섬집 하나 마련하고 섬에 생명을 불어넣고 있다. 섬을 청소하고 가꾸며 사람들이 찾아올 수 있게 정성을 다해 가꾸고 있다. 그가 사는 섬집은 약 25년 전 이순신 전적지를 답사하던 큰형과 함께 오곡도에 들렀다가 주변 풍광에 매료되어 마련해서 지금껏 섬을 지키고 있다.
한때 약 50가구가 살았고 국민학교 분교까지 있었던 오곡도는 주민들이 대부분 육지로 떠나고 이제 겨우 5가구만 남았다. 인생 이모작을 하는 돈수 씨의 토담집 마루 위에는 "남의 집이 행복해야 우리 집도 행복하다"라는 가훈이 걸려 있다. 남의 집이 행복해야 우리집도 행복하다는 것이야말로 범상치 않은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행복을 먼저 구하는 게 대부분이다. 낡은 돈수 씨의 섬집에 걸려 있는 가훈이 오곡도를 사람 살만한 섬으로 만들어 주고 있는 듯하다.
주말이면 육지의 가족이나 친구들이 다녀가지만, 돈수 씨는 육지로 나오는 일이 별로 없다. 먹을 것은 쌀만 있으면 바다와 산과 텃밭이 온갖 먹거리를 제공해 준다. 바쁠 것도 없고 걱정할 일도 없이 자연과 더불어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하고 있다.
평범한 돈수 씨의 비범한 섬 사랑이 더욱 돋보이는 건 자발적 가난을 택해 섬에서 섬처럼 살아가는 삶의 진정성이 있기 때문이다. 행복을 구호처럼 외치는 사람들보다 행복을 스스로 만들어 가면서 사는 돈수 씨의 삶은 우리에게 행복이 무엇인지 깊은 생각을 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