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람 소리 장단에 맞춰 여름이 무르익어가는 푸른 모래가 멈춘 곳 해운대 청사포. 동해남부선이 달리던 길을 맺음한 자리에 폐가 한 채가 힘겹게 기울어져 있다. 해운대 앞바다를 바라보며 낭만을 실어 날랐던 그 오래된 추억을 오롯이 안고 있는 집이었다.
어느 날 나와 함께 폐가를 본 아내가 “여보 이제 우리도 기력이 많이 떨어졌나 봐요.” 아쉬운 듯 말을 했고 “폐가는 마치 나이 들어가는 우리를 닮은 것 같기도 해요.”라고 덧붙였다. 그리고 폐가는 살아 있는 집이지만 사람을 살게 하는 기능은 끝낸 것이다.
금세라도 쓰러질 것 같이 외롭게 보이는 폐가처럼 혼자가 외롭고 불완전하여 사람끼리 서로 기대어 산다. 각자 다른 환경에서 자란 남녀가 부부의 연을 이루기 위해 혼인을 하기도 한다. 마치 황량한 들판에 자라난 잡초들이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는 것처럼.
폐가의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바닷바람을 숙명처럼 맞이하는 동백나무의 잎은 마치 닦아 놓은 듯이 윤기가 흐르고 마당 바깥에는 철쭉과 영산홍이 한여름의 화려했던 꽃 잔치의 흔적을 남기고 담벼락을 대신하고 있다.
폐가의 안방은 잔잔한 바다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손에 닿을 듯 가까이에 있는 바다는 붓을 들고 한 폭의 풍경화를 그려 내고 있다. 고기잡이배에서 석양을 배경으로 노를 젓는 어부는 바다 그림의 주인공이다.
폐가는 화려했던 지난날을 품고 있다. 생선을 그물에 풍성하게 담아 올리고 해삼을 잡아 배의 물 칸에 그대로 살려 두고 낚시질로 직접 잡은 생선이 살아 움직이는 모습을 지켜보던 주인을 떠 올린다. 폐가의 슬레이트 지붕은 바람에 날려갈 천막처럼 가벼워 보인다. 폐가의 전기는 철거되었지만, 지붕 위에 설치된 전선 연결고리는 녹슬어 군더더기 부스럼을 가득 안고 있다. 바람이라도 세차게 불어오면 금세 부러질 것 같다.
나무 대문은 삐걱거리다 말고 썩은 톱밥을 토해내고 그냥 주저앉아 있다. 미처 떼어내지 못한 문패의 이름은 폐가로 보낸 세월만큼이나 흐릿해져 있다. 대문 기둥의 우편함에는 언제 배달된 것인지 모를 고지서가 알아볼 수 없는 희미한 글씨만 남긴 채 꽂혀 있다. 폐가 혼자만이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 외롭게 누군가를 기다리는 모습이다.
돌 담벼락은 허물어져 있고 흙은 물에 씻기어 갔고 돌만 나뒹굴고 있다. 마당 한 가운데 우물이 있던 자리는 쓰레기로 메워져 있다. 비 오는 날에 마룻바닥으로 빗물이 들이치는 것을 막아주던 처마 끝은 찢기어 없어졌다. 흔적이라곤 썩어 문드러진 나무틀밖에 없다. 해가 저물었는데도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를 기다리며 어린 자식들이 앉아 있었을 마루의 널빤지는 모두 빠져 있다.
서까래를 앙상하게 드러내 놓은 채로 주인 잃은 외로움에 황토벽은 무너져 내렸다. 그 사이에는 벽이 단단해 지라고 대나무를 넣어 두었다. 예로부터 내려오는 조상들의 지혜가 돋보인다. 또한 황토는 인체에 좋다고 요즈음의 도시인들이 즐겨 찾는 황토 찜질방의 재료인데 오래된 옛집이 아니면 보기 드물다.
나무나 연탄을 태우고 연기를 뿜어내던 굴뚝은 허물어져 막혀 있다. 군불 떼고 밥을 짓던 아궁이는 언제 무너질지 모르고 그 위에 걸쳐져 있는 무쇠 가마솥은 먼지투성이다. 겨울이면 따스한 아랫목이었을 방바닥은 마치 폭격을 맞은 듯 마구 파헤쳐져 있고 창호지로 바른 방문은 구멍이 얼기설기 뚫려있다. 방안에는 식구들이 모여 연속극을 보며 울기도 하고 웃기도 했을 텔레비전 안테나선이 바람에 이리저리 날리고 있다. 마치 낭만적인 탱고 춤을 추는 것처럼......
벽 종이는 얼마나 많은 양의 빗물을 빨아들였는지 누렇다. 지난 세월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얼룩 자국은 마치 추상화 같다. 쓰다 남겨 두고 간 가재도구들은 쓰러지는 문틀을 지탱하느라 꽤 힘들어 보인다. 마당 한 가운데에는 먼지가 수북이 쌓인 빈 개 집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다. 가꾸어주지 않은 조그마한 꽃밭에서는 풀잎들만이 자신의 생명이 있음을 말하고 있다.
폐가는 아직도 꿈을 꾸고 있다. 이 마을에서 터를 잡고 살던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폐가의 주인은 어디로 갔으며 그 주인의 자식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아름드리 느티나무를 방패삼아 숨바꼭질하던 그들의 손자들은 또한 어디로 갔을까. 조용한 갯마을에서 굴 따러 간 어머니가 양동이를 머리에 이고 오는 모습은 이제 볼 수가 없다.
나의 코끝을 스쳐 간 황토 내음은 그동안 잊고 살았던 나의 어린 시절로 되돌려 주는 향기였다. 폐가는 한 때 정감 넘치고 넉넉한 사람들이 모여 살았던 기억을 더듬으며 절제되고 포근했던 옛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것 같다.
폐가는 지나온 수많은 세월을 이고 지고 제자리를 지켰고 사람들의 온기를 보듬어 주었을 것이다. 폐가는 버려져 있지만 쓰러지지 않고 추억을 되새김질하고 있다. 폐가에는 자로 잴 수 없는 아픔의 크기가 늘어나고 저울에 올려도 무게를 나타내지 못하는 시간만 쌓여있다.
[김태식]
미국해운회사 일본지사장(전)
온마음재가센터 사회복지사(현)
울산신문 등대문학상 단편소설 당선 등단
해양문학상 논픽션 소설 당선
사실문학 시 당선 등단
제4회 코스미안상 수상
이메일 : wavekt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