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의 영화에 취하다] 카드보드 복서

최민

‘외로움’

외로움의 동의어는 죽음이다. 외로움은 죽음으로 가는 통로다. 그 외로움을 온몸으로 뒤집어쓰고 살아가는 사람들, 그 사람들의 외로움을 우리는 잘 알지 못한다. 외로움에 쩔어 사는 사람 대부분은 노숙자다. 어디 비빌 언덕도 없는 사람들, 인생 막장에 서 있는 노숙자들을 보면 우리는 측은지심이 일어나지 않고 일단 피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게 인간이다. 일하기 싫어서 노숙자가 되었건 어쩔 수 없이 인생이 그렇게 흘러갔건 이 지구에서 가장 외로운 사람들이 노숙자일 것이다. 

 

집 없고 돈 없고 가족 없는 사람들, 대책 없는 절망의 길을 가는 노숙자들은 어느 사회든 골칫거리다. 그들은 사회로부터 가족으로부터 억지로 포기를 당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욕망은 살아있어서 매 순간 희망을 꿈꾼다. 가족을 꿈꾸고 돈을 꿈꾸고 집을 꿈꾼다. 꿈꾸는 인간이지만 그 꿈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절망이 꿈을 이기기 때문이다. 종로 구석구석에서 보는 노숙자들, 서울역 앞에서 대놓고 오고 가는 사람들을 조롱하는 노숙자들 보면 왜 정부는 이런 사람들을 방치하고 있냐고 정부를 욕하곤 한다.

 

이 위태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노숙자들을 보면서 돈 몇 푼 무심하게 던져준 것이 다다. 돈 바구니 속으로 찰랑하고 떨어지는 동전의 경쾌한 소리를 들으며 저들과 다른 세상에 사는 것에 자신도 우쭐댔을지 모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만 하면 목구멍에 밥칠은 하고 살지 않던가.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는 성경 구절을 인용하면서 나도 저들을 속으로 욕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모른다. 한 개인의 삶의 여정이 어떠했는지 어떤 외로움으로 세상을 살아가는지 아무도 모른다. 영화 ‘카드보드 복서’를 보고 나서야 인간의 외로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아무것도 없는, 달랑 몸뚱이 하나만 있는 노숙자 윌리는 LA 빈민가를 떠돌며 쓰레기 더미를 뒤져가며 하루하루를 연명하고 산다. 밤이 되면 길거리 후미진 구석에서 잠을 자고 아침이면 다시 거리를 배회하며 1불을 벌기 위해 사람들에게 구걸한다. 그저 절망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윌리, 어느 날 쓰레기통을 뒤지다가 일기장 하나를 발견한다. 윌리는 이 일기장에 이상하게 끌리게 되는데 일기장의 주인인 소녀의 슬픈 이야기를 알게 된다. 윌리는 이 일기장을 소중하게 간직한다.

 

윌리는 일기장 곳곳에 필기체가 있어서 읽지 못하는데 그러던 중 이라크 전쟁에서 다리를 잃고 휠체어를 탄 청년에게 다가가 용기를 내어 일기장을 읽어달라고 한다. 일기장 속의 소녀는 어릴 때 부모를 잃고 삼촌 집에서 생활하는데 그 생활이 너무 힘들고 고단해서 소녀의 꿈은 빨리 엄마를 만나러 천국에 가는 게 소원이 되어버렸다. 소녀도 자신처럼 사랑받지 못하는 외로운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된다. 그렇게 일기장을 읽은 윌리는 연필을 벽에 갈아 답장을 써서 종이비행기로 접어 멀리 날린다. 

 

 

그러던 어느 날 양아치들이 찾아와 노숙자들끼리 싸워서 이기면 50달러를 주겠노라고 하며 윌리를 유혹한다. 고민을 하지만 결국 돈의 유혹에 넘어가서 한바탕 싸움을 벌인다. 그리고 상대를 가뿐하게 때려눕히고 돈을 받는다. 그렇게 몇 번 더 카드보드 복서 일을 하면서 돈을 벌게 된다. 그 돈으로 번듯한 숙소에서 잠도 자보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즈음 휠체어 청년도 죽게 되고 윌리는 더욱 외롭고 쓸쓸한 감정에 빠져들게 된다. 윌리는 인간의 감정을 알고 싶어 돈을 주고 난생처음 여자를 사서 하룻밤 같이 보내고자 하지만 몸을 섞는 대신 그저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해 달라고 한다. 그녀는 윌리를 진심으로 꼭 안아주며 사랑한다고 말해준다. 

 

윌리는 자신을 친구라고 불러 주는 어린 양아치들의 돈을 건 싸움에 다시 뛰어들게 된다. 양아치는 소녀의 일기장을 불 속으로 던져 버리고 윌리는 일기장을 구하기 위해 뛰어들었다가 화상을 입게 된다. 윌리는 병원에서 치료받게 받으면서 일기장 속 내용을 혼자 중얼거린다. 그 소리는 우연히 스피커를 통해 밖으로 나가고 화상으로 온몸을 감싼 작은 소녀가 윌리를 몰래 바라본다. 윌리는 치료를 마치고 다시 노숙자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 소녀와 마주치게 된다. 

 

외로움을 견디는 힘은 무엇일까. 외로움은 배고픔이나 추위보다 더욱 견디기 힘든 정신적 고통이다. 사람은 사람에게서 상처받고 또 상처를 치유 받는다. 파리 목숨보다도 못한 노숙자라도 삶은 누구나 소중하다. 우리는 외면하고 산다. 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하지 못한다는 말을 들으며 살아왔다. 윌리는 쓰레기 더미에서 주운 일기장으로 인해 삶이라는 고통에서 희망을 발견했다. 우리는 당장 집이 있고 돈이 있고 가족이 있어서 노숙자가 아닐 뿐이지 큰 틀에서 보면 누구나 이 지구에 인간으로 태어난 노숙자다. 우주의 고아인 셈이다. 누가 부인할 수 있겠는가. 윌리는 하늘에 있는 엄마에게 말한다.

 

​“누가 당신을 그렇게 많이 사랑하게 되면 당신은 자동적으로 특별해지는 거예요” 

 

 

[최민]

까칠하지만 따뜻한 휴머니스트로 

영화를 통해 청춘을 위로받으면서

칼럼니스트와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대학에서는 경제학을 공부하고 

플로리스트로 꽃의 경제를 실현하다가

밥벌이로 말단 공무원이 되었다. 

이메일 : minchoe293@gmail.com

 

작성 2025.06.03 11:03 수정 2025.06.03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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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