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목월 시인의 시대정신과 역사의식이 녹아 흐르는 4.19 혁명 시를 한 편 읽어 보고자 한다. 「죽어서 영원히 사는 분들을 위하여」라는 시이다. 김종윤과 송재주가 공동으로 엮은 『불멸의 기수』(성문각, 1960. 6. 5.)에 발표했다. 그해 『여원』 6월호에도 수록했다. 1973년 월간 『다리』 4월호에 재발표했다. 박목월 시인은 이 시를 시집에 엮지 않았다. 사후에 발간한 서문당의 『박목월 시 전집』(1984)에도 미수록한 시이다. 민음사의 『박목월 시 전집』(2003)에는 실려 있다.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시의 존재 여부는 밝혀진 상태이다. 『불멸의 기수』에 수록한 시를 기준으로 아래와 같이 읽어 본다.
학우들이 메고 가는
들것 위에서
저처럼 윤이 나고 부드러운 머리칼이
어찌 주검이 되었을까?
우람한 정신이여.
자유를 불러올 정의의 폭풍이여.
눈부신 젊은 힘의
해일이여.
하나, 그들이 이름 하나하나가 아무리 청사에 빛나기로니
그것으로 부모들의 슬픔을 달래지 못하듯,
내 무슨 말로써
그들을 찬양하랴.
죽음은 죽음.
명목(瞑目)하라.
진실로 의로운 혼령이여.
거리에는 5월 햇볕이 눈부시고
세종로에서
효자동으로 가는 길에는
새잎을 마련하는 가로수의 꿈 많은 경영(經營)이
소란스럽다.
아무 일도 없었는 듯이.
지내간 것은 조용해지는 것
그것은 너그럽고 엄숙한 새 역사의 표정.
다만
참된 뜻만이
죽은 자에서 산 자로
핏줄에 스며 이어가듯이.
그리고, 4·19의
그 장엄한 업적도
바람에 펄럭이는 태극기의 빛나는 눈짓으로
우리 겨레면 누구나 숨결,
숨결의 자유로움으로,
온몸 구석에서 속삭이는
정신의 속삭임으로
진실로 한결 환해질
자라나는 어린 것들의 눈동자의 광채로
이어 흘러서 끊어질 날이 없으리라.
- - 박목월, 「죽어서 영원히 사는 분들을 위하여」 전문
민음사 발행 『박목월 시 전집』(2003)에서는 앞의 두 행을 “학우들이 메고 가는 들것 위에서”라는 부제로 편집하여 수록하였다. 그만큼 비중이 높은 시행이다. 들것을 메고 가는 학우들의 어깨가 무겁게 보인다. 희생당한 학생의 주검을 멘 어깨의 무게라기보다 정권의 폭력과 억압을 이겨 내야 하는 시대의 무게이다.
또한, 『박목월 시 전집』(2003)에는 인용 시의 말미에 ‘『다리』 1973. 4.’라고 표기해 놓았다. 1973년 월간 『다리』 4월호에 재수록한 것이라는 의미보다는 그 이전의 지면을 추적하지 않았다는 의미로 읽힌다. 3선 개헌 이후 1970년대 박정희 군사 독재의 상황과 겹쳐 읽히는 측면도 있다. 자유 억압의 군사 독재 시대에 4월 혁명의 숭고한 정신을 기념하려는 목적으로 수록한 것이다.
현시점의 12.3 불법 비상계엄 사태의 총부리에 희생당한 주검은 없다. 불행 중 다행이다. 우리 민족이 오래도록 기억하고 경계해야 할 사태임이 분명하다.
[신기용]
문학 박사.
도서출판 이바구, 계간 『문예창작』 발행인.
대구과학대학교 겸임조교수, 가야대학교 강사.
저서 : 평론집 9권, 이론서 2권, 연구서 2권, 시집 5권,
동시집 2권, 산문집 2권, 동화책 1권, 시조집 1권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