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의 영화에 취하다] 겟 로우

최민

머리는 정신 나간 것 같이 산발하고 눈빛은 공허하다 못해 허허롭다. 괴팍해 보이는 표정 뒤에 꽁꽁 숨어 있는 서글픔까지 표현하는 명배우 로버트 듀발의 연기는 연기가 아니라 삶 그 자체인 듯 몰입된다. 1931년생인 로버트 듀발은 인생을 끝까지 살아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희로애락을 알기에 캐릭터에 그대로 스며들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영화가 바로 ‘겟 로우’다. 늙음은 무엇일까. 늙어서 죽는다는 건 무엇일까. 죽음이라는 대명제를 앞둔 사람은 누구나 회한에 젖어 든다. 마지막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떠나고 싶은 것이 인간이다.

 

이 지구에 사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은 다 아름답고 슬프고 비밀스러우면서 기적에 가까운 대서사다. 그래서 영화를 통해 우리가 모르는 사람의 인생을 들여다본다. 작가가 만들어낸 인물일지라도 그 사람의 인생에 대해 궁금하고 알고 싶다. 인간은 이야기를 통해 공감하고 소통하는 동물이다. 이야기는 인간을 인간답게 진보시켰다. 지구 어딘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을 투영하고 기쁨도 느끼고 슬픔도 느낀다. 존재를 깨닫는 건 타자를 통해서다. 그 타자가 가공의 인물이라도 상관없기 때문이다. 

 

‘겟 로우’는 괴팍한 한 노인이 자신의 장례식을 부탁하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1930년대 미국 남부 테네시, 노인은 마을과 떨어진 산속에서 사십 년 넘게 홀로 살아가고 있다. 은둔자로 살고 있는 노인을 보고 마을 사람들은 온갖 흉흉한 이야기를 지어내며 그를 가까이 하지 않고 경계의 대상으로 삼는다. 왕따를 시킨 것이다. 어느 날 노인은 죽음을 예감하고 자신이 살아있는 동안 자신의 장례식을 치르고 싶어 읍내 장례업자를 찾아간다. 장례업자는 돈이나 벌자는 생각으로 심드렁하게 노인을 대하는데 노인은 돈뭉치를 턱 꺼내 놓고 뜻밖의 제안을 한다. 

 

노인은 ‘장례식 파티’을 하고 싶으며 자신의 장례식 파티에 초청장을 5달러에 사는 사람과 경품 추천을 해서 당첨된 사람에게 자신의 전 재산을 주겠노라고 한다. 돈이 탐난 장례업자는 흔쾌히 장례식을 허락하다. 경품을 내건 덕분에 그동안 노인에 대해 무관심했거나 안 좋은 감정이 있던 마을 사람들은 노인의 장례식 파티에 몰려든다. 그런데 40년 전에 노인을 사랑했던 여인을 만나게 되지만 정작 노인은 그 여인의 언니를 사랑했노라고 고백한다. 여인은 그때 죽은 언니가 노인과 관계가 있다는 걸 알고 당장 나가라고 소리친다. 

 

그러나 쓸쓸히 돌아서 가던 노인은 몇 발짝 못가 쓰러지고 만다. 며칠 뒤 노인의 정원에서 장례식 파티가 열린다. 노인은 마지막으로 자신의 관을 만들어 완성하고 장례식 파티가 열리는 정원으로 향한다. 그리고 찰리 잭슨 목사와 함께 연단에 올라 자신에 대해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40여 년 전 유부녀를 사랑했고 그녀와 함께 새로운 인생을 위해 멀리 달아나려고 했지만, 그녀의 남편에게 들켜 그를 때려눕혔다. 하지만 기절했던 그녀의 남편은 일어나 집에 불을 질러 버렸다고 한다. 

 

노인은 자신의 유일한 사랑인 그 여자가 불타고 있는 걸 보고 구하려고 했지만 정신을 차려보니 자신은 밖에 나와 있고 그 여자는 구출하지 못해 평생 죄책감에 쌓여 살았노라고 고백한다. 그리고 용서를 빈다. 진심을 담은 노인의 고백이 끝나고 장례식 파티고 마무리된다. 다시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을 배웅한다. 잠시 뒤 단 한 번도 잊어본 적 없는 사랑했던 그녀가 노인을 데리러 마중을 나온다. 그리고 이번엔 몇 사람이 모여 조촐한 진짜 장례식이 열리며 막이 내린다. 

 

‘겟 로우’는 노인 역할을 연기한 로버트 듀발 깊고 형형한 눈빛이 영화에 몰입하게 만들었다. 마치 노인이 로버트 듀발이고 로버트 듀발이 노인인 것 같은 느낌이다. 영화 속 인물에게 자연스럽게 녹아든 것은 로버트 듀발도 이미 많이 늙어 있고 세상의 일들을 다 경험한 노인이기 때문일 것이다. 자기 자신에게 벌을 주었던 40년을 가슴에 꾹꾹 눌러 담고 고통의 시간을 견뎠을 노인의 괴로움이 화면에 잔잔하게 드러나고 있다. 남을 용서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자기 자신을 용서하는 것은 더 어렵고 힘든 일이라는 걸 노인을 통해 알 수 있다.

 

살아서 치르는 장례식 파티는 지난날의 과오를 참회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인간이란 존재는 꼭 이로운 일에만 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영화를 보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세상에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사람들은 다른 종류의 인간인 것 같다.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이야기, 그러나 또 존재할 것 같은 이야기를 만들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예술을 낳는 조건은 도취라는 말은 맞는 말인 것 같다. ‘겟 로우’의 노인은 말한다.

 

“용서를 빕니다”

 

 

[최민]

까칠하지만 따뜻한 휴머니스트로 

영화를 통해 청춘을 위로받으면서

칼럼니스트와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대학에서는 경제학을 공부하고 

플로리스트로 꽃의 경제를 실현하다가

밥벌이로 말단 공무원이 되었다. 

이메일 : minchoe293@gmail.com

  

작성 2025.05.27 10:07 수정 2025.05.27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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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