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깊고 간절한 마음은 가닿지 못할 곳이 없다.
그것은 깊이를 모르는 바닷속 같았다. 물살을 헤치지 않으면 가라앉고 마는 절박함이었다. 한 번도 타보지 않은 말의 고삐를 쥐고 달리는 것 같은 고통이었다. 그렇게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고통의 무게에 눌려 있었다. 인간의 생명은 둘도 없이 귀중한 것인데 우리는 언제나 어떤 것이 생명보다 훨씬 더 큰 가치를 갖고 있는 듯이 행동한다는 생텍쥐페리의 말이 진실로 다가왔다. 그 둘도 없는 생명을 위해 나는 깊고 간절한 마음이 가닿을 그곳으로 향했다.
무엇도 할 수가 없었다. 기도의 말도 떠오르지 않았지만 억지로 기도하며 시간 위를 걸었다. 억지로라는 말의 깊이는 바다보다 깊고 산보다 높은 내 안의 사랑이었다. 어찌할 수 없을 때의 그 ‘억지’는 사랑의 동의어다. 지성을 다하는 것이 곧 천도라는 맹자의 말이 아니더라도 나는 진인사를 하며 대천명을 기다렸다. 나는 하염없이 삶을 사랑했고 고통도 사랑했다. 더디 가는 고통의 시간에게 화를 내지도 않았고 미워하지도 않았다. 어쩌면 나는 고통을 사랑하다가 해탈해 버릴지 모른다는 생각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었는지 모른다. 내가 고통을 사랑한다면 고통 또한 사랑을 되돌려 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생명은, 그리고 목숨은 결핍의 존재다. 결핍으로 만들어 낸 고통의 존재다. 그래서 사랑이라는 치유제로 한없이 메꿔야 한다. 그래서 봄이 가고 여름이 또 가고 겨울이 다 가도록 나는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누군가 기도는 고통을 잠재우는 마약이라고 했지만, 기도는 나 자신에게 가 닿는 간절한 사랑이다. 그 사랑은 나를 변화시킨다. 그 변화의 에너지로 견뎌낸 시간을 다시 사랑할 수 있었다.
고통을 통해 고통을 넘다
천천히 걸어가 보기로 했다. 그렇게 마음먹고 세상을 둘러보니 세상이 보였다. 예전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얼굴에 숨은 죽은깨도 보이고 까맣게 잊고 있었던 옛 친구들의 안부도 궁금해 졌다. 오랫동안 쓰지 않았던 시를 써보고 싶은 열망이 보이기도 하고 조금 더 섬세하고 진실한 기도의 언어를 발견하기도 했다. 평창 깊은 내륙에 놓아둔 농막에 가서 별들을 바라보는 것도 조금씩 편해졌다. 동강으로 달려가 조용히 흐르는 강물에게 말도 걸어보면서 나는 스스로 마음의 치유를 하기 시작했다.
강원도 홍천에 숨은 깊은 산골 자명사를 찾아간 그 날은 겨울이었다. 욕망하던 삶이 지겨워지고 맹목적 의지에 휘둘리는 것도 의미 없어져 마음속에 산뜻하고 명랑한 푸른 나무 하나를 심고 싶었다. 수수하고 소소한 나무 한 그루를 마음속에 심어 물도 주고 비료도 주면서 키워보고 싶었다. 자연만 있다면 더욱 좋다. 그 자연에 기댄 고요한 절이면 더욱 좋고 이름 없는 절이면 그보다 더 좋을 수 없다. 나는 겨우 차 한 대 지나갈 수 있는 좁은 시골길을 따라 자명사로 올라갔다.
마음이
마음을 만들고
부처가
부처를 만든다.
구만산 아래 작고 소담스럽게 앉아 있는 자명사는 부자도 아니고 가난하지도 않은 중산층 부인의 교양있는 미소 같았다. 근래에 새로 지은 절이지만, 오래된 불향이 나는 듯했다. 새로 지은 집의 냄새가 아니라 천년쯤 된 절의 그런 냄새가 난다. 그 연유를 알아보니 자명사에 적멸보궁이 있었다. 새로 지은 절에 적멸보궁이 있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주지 스님이 태국 왕가에서 전해진 부처님 진신사리 3과를 모셔 와 이곳 자명사 적멸보궁에 안치했다고 한다.
진신사리탑을 완성하고 낙성식을 할 때 대만의 자명사에서 108명의 스님을 이곳 자명사로 보내 축원해 주었다고 한다. 대만의 자명사도 태국 왕가로부터 진신사리를 받았다. 그래서 구만산 자명사도 대만 자명사와 같은 이름을 붙였다고 하니 인연법은 한치의 어김이 없이 작동하는 것인가 보다. 새 절의 역사는 이렇게 시작되고 마음은 마음을 만들 듯이 부처는 부처를 만들며 어리석은 중생들을 보듬고 깨우친다. 어리석은 나는 자명사에 와서 욕망하고 휘둘리는 것들을 잠시라도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 마음의 빈자리에 푸른 나무 한 그루 심어 놓고 지성을 다해 볼 것이다. 설령 지성을 다 했는데 천도에 이르지 못한다 해도 부끄러워하지 않을 것이다.
산이 거기에 있어서 절도 거기에 있는지 모른다. 멀리 앞을 보면 팔봉산이 여덟 봉우리를 자랑이라도 하듯 펼쳐 놓고 그 팔봉산 자락을 깔고 앉은 구만산 아래 부처님도 고요하게 선정에 들고 부처님 사리도 선정에 들었다. 주석하시는 스님도 선정에 들고 나도 선정에 들고 겨울 햇살도 선정에 들었다. 깊이를 모르고 절망하던 고통으로부터 헤어 나와 이제 조금씩 편안해져 가는 나는 특별한 인연이 닿은 홍천에서 지성을 다해 간절한 마음이 그곳에 가닿을 것을 믿으며 모든 살아있는 생명들이 행복하기를 축원했다.
[전승선]
시인
자연과인문 대표
이메일 : poet196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