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식 칼럼] 아내의 티셔츠

김태식

오래전 아내가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가느라 가방을 챙겼다. 

 

 “빨래를 세탁기에 넣어 두었으니 탈수가 되고 나면 널어만 주면 됩니다.”

 “밥은 바깥에서 사 먹지 말고 반찬이 있든 없든 되도록이면 집에서 해 먹으면 좋겠네요. 며칠만 고생하세요.”

 

회사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저녁에 세탁기 속에 들어있는 빨래를 끄집어낸다. 탈수는 잘 되었지만 옷들이 세탁기 안에서 트위스트 경연을 벌이기라도 한 것인지 서로 뒤엉켜 쉽사리 풀리질 않는다. 

 

차근차근 떼어 내자 면으로 된 티셔츠 하나가 뚝 떨어진다. 딸이 입던 것 같기도 하고 아내가 입던 것인가? 그런데 실밥이 풀려있고 많이 낡아 있다. 아내가 언젠가 지나가는 말로 내게 했던 말이 생각난다.

 

“나는 옳은 티도 하나 없네. 언제나 딸이 입던 옷만 입어야 하니......”

 

그럴 때마다 나는 답답하다는 듯이 말했다.

 

“하나 사 입어, 시장에서 보니 많이 나와 있던데.”

 

어디 몇천 원이 없어서 그 옷을 못 샀으랴. 마음은 있어도 적은 액수의 돈일지라도 쉽게 쓰지 못하는 것이 주부의 마음이라는 것을 남편은 헤아리지 못하는 것이다. 

 

아이들이 어릴 때 아내가 집에서 입는 겉옷은 언제나 운동복이었다. 아이들이 입고 버리기 아까워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며 입는 옷의 등에는 ‘ㅇㅇ체육관’ 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었다. 하지만 오래 입다 보면 박힌 글씨의 실밥은 빠져 버리고 글씨 자국만 흐릿하게 남아 있을 뿐이다. 바지는 무릎이 하나쯤 더 있어 보이듯 튀어나와 있다. 아내의 알뜰함을 인정하지 않은 채 ‘그 모습이 뭐냐고’ 면박을 주다가 부부싸움으로 발전하기도 했지.

 

옳은 면티 하나 없음을 뒤로하고 아침 출근길을 나서는 남편의 양복이 유행이 지난 듯하고 색상이 흐릿해졌다는 이유로 그날 저녁 퇴근길에 백화점에서 만나자고 한다. 중저가의 옷을 고르면 아내는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양복을 입어야 할 남편마저도 간이 졸여지는 비싼 가격의 옷을 쉽게 사 준다. 내친김에 내가 아내 옷도 한 벌 사길 권하면 손사래를 친다. 정작 본인은 깨끗한 면티 하나도 없으면서 계절이 바뀔 때마다 입을 옷이 마땅치 않다고 고민하는 아내를 옆에서 보며

 

“그렇게 궁상떨지 말고 괜찮은 정장 옷 하나 사 입어.” 

 

지나치듯 말해 버린다. 돌아서면 월말이 되어 공과금이며 생활비를 쪼개야 하고 자식들 학비에 살림살이에 옷 한 벌 사 입는 것이 녹록지 않은 것을 남자들은 모른다. 

 

아내의 뜻을 헤아리지 못한 채 무심하게 ‘사 입으면 되지’ 할 뿐, 직접 사 들고 오는 일은 없다. 재래시장에서 콩나물을 조금 더 받으려고 야채를 덤으로 더 넣으려고 그래서 얻어지는 이익이 얼마나 되겠냐마는 이것이 주부들의 마음이다. 남편 좋아하는 반찬 사고 딸과 아들이 즐겨 먹는 먹을거리 사면 시장을 다 본 것 인양 집으로 돌아오는 길목에 소위 ‘길표 옷’ 이라도 있으면 만져보기만 할 뿐 사지는 않는다. 

 

색상이 맞지 않고 크기가 맞지 않다는 것이 이유다. 얼마나 오래도록 입을 옷이라고 색상이 꼭 마음에 들어야 하고 치수가 정확해야 하랴. 집에서 헤진 면티를 입을지언정 모두 주부라는 이름의 둥지에 묻어 버리는 것이다.  큰맘 먹고 들어간 유명 메이커 옷 가게에서 이 옷 저 옷을 입어보고

 

“이 옷 어때요. 예뻐요?” 

 

슬쩍 가격표를 보면서 남편에게 입은 모습만 보여주는 것으로 자랑을 한다. 

 

“나는 헐렁한 면티가 어울리는 것 같아.”

 

라는 말로 위안을 삼고 ‘다음에’ 라는 비확정적인 약속을 하고 가게 문을 나서기 일쑤다. 부부의 연을 맺었을 때의 젊은 시절에는 어디 늙으리라 생각이나 했던가. 늘어나는 허리 치수를 감당하지 못해 처녀 때의 옷을 입지 못하리라는 상상이나 했겠는가. 불어나는 체중만큼이나 척척 들어맞는 옷은 펑퍼짐하고 편안하면 되는 것으로 알고 살아간다. 늘어나는 뱃살은 아름다운 여유로움이다. 머리카락은 어느새 하나 둘 파뿌리로 되어가고 있다. 눈은 돋보기의 신세를 져야만 편안하게 글을 읽어낸다.

 

하루 말린 옷을 빨랫대에서 걷어 차곡차곡 갠다. 나의 속옷이나 윗옷은 잘 개어 지는데 반해 아내의 그것들은 모양이 나지 않는다. 내가 빨래 정리하는 솜씨가 서툴러서 그러려니 했지만 아니었다. 늘어나고 낡고 실밥이 터져서 그랬다. 우리 인생의 나이가 들어가는 모습과 닮아있다. 아내는 자신의 것은 각이 나오지 않는 문드러짐이 있어도 가족의 것은 반듯해야 한다는 생각인가 보다.  

 

아내도 멋진 옷을 입고 싶은 마음은 당연할 것이다. 나이는 들어가지만 그래도 여자이니 예쁜 날개를 달고 싶을 것이다. 보는 눈높이는 있어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자니 얄팍한 지갑에서 쪼르륵거리는 소리가 나고 싸구려 옷을 입자니 몸이 알레르기 반응이라도 보일 것이라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앞서는 것은 식구들 먹여 살리느라 힘든 하루하루를 마무리하는 남편 생각 때문일 것이다. 

 

저녁 퇴근길에 동료들과 어울려 삼겹살에 소주 몇 잔 마시고 들어와 코를 골며 자는 남편의 피곤한 모습이 떠올라 헐렁한 옷차림으로 그냥 살고자 했을 터이다. 아내가 돌아오기 전에 실밥이 빠지고 낡아진 헐렁한 면티를 버렸다. 없어야 새것으로 살 테니 말이다.

 

 

[김태식]

미국해운회사 일본지사장(전)

온마음재가센터 사회복지사(현)

울산신문 등대문학상 단편소설 당선 등단

해양문학상 논픽션 소설 당선

사실문학 시 당선 등단

제4회 코스미안상 수상

이메일 : wavekts@hanmail.net

 

작성 2025.05.27 11:40 수정 2025.05.27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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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