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록파 시인 박목월은 순수시를 지향했다. 그가 시대정신과 역사의식이 녹아 흐르는 시를 발표한 적 있다. 1960년 4.19 혁명 때 학생의 편에 서서 시로 울부짖었다. 「동이 트는 순간(瞬間)을」이라는 시이다. 추모시 성격의 목적시이다. 서문당의 『박목월 시 전집』(1984)과 민음사의 『박목월 시 전집』(2003)에도 실리지 않은 시이다. 그래서 현재까지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은 듯하다. 읽으면 읽을수록 2024년 12.3 불법 비상계엄 사태(내란) 상황과 겹쳐 읽힌다. 결과적으로 4.19 혁명은 유혈(流血), 12.3 불법 비상계엄 사태는 무혈(無血)이라는 차이점은 있지만, 총부리를 국민에게 겨냥한 점, 자유(표현의 자유, 집회 결사의 자유 등)를 억압하려 한 점, 헌법 기관을 무력화하려 한 점에서 겹쳐 읽힌다. 한문 표기는 한글 표기로 변환하여 아래와 같이 읽어 본다.
그대 민주주의의 기수여.
정의의 불기둥이여.
바로 엊그제까지
눈이 팔팔하게 살았던 젊은이여.
이제는
무덤 아래 누웠는
그대들 귀에도 들리는가.
거리에 울리는
이 ‘중대방송(重大放送)’의 구절구절이
피로써 잡아온
민의의 승리가
피로써 절규한 구호가 그대로
역사(歷史)의 한 페이지로 기록되는
이 순간을.
불의로써 백성을
다스리지 못하며
억압으로 백성을
짓밟지 못하며
권력으로 백성의 어진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지 못하는
이것은
하늘이 마련한 길.
이 창창하고
넓은 길을 벗어나
누가 감히
백성의 우두머리라 하리요.
낡은 것은
낡은 것으로 씻어 보내라.
상처난 자국마다
새 소망이 솟아라
우리 다시
민주대한의 터를 마련하게 되면
그때는
아여
속이지 말고, 속지 말고
억누리지 말고 눌리지 않고
업수 여기지 말고, 업수 여김을 당하지 말고,
남을 힐난 말고,
허물을 뜯지 말고
이웃은 이웃끼리 서로 사랑하고 돕고
남의 말을 소중히 여기고
권력을 탐내지 말고,
휘두르지 말고,
어리석은 시인의 꿈처럼
황홀한
그 나라를 마련하자.
자유세계의
찬란한 일환으로서
담대히 적과 맞서고
빨갱이들의 뿌리를 뽑는
아아
빛나는 우리 대한
자유낙토의
역사(役事)의 괭이를
높이 들자.
우리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뉘우침으로
양심을 밝히고,
눈물로 참회하고
이제 두 번 다시
뉘우치지 않을
자유롭고
아름답고
참된
백성이 되자.
- 박목월, 「동이 트는 순간을」 전문
인용 시는 4.19 혁명 다음 달에 춘조사에서 발행한 『뿌린 피는 영원히』(1960. 5. 19.)라는 시집에 수록했다. 한국시인협회가 ‘4월 혁명 희생 학도 추모 시집’으로 엮었다. 청록파 시인 박목월, 조지훈, 박두진을 비롯하여 유명 시인 39명의 시를 수록하였다. 4.19 혁명 때 희생당한 학생들의 의기와 넋을 기리는 시편으로 엮었다. 엄격하게 말하면 ‘추모시’이다. 달리 보면 ‘참여시’로 읽히는 시편도 있다. 이들 시의 많은 부분이 2024년 12.3 불법 비상계엄 사태의 상황과 겹쳐 읽힌다.
한반도의 역사뿐만 아니라, 인류의 역사에서 국민에게 칼날과 총부리를 겨냥한 권력은 정당성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 조선 시대에도 왕의 자리를 빼앗을 목적으로 백성에게 칼날과 화살을 겨룬 왕은 사후에라도 정변(쿠데타)의 수괴라는 평가를 피할 수 없었다. 성공한 쿠데타라 하더라도 사후의 역사 평가는 냉정하다.
네 번의 성공한 쿠데타에 붙여진 이름만 보더라도 누구나 알 수 있다. 태종의 무인정사(1398), 세조의 계유정난(1453), 중종반정(1506), 인조반정(1623)이 그렇다. 앞의 두 건은 명분이 없는 친위 쿠데타이다. 그래서 ‘정사(定社)’, ‘정난(靖難)’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뒤의 두 건은 명분이 있는 쿠데타이다. 잘못을 저지른 왕의 폐위라는 명분이 있었다 하더라도 후세의 평가는 쿠데타이다. 명분이 있는 쿠데타라서 ‘반정(反正)’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역사 공부를 덜 하였거나 시대정신과 역사의식이 없는 자는 스스로 고위직 공무원 자리에 오르지 말아야 한다. 시대정신과 역사의식이 부족한 고위 공무원은 언젠가 국민을 향하여 총부리와 비수를 들이댈 가능성이 높다. 5.16 군사 정변, 12.12 군사 반란, 12.3 불법 비상계엄 사태(내란) 자체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문인이여, 순수시를 지향했던 박목월 시인처럼 때로는 올바른 시대정신과 역사의식이 녹아 흐르는 시를 써야 한다. 문인은 주체적 존재로서 올바른 시대정신과 역사의식으로 늘 무장해야 한다. 때로는 국민의 일상을 지옥과 같은 삶으로 이끌어가는 지도자나 위정자를 향해 단호히 꼬집고, 비꼬고, 비틀어야 한다. 이것이 문학의 비판적 기능이요, 올곧은 문인 정신이요, 문학 정신이다.
[신기용]
문학 박사.
도서출판 이바구, 계간 『문예창작』 발행인.
대구과학대학교 겸임조교수, 가야대학교 강사.
저서 : 평론집 9권, 이론서 2권, 연구서 2권, 시집 5권,
동시집 2권, 산문집 2권, 동화책 1권, 시조집 1권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