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영의 낭만詩객] 열반송

이순영

1993년 11월 5일 자 동아일보에 ‘28자 열반송에 일생 담아’라는 성철스님 기사가 올라왔다. 사람들은 이 열반송을 해석하느라 야단법석이었다. 신문사들은 신문사대로, 종교는 종교대로, 사람들은 사람들대로 우리나라 제일 큰 스님이 열반에 들면서 남긴 ‘열반송’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해석해서 그 뜻을 헤아리고 있었다. 한 사람의 죽음이 사회에 던진 화두는 곧 사람들의 화두가 되고 말았다. 1912년에 태어나 1993년 11월 4일에 입적한 성철 스님의 ‘열반송’을 따라가 본다. 

 

일생 동안 남녀의 무리를 속여서

하늘 넘치는 죄업은 수미산을 지나친다.

산 채로 무간지옥에 떨어져서 그 한이 만 갈래나 되는데

둥근 한 수레바퀴 붉음을 내뿜으며 푸른 산에 걸렸도다

 

어렵다. 어려우니까 불교다. 아니다. 글자 그대로 읽으면 된다. 직관적으로 생각하면 된다. 그런데 불교는 왠지 그러면 안 될 것 같다. 뭔가 우주적인 뜻이 있을 것 같다, 그 의미를 찾아내는 숨바꼭질을 해야 불교다울 것 같다. 보이는 것 보다 본질을 찾지 않으면 덜떨어진 사람 같아 보인다. 본질 본질 외치다가 인생 끝날 것같다. 성철 대종사의 열반송에 담긴 의미를 알아채는 일이야말로 한국불교의 현주소다. 그래서 머리에 쥐나도록 사람들은 본질을 찾아내려고 애쓰고 또 애쓴다.

 

모른다. 진리가 무언지 알면 그건 진리가 아니다. 그냥 사회적 언어로 생각해 보자. 누구나 일생동안 자신을 속이며 산다. 성철 스님도 그랬나 보다. 인간적이어서 좋다. 알게 모르게 죄짓는 일은 부지기수다. 죄라고 하면 죄요 죄가 아니라고 하면 죄가 아닌 것이 어디 한두 가지일까. 성철 스님도 알게 모르게 지은 죄가 수미산을 지나친다고 하니 안심이 된다. 산채로 무간지옥에 떨어져서 그 한이 만 갈래나 된다니 위대한 수행자의 진실한 고백이 아름답다. 우린 절대로 그런 고백을 하지 못한다. 우린 나약하고 자기 죄를 인정하지 않는 못된 인간이기 때문이다. 

 

성철 스님의 ‘열반송’을 듣고 기독교 어느 목사님은 “봐라, 성철이란 스님이 죽으면서 사람들을 속였다고 고백하지 않았느냐”며 길길이 날뛰던 모습을 티비에서 본 적이 있다. 이쯤 되면 직관을 넘어 왜곡의 달인이라고 해야 할 판이다. 은유와 반어도 모르는 치졸함이다. 종교는 차치하고 그냥 인간적 연민이 든다. 그래서 해석이 필요하고 알아야 면장을 하는 법인가 보다. 아는 게 힘이란 말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유효한 정신적 에너지의 근원이다.

 

‘일생 동안 남녀의 무리를 속였다’라는 성철 스님의 고백은 충격적이다. 부처가 되기 위해 자신이 부처가 아님을 고백하는 역설이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불교의 가르침은 늘 자기를 깨트리는 것에서 출발한다. 성철 스님은 열반에 이르러 불성에 도달하는 마지막 문을 열며 죽는 순간까지도 ‘나는 깨달은 자가 아니다’라고 외친 것이다. 이것은 진리를 진리답게 만드는 겸허의 가장 높은 단계다.

‘하늘 넘치는 죄업은 수미산을 지나친다’며 진리를 완전히 다 전달할 수 없었음을 깨달은 자신의 한계를 통탄하고 있다. 불완전한 인간에 대한 철학적 참회다. 열반은 궁극적 도달이 아니라 되돌아옴이다. 원자가 뭉쳐서 내가 되었듯이 내가 다시 흩어져 원자가 된다. 적절한 조건이 맞으면 다시 원자로 뭉쳐져서 무언가 되는 것이 우주의 질서 아니던가. 이렇게 해석해 보면 성철 스님의 심오한 뜻이 이해된다.

 

‘산 채로 무간지옥에 떨어져서 그 한이 만 갈래나 되는데’라며 무간지옥으로 자진 입장하는 성철스님의 대담함이 보인다. 불교에서 지옥은 하나가 아니라 아주 많다. 그중에 무간지옥은 여섯 지옥 중에서 가장 끔찍한 벌을 받는 곳이다. 내가 지은 죄로 인해 지옥에 떨어져 단죄하는 것이 아니라 수행자로서 모든 중생의 고통을 나 혼자 감당하겠다는 깨달은 자의 마지막 연민이다. 은유의 행간을 읽지 못하면 알지 못하는 문장이다.

 

‘둥근 한 수레바퀴 붉음을 내뿜으며 푸른 산에 걸렸도다’는 마지막 구절은 세속에 대한 미련 따위는 다 잊었고 윤회와 해탈, 지혜와 자비, 죽음과 삶이 하나임을 설법하고 있다. 성철 스님은 열반의 순간조차 완전한 해탈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외려 그 순간에도 윤회의 수레바퀴가 나를 따라온다고 한다. 이것은 완전한 자각이다. 완전한 참회이며 완전한 자기긍정이다. 이 얼마나 소박하고 아름답고 깨끗한 유언이던가.

 

하수는 출가하고 고수는 출근한다던데 우린 출근하는 고수지만 성철 스님은 출가한 최고수다. 우리는 죽음에 임박해도 열반송은커녕 죽기도 바쁜데 최고수들은 열반송을 남기며 우주라는 망망대해를 떠도는 우릴 위해 등대가 되어주고 있다. 이제는 종교가 한갓 문화로 전락해 버린 시절이 되었다. 종교가 인간의 정신적 고통을 해결해 준 것은 지구에 있는 가장 고급 정보를 가장 많이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고급 정보를 과학이 대신하고 있다. 그래도 여전히 사람들은 종교에 위안받고 구원받기를 원하고 있다. 성철 스님은 일생 동안 남녀의 무리를 속였지만 나는 나 하나만이라도 속여보고 싶다. 

 

일생 동안 남녀의 무리를 속여서

하늘 넘치는 죄업은 수미산을 지나친다.

 

 

[이순영]

수필가

칼럼니스트

이메일eee0411@yahoo.com

 

작성 2025.06.12 09:59 수정 2025.06.12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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