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용필의 <간양록> 유행가 아랑가의 노래 제목은, 책 제목이다. 임진왜란의 후반, 정유재란의 아비규환 상황 1597년 9월 전라도 남쪽, 영광지역 앞바다에서 왜군에게 붙잡혀 일본 본토로 끌려갔다가 1600년 5월에 탈출해 온, 형조좌랑 강항(1567~1618)이 쓴 책 이름. 필사본과 목판본이 서울대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1980년 이러한 사연을, 대하역사드라마 작가 신봉승이 노랫말을 짓고, 가왕 조용필이 곡을 엮어 스스로 부른다.
이국 땅 삼경이면 밤마다 찬 서리고
어버이 한숨 쉬는 새벽 달일세
마음은 바람 따라 고향으로 가는데
선영 뒷산에 잡초는 누가 뜯으리
어야 어야 어야~ 어야 어야 어야~
어야어야어야 어야어야어 어야어야어야아 어야어야어~
피눈물로 한 줄 한 줄 간양록을 적으니
님 그린 뜻 바다 되어 하늘에 닿을 세라
어야어야어야 어야어야어야~
어야어야어야 어야어야어야~
어야어야어야 어야어야어야~
어야어야어야아 어야어야어~
임진왜란(1592~1598)의 한을 절규한, 우리 민족의 슬픈 역사의 한 단면을 서사한 애창(哀唱). <간양록> 유행가 아랑가 노래는 당시 MBC의 인기드라마 '간양록'의 주제곡이다. 이 노래는, 정확하게 380년의 역사를 반추(反芻)한 억장(億丈) 무너질 만큼의 복수 분노가 발활(勃活)하는 역사유행가다.
2025년 일본제국주의 식민지로부터 해방광복을 되찾은 80주년에, 일본의 노략질 임진왜란에 얽힌, 민족의 비련과 질곡과 곡절과 잊혀져 가는 사연을 펼치는 필자의 가슴팍에 뜨거운 숨결이 맺힌다.
강항은 포로로 잡혀 있는 동안, 왜군 막부의 귀화 요청을 끝내 거부하 마침내 탈출에 성공한다. 2년 8개월 동안 억류 생활을 하던 그는, 후시미 성주에게 '자신을 조선으로 돌려보내 달라는 편지'를 여러 번 썼고, 결국에는 탈출 고국 조선으로 돌아왔다.
그는 억류 기간 중 수차례의 비밀편지를, 선조 임금(1552~1608)에게 보낸다. 적국(敵國), 왜놈 나라의 정황을 적은 정보 편지였다. 노래의 가사와 가락을 임진왜란 당시 일본의 포로로 끌려갔던, 조상들의 역사와 오버레이 해 보면 절묘하게 들어맞는다. 태평양전쟁에 강제 징용된 우리들의 아버지 어머니, 그 아버지의 아버지와 어머니들의 폐칩(廢蟄)된 속박상태와도 겹쳐진다.
<간양록> 유행가 아랑가 노래는 '정명가도(征明假道)'를 명분으로 한, 임진왜란과 조선 하3도(충청·경상·전라) 할양(轄㔀)을 전략적 목표로 지향한 왜군들의 폭거와, 암울한 그 속을 견디어 낸 사연
임진왜란 1592년 4월 13일부터 1598년 11월 19일까지, 2405일 동안을, 견디어 살아낸 우리 어버이의 어버이들의 피폐한 삶이 생채기 나고 피멍이 든 채로 고스란히 담겨있다.
책 이름 『간양록』은, 원래 왜놈 나라 억류생활을 기록한 포로수기(捕虜手記). 원래 명칭은 건거록(巾車錄)이었다. '건거'는 '죄인이 타는 수레'라는 뜻인데, 왜구의 포로였던 강항이 포로였던 자신을 스스로 죄인으로 생각하고 지은 것.
옛 시절 조상님의 상사(喪事) 때에 상주(喪主)가 머리에 쓰던, 새끼 줄 '건(巾)'이 이 글자와 같다.『건거록』이것을 강항의 수제자 윤순거(1596~1668)가, 간양(看羊)이라 고쳐 불렀다. 『간양록』...
'간양'은 중국 한 무제 때, 흉노에 사신으로 갔다가 억류되어 흉노 왕이던, 선우(單于)의 회유를 거부하고, '양을 치는 목동 노역'을 하다가 19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온 소무(蘇武, ?~BC60)의 충절을 뜻하는 말이다.
소무는, 천한(天漢) 원년 한나라의 중랑장(中郎將)이었다. 간양록 내용은 난중옥필(亂中玉筆)이다. 붓으로 지은 칼이고 방패였다.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 비길만한 내용 4가지이다.
난중일기는 1592년 1월 1일부터 1598년 11월 17일까지, 2539일 중 1593일간의 전쟁사령관의 전장 일상을 기록한 전쟁일기다.
간양록 기록 내용의 4가지~ 핵심은 첫째, 적국이던 왜국(일본)에서 선조 임금께 올린 적중봉소(賊中封疏)는 일본의 지리 · 지세 · 관호 · 군제 · 형세 등을 기록한 것. 둘째는, 적국이었던 일본지도를 그린 왜국팔도육십육주도(倭國八道六十六州圖). 셋째는, 일본에 강제로 끌려가 있던 조선인 포로들에게 준 고부인격(告俘人檄), 이는 조선으로 귀환이 결정된 뒤 대마도에 도착하여, 왜국에 남아 있던 조선 포로들에게 보낸 격문이다. 이 글은 왜국에 대한 적개심이 가득하며, 왜국에 남아 있는 포로들에 대한 격려와 분발을 촉구한다. 넷째는, 포로 생활 중 조선으로 귀환하여 올린 예승정원계사(詣承政院啓辭)와 왜국에서의 환란생활을 기록한 섭란사적(涉亂事迹)이다.
이러한 강항 선생의 포로생활 서사가 드라마 주제곡이면서, 대중가요 유행가 아랑가로 환생한 것이 조용필의 절창 <간양록>이다. 강항은, 정유재란(1597~1598)때 분호조판서(分戶曹判書) 이광정(李光庭)의 종사관(보좌관)으로, 전라북도 남원에서 군량 보급을 담당하다가 그곳이 함락된 뒤, 고향 영광에서 김상준(金尙寯)과 함께 의병을 모집했다.
이때 인근 지역이 왜군에게 침략당하자, 가족을 데리고 바닷길로, 이순신 장군이 명량해전 대첩을, 달성한 후 추격하는 왜군을 따돌리면서, 고군산군도까지 전술적 회피기동을 하던 곳으로 찾아가던 중 왜군의 포로가 되어 일본으로 끌려간다. 당시 30세였다.
강항이 포로로 끌려갔던 1597년 9월은 원균이 칠천량해전에서 대패한 두 달 후다. 또 이순신 장군이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임명(1597.8.3.)된 직후다. 득의만만하던 왜군들은 그해, 9월 16일 명량바다 울돌목에서 이순신 장군에게 13 : 133의 대패를 당한다. 호남 곡창지대를 향하던 왜적들의 예봉이 꺾인 격전이었다. 전략적수륙병진작전 구상도 파멸되었다.
강항의 간양록에는~ 이런 시(詩)가 있다.
봄은 동녘에서 오는가, 한 많은 봄이로세
바람, 너는 서녘으로 간느냐, 맘만 들떠 바쁘이
새벽달, 어버이 한숨 실은 새벽달일세
밤길도 더듬더듬 헤매신다
촉대로 새운 밤을 그 누가 알랴
그 누가 알랴, 아침 햇빛에 복받치는 내 설움을
글방 옛터에 피고 진들 누가 알리
선영 뒷산에 잡초는 누가 뜯고
삼한의 피를 받아 굵어진 이 뼈
어찌타 짐승 놈들과 섞일 수가 있으랴
당시 강항은, 피난길에 이순신에게로 가려다가 논잠(論岑)포구(영광군 염산면, 굴비 특산지)에서, 왜놈 군대 도도 다카토라 수군에 포위된다. 일가족은, 죽을 각오로 바다에 뛰어들었지만 얕은 수심 때문에 왜군이 던진 갈고리에 걸려 건져지고, 그 와중에 아들 용과 서녀(庶女) 애생을 잃었다.
그들이 10여 일 동안 끌려가 닿은 곳은 일본 에히메현 오쓰시 나가하마(長濱) 항구다. 강항은, 그곳에서 승려 요시히토와 교류하며, 그로부터 일본의 역사·지리·관제 등을 알아내어 적중견문록(賊中見聞錄)으로 엮어, 몰래 조선의 임금 선조왕에게 보냈다. 강항의 위패는 영광군 불갑면 쌍운리에 있는, '내산서원' 모셔져 있다.
1968년 록그룹 애트킨즈로 데뷔한 조용필은 남인수·현인·나훈아·남진으로 이어지는 대중가요 황제다. 조용필, 그는 변신의 예술가수다. 팝 발라드(그 겨울의 찻집)·포크(친구여)·디스코(단발머리)·펑크(못찾겠다 꾀꼬리)·트로트(허공)·민요(간양록)·가곡(선구자) 등의 절창이 변신의 산물 노래이다.
[유차영]
한국아랑가연구원장
유행가스토리텔러
글로벌사이버대학교 특임교수
경기대학교 서비스경영전문대학원 산학교수
이메일 : 519444@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