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서 칼럼] 정치와 비평의 재구성

감응하지 못하는 시대, '말하지 않는 말' 앞에 멈추는 비평

나는 요즘 자주 말을 멈춘다. 말을 고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말을 해도 되는지를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상황에 자주 처하기 때문이다. 정치가 격렬해질수록, 언어는 더 명확한 태도를 요구받는다. 입장은 존재의 윤리로, 발언은 정체성의 증명으로 치환된다. 누구의 편인가, 누구를 옹호하는가, 그리고 무엇을 침묵해야 하는가. 그 모든 질문이 말하기의 조건이자 전제가 된다.

 

하지만 나는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언제, 말할 수 있는 자격을 획득하는가? 말하지 않는 말들 앞에서, 우리는 얼마나 오래 침묵해 왔는가? 그런 질문 앞에서 나는 새삼 비평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했다. 그것은 언제나 해석의 기술로, 판단의 언어로, 진실의 문법으로 작동해왔다. 비평가는 '설명'하는 자이며, '분석'하는 자이며,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해'할 수 있는 자였다.

 

그러나 '이해한다'는 행위는 언제나 특정한 위치에서 말해진다. 그 위치가 보지 못하는 것은 말해질 수 없는 고통이며, 그 언어가 도달하지 못하는 것은 응답되지 않은 존재다. 가야트리 스피박은 “서발턴은 말할 수 없다”고 했다. 나는 이 문장을 이렇게 이해한다. “서발턴은 말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의 말이 들리지 않도록 구성된 사회에 살고 있다.” 감응의 윤리는 이 지점에서 시작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은 단지 타인의 감정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그 감정이 감지될 수 없게 된 사회적 구조를 철학적으로 직시하는 행위이다.

 

감응은 이해의 욕망을 유보하는 실천이다. 그것은 대상화도, 해석도, 동일화도 아니다. 오히려 ‘나는 이해할 수 없다’는 인식에서 비롯되는 책임의 사유다. 이해의 언어가 닿지 않는 자리에서, 감응은 침묵의 윤리를 요청한다. 그 침묵은 말하지 않음이 아니라, 말이 사라질 수밖에 없었던 권력의 분포, 감정의 배치, 고통의 위계를 드러낸다.

 

정치는 언제나 감정의 지도를 다시 그리는 작업이다. 누구의 분노가 정당화되고, 누구의 슬픔이 승인되며, 누구의 두려움이 제거되는지를 결정하는 힘, 그것이 정치다. 따라서 감응은 정치의 바깥이 아니라, 정치의 가장 깊은 내막과 조우하는 윤리적 행위다. 감응의 정치란, 감정의 정치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감정이 사회 속에서 어떻게 윤리적으로 배열되고, 어떻게 배제되고, 어떻게 들리지 않게 되는지를 사유하는 정치다.

 

‘말하는 자’로서의 비평가는 그 자체로 말하지 않게 만드는 장치의 일부이기도 하다. 비평이 감응의 윤리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곧 자기 자신을 해석의 권력에서 끌어내려 응답 불가능성 앞에 멈춰서는 일이다.

 

나는 믿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 비평이 필요하다면 더 날카로운 해석이 아니라 더 오래 침묵할 수 있는 비평, 더 정확한 설명이 아니라 더 깊이 감응하는 비평이다. 그것은 판단의 언어가 아니라, 관계의 언어, 멈춤의 언어로 말해지는 비평이다.

 

어쩌면 지금의 비평은 다음의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당신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당신 앞에, 그 말하지 않는 말 앞에, 멈춰 서 있습니다.” 

 

이 멈춤이야말로 지금의 정치적 격변기 속에서 비평이 감당해야 할 가장 윤리적이면서 철학적인 실천일 것이다.

 

 

[이진서]

고석규비평문학관 관장

제6회 코스미안상 수상

lsblyb@naver.com

 

작성 2025.05.26 10:44 수정 2025.05.26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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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