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영의 낭만詩객] 시시비비가

이순영

지랄 같은 세상, 떠돌이가 되어 온 세상 돌아다니며 살면 좋겠다. 이것저것 신경 안 쓰고 스트레스 덜 받고 사는 방법은 없을까. 요즘 젊은이들은 여행으로 돈 벌기 위해 이 나라 저 나라 떠돌아다니며 유튜브 콘텐츠를 생산해서 돈도 벌고 이름도 날린다. 좋은 세상이다. 

 

정치는 어지럽고 경제는 어려워 사는 게 만만치 않은 시절이다. 풍요로운 세상이 되었지만, 그 풍요가 누구에게나 공평하지는 않다. 모자 하나 쿡 눌러쓰고 이 나라 저 나라 떠돌면서 김삿갓처럼 시나 쓰고 살면 오죽 좋겠냐는 낭만적인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세상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생각이다. 세상이 다 그렇게 된다고 해도 나만 그렇게 안 되는 게 세상 이치다. 이건 무슨 법칙인지 모르겠다. 

 

이백여 년 전 김삿갓은 대단한 인물임은 분명하다. 자동차도, 노트북도, 변변한 옷도 없던 시절 삿갓 하나 눌러쓰고 팔도강산을 떠돌았으니 자유로운 영혼인가. 아니면 떠돌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는지 판단하기 쉽지 않다. 처자식 내팽개치고 떠돌아야만 했던 삶은 오죽했을지 하는 연민도 든다. 잘못 태어난 가문에서 배배 꼬인 배알로 사회를 조롱하고 양반들을 훈계하는 뛰어난 글솜씨를 발휘해서 떠돌이 생활을 할 수 있었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머리에 삿갓 쓰고 다니는 사람을 보면 왠지 도사 같은 생각이 든다. 뭔가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지만 김삿갓은 아마 자외선 차단을 위한 것이었거나 더러운 세상 얼굴 내밀고 다니기 싫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일단 신비주의라는 목표는 달성하지 않았나 싶다, 어느 곳을 가던 먹어야 하고 자야 하는 기초적인 의식주를 위해 김삿갓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능을 밥으로 바꿔 평생 길 위의 삶을 살아야 했다. 김삿갓의 시 중에 재밌고 위트 넘치고 남사스러운 시가 많은 것도 아마 사람들에게 어필하기 위한 생존전략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시비(是非)’ 단 두 글자로 지은 ‘시시비비가(是是非非歌)’는 지금 권력가들 면전에 던져주고 싶은 시다.

 

是是非非非是是

是非非是非非是

是非非是是非非

是是非非是是非

 

옳은 것을 옳다 하고 그른 것을 그르다 함이 옳지 않으며, 

그른 것을 옳다 하고 옳은 것을 그르다 함이 옳지 않음이 아니다. 

그른 것을 옳다 하고 옳은 것을 그르다 함이 이 그른 것이 아니며, 

옳다는 것을 옳다 하고 그른 것을 그르다고 함이 도리어 이 그른 것을 옳다 함이다.

 

이 시는 도대체 옳은 것은 무엇이고 그른 것은 무엇인지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따지고 보면 세상일이 다 옳고 그르다고 이분법으로 갈라놓을 수 없다. 갈라놓는 그 기준이 무엇인지 우리는 잘 모른다. 안중근 의사는 우리에게 의사지만, 일본에게는 테러범이지 않던가. 시비를 가리는 건 신도 어려울 것이다. 이쪽에서 생각하면 옳고 저쪽에서 생각하면 그르다는 생각 자체가 오류다. 옳고 그름을 가리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를 김삿갓은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세상은 시시비비를 가려야만 하는 것에 직면하고 만다. 잣대를 만들어놔야 질서를 유지하고 사회를 평화롭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시시비비 안에 존재하는 불평등과 불신이 얼마나 많은지 우리는 안다. 그 속에서 누구는 억울해서 죽고 누구는 신나서 춤춘다. 시시비비 안에 벼룩처럼 콕 숨어서 혜택을 받고 불법을 조장하고 비법을 유행시키기도 한다. 우리는 다 안다. 누가 벼룩인지, 누가 세 치 혀로 세상을 농락하는지 다 안다. 시비를 가릴 사람이 진실한 사람인지 도통 알 수 없다. 법정에서도 그렇고, 정치인의 말장난도 그렇다. SNS 속에서도 가려야 할 시비가 너무 많다. 윗집 아랫집에서도 시비는 끊이질 않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시비는 늘 복잡하게 얽혀있다.

 

인간사의 이 치졸한 다툼을 김삿갓은 이백여 년 전 시를 통해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모든 시비는 진실일 수 없고 진실은 그대 마음 한가운데로 숨는다고 일갈한다. 시시비비 문장 자체는 사리 판단을 의미하지만, 김삿갓의 붓끝에서 풀려나온 시는 단순한 시비의 문제가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의 문제이다. 네가 옳다고 외칠 때 누군가는 피를 삼킬 것이며 네가 그르다고 말할 때 누군가는 정의라고 믿을 것이라는 걸 말하고 있다. 김삿갓은 묻는다.

 

“도대체 누가 무엇을 기준으로 옳다고 하고 그르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내 쪽에서 보면 죽일 놈도 저쪽에서 보면 위대한 인물이다. 21세기 정치판에서는 특히 더하다.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이 내 편이냐 네 편이냐로 갈린다. 권력이라는 무소불위의 칼을 피해 겨우 목숨을 유지한다고 해도 시시비비 아래 누군가는 역적이 되고 누군가는 충신이 되어 짧은 오 년이라는 권력의 달콤한 맛에 취하게 된다. 이 꼴 저 꼴 보기 싫으면 김삿갓처럼 떠돌이가 되어 산천을 유랑하면 마음 편할 것이다. 근데 그것도 다 용기가 있어야 한다. 요즘 사람들은 용기가 없다.

 

옳다는 것을 옳다 하고 그른 것을 그르다고 함이 도리어 이 그른 것을 옳다 함이다.

 

 

[이순영]

수필가

칼럼니스트

이메일eee0411@yahoo.com

 

작성 2025.06.26 09:52 수정 2025.06.26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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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